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해방’에 관심… 해방신학 정립
저서 ‘해방신학’ 통해 ‘체험신앙’ 강조
교황 회칙, 공의회 문서 등에 영향 끼쳐
60년대 후반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인간,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해방신학이 태동한다. 그 최초의 공식적이고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진 장이 1968년 콜롬비아의 보고타와 메데인에서 개최된 제2차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이다.
이 총회를 마치고 발표된 최종문헌, 흔히 ‘메데인 회의’로 불리는 이 회의를 통해 라틴 아메리카 교회는 해방신학의 전망을 향후 10년간 사목 활동의 기본방향으로 정립했다. 메데인 회의의 결과로써 발표된 공식 문서는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된 바 있다.
이 회의를 통해 해방신학은 교회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아 전 라틴아메리카 대륙 사목 활동에 반영된다. 특히 이 회의는 명실공히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진정한 대표적인 주교들의 회의였다.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은 이 회의를 통해 세상과 인간의 구원으로써 해방을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을 촉구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상황을 ‘제도화된 폭력’과 ‘구조적 불의’로 규정했다.
라틴 아메리카 해방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빼어난 신학자로서 고도의 신학적 훈련을 받은 동시에 가난한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의 삶을 억압과 수탈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바로 신학의 역할로 이해했던 페루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데인 회의의 중요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또한 요구된다.
비참한 사회 속에서 태동
해방신학의 태동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통치에서 오는 불의한 사회 상황에 기인했다. 완강한 봉건 제도와 중앙집권적 군주제에 바탕을 두고 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가톨릭 국가들은 무력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제압하고 정복해 지배계급을 형성해 식민통치를 펴면서 민중들을 억압했다.
수탈을 위한 식민통치는 라틴 아메리카 각국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렸다. 지배계층은 오로지 현지인들을 억압하고 수탈해 부를 축적하기에 혈안이 됐고 서구 다국적 기업들과 집권층의 결탁은 국민들을 기아의 늪으로 빠뜨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인 조건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특수는 라틴 아메리카 경제에 잠시 호황의 기회를 제공했으나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불의가 해소되지 않음으로 인해 빈곤의 정도는 더욱 깊어졌고, 오히려 서구 열강으로부터 주어진 외채는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엄청난 짐이 됐다.
비참한 사회 현실을 직접 목도하고 체험한 라틴 아메리카 교회는 이제 인간을 억압하는 제도적 폭력과 불의를 더 이상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해방신학의 출발은 바로 이처럼 불의한 사회 현실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됐다.
해방신학의 기틀 확립
1928년 페루의 리마에서 태어나 1959년 사제품을 받은 구티에레즈 신부는 이러한 사회 현실을 바탕으로 해방신학을 최초로 체계화한 신학자이다. 하지만 그가 해방신학을 처음으로 집필한 학자는 아니다.
그가 1972년에 스페인어 초판으로 <해방신학>을 출판하기 이전에 이미 1968년 브라질의 루벰 알베스가 해방신학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구티에레즈 역시 자신의 책 <해방신학>을 출판하기 이전엔 1968년과 1969년에 이미 ‘해방신학을 향하여’라는 스페인어 논문과 ‘해방신학 노트’라는 영어 논문을 각각 발표한 바 있다. 특히 1969년의 논문은 1년 후 광범위한 수정 보완을 거쳐 스페인어로 발표됐고, 바로 이것이 1972년 <해방신학>의 모체가 됐다.
하지만 그의 해방신학은 이론적인 정립을 통해 신학의 실천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의한 사회 현실 속에서 이뤄진 교회 안팎 일련의 민족 해방과 사회개혁 실천운동이 해방신학의 정립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해방 실천이 먼저 일어나고 해방신학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입장은 어느 날 갑자기 교회의 가르침과 무관하게 돌출된 것도 아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 안에 스며든 새로운 인식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 공의회 문헌 중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 등이 해방신학의 입장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구티에레즈의 저서 <해방신학 (A theology of liberation)>은 지난 1999년 분도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돼 국내에서도 접할 수 있다. 이 저서에서 그는 “해방신학은 불의를 없애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투신하는 신앙의 체험과 그 의의를 신학적으로 고찰하는 연구”라고 규정한다.
현재 79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성한 집필 활동과 사목활동을 페루 리마에서 계속하고 있다. 페루 가톨릭대학교의 신학 교수이자 페루 가톨릭 학생전국연합회의 지도신부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해방신학이 보여주는 문제제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곱씹을 부분들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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