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내게 “자네는 내 종이 아니라 내 친구일세”(요한15, 14~15 참조)라고 말씀하셨다.
천부당 만부당하신 말씀이다. 성모님이 당신을 주님의 종이라 하셨거늘, 나야 주님의 종이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종의 열에 끼이기만 해도 영광일텐데 벗이라니! 횡재 중에 횡재로다. 과연 친구란 누구일까?
함석헌 선생은 “만리 길 떠나면서 처자와 아내를 마음놓고 맡길 그런 친구를 그대는 가졌는가?”라고 시로 적은 적이 있다.
언제라도 한밤중에도 마음놓고 찾아갈 수 있는 부담 없는 사람,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방석을 내주고, 발로는 걷어차면서도 술을 내오는 그런 사람이 친구 아닌가? 그런 친구를 나는 가졌는가?
내가 위로를 원하면 위로해 주고, 내가 서먹한 자리에 가야할 때 함께 가자고 하면 선뜻 나서 주고, 내가 아프다면 달려와서 함께 밤을 새워주며, 내가 아파 눈물지을 때 함께 눈물지어 주는 그런 친구를 나는 가졌는가? 나의 푸념을 지겨워하지 않고 끝까지 그냥 들어주는 그런 친구를 가졌는가?
아마도 그런 친구를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친구를 갖기 위해서는 몇 년, 몇 달의 우정으로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 함께 사귀었어야 그런 보물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먼저 나의 마음을 다 내놓고 나서야 그런 친구를 갖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구약성서에는 다윗과 요나탄이 참 친구의 전형으로 나타난다. 요나탄은 아버지 사울왕이 다윗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 할 때 이를 알려 주었다.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니, 내일 아침을 조심하게.”(1사무 19장 참조)
집회서는 말한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는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이런 친구를 얻으리라.”(6, 14~16) 이제라도 주님을 경외하여 그런 친구를 얻어야겠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친구가 되고 싶어하신다. 조건은 예수님의 명령을 지킬 때 친구가 되는 것이다. 소위 예수님과 코드가 맞을 때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분의 코드는 무엇인가?
사랑이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요한 15, 13) 목숨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목숨 다해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 그는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 쓸쓸한 인생을 보내지 않으려면 예수님과 친구가 되야 한다.
결혼한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친구처럼 늙어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참 친구가 되려면 끊임없이 사랑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내 목숨의 반을 내준다면, 그는 분명 나의 친구가 될 것이다. 부도로 절망 중에 있는 사람에게 내 재산의 일부를 팔아 부도를 막아준다면 그가 어찌 친구가 되지 않겠는가! 아, 그리운 친구 예수.
최기산 주교(인천교구 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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