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동생 정임이
언니 대신해 두 조카 돌보는데 최선
‘일하는 애엄마’가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 동생의 도움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언제나 모든 일에 야무질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든든한 사랑이 빠질 수 없다. 특히 내 동생 정임이가 없었으면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시도때도 없이 방송국을 오가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건강악화로 수도자의 길 접어
시어머니에게도 친정엄마에게도 매일같이 맡기기 어려운 상황에 남편과 하루하루 곡예하듯 교대하며 아이를 돌보던 시절이었다. 수녀원에 입회한 지 3여년 된 동생이 봉사활동 중 덜컥 병을 얻어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정임이는 조카와 언니를 위해서라면 어떤 궂은 일도 마다않는 착한 마음씨로 한번의 짜증도 없이 두 조카 돌보는 일에 나서줬다.
두 아이들이 어린 시절, 우리 친정은 수원에서도 변두리에 있어 정임이는 전철을 혹은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는 두어시간의 거리를 마다않고 우리집을 찾아와 아이들을 돌보았다.
독실한 가톨릭신앙을 이어온 집안 분위기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나와 동생은 자연스럽게 성소의 꿈을 키웠었다. 그러나 나는 그 꿈을 일찌감치 접게 됐고, 정임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수녀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임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수녀원을 떠나 가족의 곁으로 돌아와야 했다.
정임이가 있던 수녀원은 고행을 쌓고 봉사를 하는 것이 주된 영성 활동이었다. ‘주님의 여종’으로 사는 길을 뜻으로 세운 수녀회는 행려병자들의 손발이 되어 돕고 영아원이나 양로원 등으로 다니면서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된 정임이도 매일같이 치매 어르신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씻기고 시중들기에 바빴다. 또 온전치 못한 어르신들은 종종 수녀들의 손과 얼굴을 할퀴고, 두들겨 패기도 일쑤였다. 우리 엄마는 가끔 동생의 면회를 다녀오면 손이나 얼굴에 난 멍자국과 손톱자국 때문에 한숨을 내쉬며 가슴아파하곤 했다.
하지만 정임이는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다부진 모습이었다. 나는 수녀원에서 가족을 초대하는 날 정임이를 면회했었는데, 정임이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 어쩔 줄 몰라하는 나와 달리 초연한 표정으로 감정변화없는 모습을 보여 놀란 경험이 있다.
그토록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하고 수녀로서 살고 있던 정임이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은 엄마였다. 엄마와 함께 돌아온 정임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에 온통 부스럼이 생겨 눈뜨고 볼 수 없는 형상에, 얼굴은 퉁퉁 부어 물이 잔뜩 든 풍선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허리도 디스크로 거의 못쓰는 상태가 되었다. 사실 수녀원에는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주님의 여종으로 살기를 맹세하고 수녀원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일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리라.
늘 내게 양보하며 사랑 베풀어
어린시절부터 정임이는 장녀인 나에게 치여 엄마의 보살핌이나 사랑도 나보다는 덜 받고 자랐다. 게다가 성격이 워낙 착하고 양보심이 많아 좋은 것, 예쁜 것을 질투하는 법도 없이 늘 나에게 양보했고 나 또한 매사에 동생보다 나를 먼저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동생은 한마디로 타고난 천성이 세례명처럼 ‘마리아’와 같은 아이였다.
사진설명
지난해 11월 5일 ‘지금은 라디오 시대’ 제작진이 지진으로 고통받는 파키스탄 난민들을 위해 써달라며 청취자들이 보내준 성금을 파키스탄 대사관에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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