무늬만 남자인 신부?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동창 신부 아버님의 장례미사 때문에 전북 익산엘 내려갔다. 익산까지 가는 길에 많은 추억들이 떠올랐다. 특별히 신학교와 집을 오가던 그 길이기에 지금은 상주가 된 친구와 함께 했던 신학교 시절의 많은 일들이 회상되었다.
신학교에서는 저녁 식사 후 묵주기도와 끝기도를 하기 전에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산보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가끔 부모님들의 삶과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곤 했었다.
이미 전에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도 그리고 이번에 돌아가신 친구의 아버지도 소위 말하는 구교의 신앙을 대물림해서 사신 분들이시다. 그런 부모님들의 몸에 밴 기도와 신앙생활은 이 시대에 가히 수도자들의 모습과 같아서 신부가 되고자 준비하는 우리들조차도 흉내도 낼 수 없는 모습이시다.
친구와 신학교 규칙을 어겨가며 까지 소곤거린 이야기란 것이 대게 이런 것들이었다. 특별히 친구는 부모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자주 말하곤 했었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분명히 기억한다.
얼마나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선하게 사셨던 분들이었으면 따뜻한 속내와 달리 드러내는 살가운 잔정머리가 쥐뿔만큼도 없는 자식조차 감복했을까 싶다. 아무튼 이제는 그렇게 친구의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도 떠나셨다.
그렇게 가신 분께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드리면서 비로소 내가 정말 세상을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에 사무쳐왔다. 친구를 만나러 먼 길을 달려가 놀고 지내면서, 왜 한 번도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서 친구의 아버님 어머님을 뵙고 올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사제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흔한 일이 이런 저런 이유로 신자들을 찾아보고 방문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신자들을 방문할 때 사제의 업무와 일과로써 또는 의무로써 신자들을 방문하였지,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께 문안인사를 드린다는 마음으로 방문했었던 기억이 없다. 말로는 사랑과 예절 그리고 의리를 떠버리면서 정작 자신은 일의 기계주의 사고방식에 빠져 살아온 것이다.
친구에게 얼마 후 다시 와서 어머님께 인사드린다고 나만의 약속을 말했다. 이제 가서 친구의 어머니, 아니 우리들의 어머니께 반쪽의 문안 인사를 올려야겠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 마음으로 사제의 일을 해야겠다.
나의 신자들을 찾아가고 만날 때 결코 의무적인 마음에서가 아니라 부모님께 문안 올리는 기쁜 마음으로 갈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장례 때 오신 수녀님들이 생각났다. 아버님 장례기간 내내 밤을 세워가며 상주 노릇을 하고 장례 미사 때는 운구하시던 돌아가신 아버님의 딸 수녀님의 동기 수녀님들의 의리와 사랑이 부러웠고 또 부끄러웠다.
신부는 정말 무늬만 남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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