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열어 너에게 귀기울인다
앞에서 마테오 리치의 대화법이 갖는 의의를 청중에 대한 존중과 연관지어서 네 가지 관점에서 소개하였다. 아래에서는 두 가지 의의를 더 언급하면서, 리치의 대화법이 토착화 신학과 관련하여 갖는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대화의 길 여는 들음의 덕
리치는 동아시아 세계를 대변하는 중국 선비(中士)가 먼저 말하게 하면서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는 여기에 짝을 이루게 하여 대화의 전 과정을 서양 선비가 아니라 중사가 결론짓게 한다. 명나라 사람들이 천주이신 ‘대부(大父)의 거룩한 뜻을 깨달아 그것을 받들어 지키게 한’ 리치의 공로를 인정하면서, 자신들이 천주의 가르침에 따라서 ‘선을 닦고’, 이로써 ‘악이 없는 백성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천주실의, 8편).
이것이 리치 대화법의 한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너에게 결론짓게 하는 이 기다림의 영이야말로 그리스도 교회가 다른 문화, 다른 종교, 다른 사회의 주체들을 만날 때 갖추어야 할 가장 절실하고 가치있는 덕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한다. 처음에 들었으면, 마지막에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이때 비로소 들음의 덕이 완성된다.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리치가 자기의 시대적 제약 속에서 이 덕을 얼마나 깊이 구현하였는가는 의문이나, 이때 비로소 ‘너’가 말하게 하는 것이 자기 말을 하기 위한 수단인 데서 머물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리치는 대화의 길을 열어 놓고는, 그런 토대 위에서 자기가 가슴에 품은 것을 말해 간다. 이것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충실을 말한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사실 대화란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8편 결론부에 가서 리치는 자신이 투신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저희들의 의도는 사람의 스승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세상의 잘못을 불쌍히 여겨서 원래의 길로 되돌리고, 이들을 위하여 한결같이 천주의 성스러운 교회에로 인도하여 교회를 채우려는 것입니다.”(천주실의, 429)
이를테면 리치는, 여기서는 점잖게 표현하고 있지만, 당시 명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사회 전체를 그리스도교화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고, 이를 위하여 자기의 전 존재를 걸었던 투철한 선교사였던 것이다.
토착화 신학과 관련하여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충실 없이는 창조성은 제대로 작용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느님이 되었든 민중이 되었든 신자가 되었든, 우리의 ‘너’가 하는 말에 사랑으로 귀기울일 줄 알면 알수록, 그만큼 깊이 자기 말을 할 줄 알게 된다. 돌려서 말하자면,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충실이 깊으면 깊을수록, 너에게 귀를 기울일 줄 알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너’의 기쁨과 희망, ‘너’의 신음과 고뇌에 창조적으로 응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동아시아인들에게 일정하게 그러하였던 것처럼.
자기 정체성에 대한 충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아직 창조적인 신학 비전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 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철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곧 교회가, 단순히 동아시아의 전통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정체성에 대한 충실 면에서 그만큼 낮고 얕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국의 토착화 신학이 깊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우리 신학자와 성직·수도자와 평신도가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영성 전통을 깊이 체화하지 못한 데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실로, 자기의 그리스도교 전통을 충실하게 체화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자신의 민족적 유산과 역사적 현장에 충실한 창조적 신학 비전을 제시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개인 차원에서나 공동체의 차원에서나 모두 그리스도교의 정통을 지키고자 하는 그리스도교 정체성에 대한 충실을 앞세워서 그 정체성의 창조적 실현을 억압하거나 가로막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신학을 하면서 신학적 정체성을 피상적으로 몰아가고, 영성을 산다면서 영성적 정체성 면에서 허약하며, 사목을 하면서 그 정체성 면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수준에 머물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교회가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에 부합한 형태로 그리스도교 진리를 창조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는 저 부끄러운 아류, 삼류 상태를 극복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신승환(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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