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만 보는 편협함이 한계
지금까지 리치의 대화법을 적극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면서, 그 의의를 살펴보았다. 그는 당대에 일반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정복주의적인 선교 풍토에 비길 때, 그야말로 혁명적인 수준의 새로운 적응주의 대화법으로 중국의 막힌 문을 열었던 위대한 선교사였다.
그리스도교 우월의식의 흠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의 대화 방법론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리치는 그의 시대의 아들이다.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교의 진리 선포를 성과 속, 영과 육을 갈라보면서, 내세를 인간의 본향으로, 현세를 금수들의 세상으로 주장하는 이원론의 틀 위에서 기획해 갔다.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교 우월의식을 가슴에 품고 선교에 임했던 한 선교사였다.
그의 이같은 시대적 한계는 단순히 책상 위에서 논의되다가 마는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이것이 그의 대화법과 연계되면서 표출되는 그리스도교 우월의식은 매우 중요한 흠결을 낳고 만다. 실로, 언제나 그런 것처럼, 생각은 현실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리치가 품고 있던 우월의식은 중국인들과 나누는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폭력적인 면을 드러내는 부족을 유발시키게 된다. 이것은 사고와 이성이 불러들일 수 있는 폭력과 불가분리적으로 연계되어 있는데, 아래에서는 이 측면에 관하여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리치는 동아시아인들과 대화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대화에는 명백히 한계가 설정되어 있었다. 예컨대, 리치는 중국의 유학자들과는 대화하면서, 이 나라의 불자들이나 도교쪽 사람들과는 대적한다. 유자들 중에서도 신유학파 사람들과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리치가 이처럼 불교나 도교, 당대의 신유학 계열에 있는 사람들과 대립각을 세운 것은 단순히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것은 리치가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채 자기의 서구 전통을 척도로 동아시아의 문화와 민인(民人)을 대상화하여 가르치려 드는 데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였다.
누구라도 새로운 현상에 직면하면, 모르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서구인 리치가 동아시아의 문화와 종교 현상을 접하면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현실은 인간의 조건에 따라서 발생하는 그야말로 필연이다. 문제는 자기가 아는 것을 가지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데서 발생한다.
어떤 현자는 잡초를 “아직 그 가치가 알려지지 않은 풀”이라고 정의하였다. 이것은 자신이 모르는 일체의 생명체 앞에서 보일 수 있는 겸손의 한 극치를 현시한다.
그런데 자기가 아는 것에 집착하는 시대와 그런 사람들은 이른바 ‘잡초’를 이런 식으로 규정한다. “쓸데없이 크고, 생장속도가 빠르고,…독성이 있고,…재배하기 까다롭고, 제초제에 내성이 강하고, 뿌리가 울퉁불퉁하다.”(http://www.greenreview.co.kr/archive/62WhangDaekwon.htm) 단적으로, ‘잡초’란 가치는 없는데 생명력은 강한, 제거되어야 할 무엇이라고 보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사고의 문제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누구의 입장에서 가치가 없는가? 자기가 아는 것만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협량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 이런 풀들은 그야말로 이름 없는, 이름조차 붙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 쓸데없이 나서 자신들을 고생시키는, 비경제적인 존재들일 따름이다.
하지만, 저 현자의 말을 빌어서 말하자면, 하느님이 직접 당신의 말씀으로 이것들을 있게 하시면서 이것들에게 부여하신 존엄과 가치는 우리 사람들이 아직 다 모를 수 있다.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 멸절시켜 버린다면, 하느님이 이것들을 통하여 이루실 일을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 갈 것인가, 사람이?
하느님의 창조 계획의 심오함과 온 생명계에 대한 건강한 감수성을 전제로 해서 볼 때, 리치는 당대에 불교나 도교, 신유학을 만나서 이런 대립적 ‘잡초’ 체험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원시 유학에서는 나름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포착해 내서 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대 중국 사회의 여타 종교들과 관련해서는 이것들이 하느님의 살리는 다스림 안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성찰할 보다 더 성숙한 역량을 갖추는 데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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