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설움 보다 주위 시선 더 겁나”
# 가정 1
당신은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 하느님의 도움 때문인지 사업이 탄탄대로를 달렸다. 아파트 2채와 좋은 차를 가지고 있었고, 매월 정기적으로 복지시설을 방문, 봉사활동을 했다. 성당에서도 ‘열심한 신자’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집에서 쫓겨나 9평 남짓한 월 30만원 월세 집으로 가족 4명이 모두 함께 이사해야 했다. 본당 신자들도 모두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몇몇 신자에게 빌린 돈은 아직 갚지 못했다. 자~. 이제 당신은 주일 미사에 계속 참례하는 등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 가정 2
당신은 성실한 남편과 결혼 25년차를 맞은 주부다. 남편 수입은 박봉이었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며 절약해 아이들을 대학에 보냈다. 그런던 어느 날, 몸이 불편해 병원을 찾았다가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이후 조혈모세포 이식 등 치료비를 위해 엄청난 돈이 들었다. 간신히 몸은 어느 정도 추스릴 수 있게 됐지만, 남편의 직장이 부도가 나 실직상태가 됐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상태다. 당신은 신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신심 깊은 사람은 “신앙 생활과 경제적 상황은 별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실제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 심정을 모른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구동성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며 “경제적으로 추락한 사람이 주위 사람들의 눈치 보지 않고 성당에 나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신심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자들은 “사람들, 특히 형제 자매로 여겼던 신자들의 입이 제일 무섭다”고 말한다. ‘수군거림’이 가장 큰 마음의 아픔이라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가정방문을 하겠다”는 것도 겁이 나고, 교무금을 내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주임 신부의 강론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용기를 내 성당 일을 해 보려 해도, 주위 신자들이 “집이나 제대로 돌보라”며 외면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늘어나는 빈곤층에 대한 교회의 ▲우선적 선택과 ▲사목적 배려를 요청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이들 보다 더 큰 신앙적 도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결국 빈곤층의 증가는 ‘사회의 등대로 존재하는’ 교회에 큰 부담을 줌과 동시에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빈곤층 비율은 18%로 집계됐다. 2백84만2000가구, 8백69만3000명이다. 이는 2003년(16.9%)에 비해 1.1%포인트, 2004년(17.4%)에 비해서는 0.6%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4∼2005년 2년간 25만7000가구, 60만6000명이 새로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교회는 이러한 사회현상에 손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개신교의 경우, 빈곤층에 대한 배려가 남다르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서울의 한 교회의 경우, 빈곤층이 발생하면 신자들이 직접 직업 알선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 아무개(소피아?36)씨의 경우, 사별 후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개신교회에서 직업을 알선, 월 130만원을 벌고 있다. 교회가 사회안전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상황과 신앙이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신심만 깊으면 경제적 문제는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수원교구 복음화 보고서에 따르면, 교무금 실적율이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농촌에서 96.15%로 가장 높고, 신도시에서 86.78%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별로는 1000명 미만본당에서 97.70%로 가장 높았고, 7000명 본당에서 81.77%로 가장 낮았다.
신자 1인당 1회 주일헌금액도 농촌에서 약 2403원으로 가장 많았고, 도시에서 약 1844원으로 가장 적었다. 하지만 이같은 통계는 ‘본당 공동체성’이 유지되는가 되지 않는가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지, 경제적 형편과의 상관관계와는 무관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농촌본당의 경우, 경제적 형편 문제가 아닌 전출입 비율이 적고 공동체성이 유지되는 탓에 교무금 책정률 및 실적률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전문가들은 ‘본당 공동체성 및 가정 공동체성의 확보’가 최대 관건이라고 말한다. 본당 공동체 및 가정 공동체가 확보되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취재를 하면서 만난 많은 이들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는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뜻을 이해하는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만날 때 마다 가장 용기가 생긴다”는 말도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피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바오로 수도회 안성철 신부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현실은 우리 모두가 복음을 제대로 생활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어려운 이웃에게 마음이 열려있을 때 본당 공동체도 좀 더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도 어려움 딛고 신앙생활하는 윤혜영씨
어떻게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불과 2~3년 전만해도 윤혜영(임마꿀라따?48)씨는 남부럽지 않게 살던 중산층 주부였다. 남편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고, 아파트도 두 채나 가지고 있었다. 거금을 내놓아 복지시설 후원을 할 정도로 신앙생활에도 남달랐다. 대학시절부터 시작한 빈첸시오회 활동을 28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오고 있었다.
이뿐 아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 및 성가대 반주자로도 활동했고, 2년 6개월 동안 복음화 학교에도 다녔다. 주위에서는 “저만한 신자가 없다”고 칭송이 자자했다.
욥의 고통이 시작된 것은 3년 전. 한 두번 사기를 당하고 난 이후 남편의 사업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에서 돈을 빌려 보았지만 그럴수록 사업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결국 지난해 초 완전히 부도가 나고 말았다.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 보증금 500만원에 월 30만원 월세집으로 옮겨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슷한 시기에 자궁암 판정을 받아 대수술도 받았다. 밑바닥 생활이 시작됐다.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는 것을 걱정해야 할 형편. 하늘이 캄캄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미사 반주도 그만두어야 했고, 레지오 마리애 및 빈첸시오회 활동도 접었다. 하느님을 원망할 법도 했다. 하지만 윤씨는 그러지 않았다.
“어느 날 미사에 참례했는데, 예수님께서 채찍을 맞고 비틀거리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네가 나보다 힘드냐’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윤씨는 복지시설 도우미로 일하고, 남편은 학원 차량을 운행하며 재기의 삶을 시작했다. 매일 하던 가족 기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성당 미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힘든 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신자들의 말’이었다. 남편과 함께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면 “망한 처지에 저렇게 걱정없이 다닌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기 위해 웃으면, “어떻게 속없이 웃고 다닐 수 있을까”라고 했다. 웃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윤씨는 꿋꿋했다. 미사와 가족기도, 묵주기도를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현존해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고통의 의미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제 신앙을 꺾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저 혼자의 힘만으로는 힘듭니다. 주위에 저 처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함께 손잡고 위로하고, 그렇게 기도하며 하느님만 믿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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