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질에 고구마가 주렁주렁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차창을 꼭꼭 닫아걸고 에어컨에 의지해야 했다. 이젠 다르다.
에어컨을 끄고 창을 내렸다. 시원한 바람이 차안으로 밀려들었다. 가을이다. ‘하느님 섭리는 참 묘하기도 해.’ 똑같은 공기인데 가을날의 공기는 다르다. ‘후~욱.’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급할 것 없다. 천천히 그리고 천천히…. 공기를 만끽하기 위해 차 속도를 시속 60km로 유지했다.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9월 17일 일요일. 한껏 여유를 부린 탓에 평소 1시간이면 닿을 거리가 2시간 가까이 걸렸다.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322 북여주 성당(주임 이인석 신부). 현존하는 고려시대 유일한 전탑이 있다는 신륵사를 지나, 200m도 되지 않는 지점에 북여주 성당 신자들이 농사짓는 1000평 고구마 밭이 나타났다.
수원교구 북여주본당은 이 밭에서 9월 9~17일 2주 동안 ‘고구마 캐기 가족 체험 행사’를 열었다. 행사 마지막 날. 고구마가 과연 남아 있을까 걱정도 들었지만 “일단 오십시오”라는 사무장의 말을 믿고 호기있게 나선 길이었다.
“와~ 고구마다.” 아이들이 제일먼저 차에서 튀어 나갔다. 사무장의 말이 맞았다. 1000평 고구마 밭 중에서 약 700여평은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상황. 게다가 아직 다른 가족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700평 고구마밭은 이제 ‘우리 밭’이었다. 1만원을 지불하자 성당 측이 호미, 장갑 등 완전무장을 도왔다. 호미 하나 달랑 들고 일렬로 죽 늘어선 가족. 짙은 흙냄새가 반가웠다. 잠시 후, 흙과의 즐거운 놀이가 시작됐다.
“서걱서걱” 호미질 한 번에 고구마가 제대로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줄줄이 끌려 나왔다. 큰 놈, 작은 놈 예외가 없었다. 햇빛을 본 고구마들은 부끄러운 듯 붉은 빛이었다. 10분이 채 지나기 전에 상자 하나가 가득 찼다. 내친 김에 한 상자 더! 두 번째 상자도 금새 붉은 색으로 가득했다.
상자를 바라보는 가족들 얼굴에도 웃음으로 가득찼다. 희주(로사리아.10), 희경(소화데레사.9) 두 딸이 고구마 상자를 낑낑 거리며 들었다.
“후두둑~” 가을비가 내렸다. 조금이라도 지체했으면, 밭에 앉아 보지도 못할 뻔했다. 그제서야 도착한 서울에서 온 또다른 몇몇 가족들은 미리 성당에서 캐낸 고구마를 사서 들고 가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교회가 마련한 수확의 가을 축제에 함께한 우리 가족은 마치 하느님께 선택받은 가족인양 행복해 했다.
돌아오는 차안. 제법 빗줄기가 굵어졌다. 큰 아이가 말했다. “앞으로 한동안 식탁에는 온통 고구마 반찬이겠네.”
◎밤털이·추수감사제·국화축제…
가을 축제현장으로 떠나볼까
가을을 맞아 신앙인들의 ‘작은 행복’을 돕기 위해 축제를 마련한 본당들이 있다. 올 가을, 온 가족이 함께 교회 축제에 참가해 ‘가을날의 행복’에 푹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의정부교구 의정부 한마음 수련원(031-840-0018)은 10월 1일 수련원에서 밤 축제를 개최한다. 입장료 3000원이면 온가족이 함께 신나는 ‘밤 털이’를 즐길 수 있다.
가을 수확의 기쁨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행사도 잇따라 열린다. 서울 우리농(02-727-2275)은 10월 29일 도농 한마당 잔치를 개최, 갓 수확한 신선한 우리 농산물과 다양한 먹거리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강원도 원주교구 대화본당(033-334-2122)도 10월 중순경 추수감사제를 개최, 전국 신자들을 ‘가을 감사 축제’로 초대하고 있다.
또 안동 가톨릭농민회(054-636-9100)는 10월 중에 어린이 녹색체험 행사를 마련한다. 이번 행사는 어린이들에게 환경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주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다. 이밖에 마산 가톨릭 여성회관(055-255-5080)은 10월 18~20일까지 민들레 축제를, 대전 전의본당(041-863-2172)은 11월 초에 국화 축제를 각각 개최할 예정이다. 이지연 기자
기사입력일 : 200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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