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주민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불모지에
선교사 노력으로 1000평 규모 루위병원 건립
전문-아프리카 대륙은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나눔을 필요로 하는 대지, 사랑을 목말라 하는 땅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잠비아에서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는 프란치스코 전교봉사수녀회 수녀들을 돕고 있는‘아프리카 잠비아 선교후원회’회원들이 지난 9월 8~23일 선교 현장을 방문했다. 잠비아 곳곳에서 한국교회의 사랑,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퍼뜨리고 있는 선교사들의 삶을 통해 잠비아의 숨겨진 아픔과 희망을 나누고자 한다.
“알로! 알로! 돈 고…. 웨이트 미(Don’t go. Wait me)!”
대낮인데도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밀림 어디선가 경쾌한 목소리가 울렸다. 짙은 수풀이 드리우는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서도 한참을 두리번거리고서야 커다란 나뭇가지에 매달려 손을 흔드는 흑인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익숙하게 나무를 타고 내려온 소년이 손에 든 것을 내밀며 먹어보라는 시늉을 한다.
“노 땡큐(No, Thank you)” 원주민들로부터 아무거나 받아먹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었던 터라 웃으면서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아홉살이라며 자신을 소개한 흑인 소년 게프리 문중가와의 만남은 그렇게 미안한 마음을 한켠에 품은 채 시작됐다.
문중가의 안내로 울타리도 없는 그의 집에 들어서자 예닐곱명의 가족이 우르르 일어선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터라 그늘을 찾아 더위를 피해 있다 낯선 이방인을 맞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형언하기 힘든 따스함이 전해져왔다.
문중가의 가족은 지난 2000년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수녀회 선교사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부시지역 땀부(Ntambu)로 들어와 무료 의료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몇 해 전 아예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는 근처로 이사를 와버렸다.
이사라고 해야 솥과 그릇 등 가재도구 몇 가지를 추려 몸만 옮기는 단출한 일이지만 조상들이 터 잡은 한 자리에서 대대로 살아온 원주민들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오랜 삶의 터전마저 바꾸게 했을까?
“기적이예요.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문중가의 삼촌 데비디카 품바(41)씨는 수녀회가 최근 완공한 병원쪽을 가리키며 “미러클(기적)”이란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감기보다도 흔해빠진 말라리아에라도 걸리면 영락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그들로서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죽어가던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수녀들의 활동이 기적처럼 보였을 법하다.
기적. 밀림 속의 누구도, 아프리카의 어떤 이도 꿈꾸지 못했던 기적이 현실이 되는 현장, 잠비아를 찾아나선 길은 그렇게 충격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기적의 현장으로
지난 1996년 잠비아에 진출한 프란치스코 전교봉사수녀회의 선교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은돌라(Ndola)교구 무풀리라(Mufulira)까지는 수도 루사카에서 차로 7시간, 그 곳에서 다시 기적의 현장 솔웨지교구 땀부(Ntambu)로 향한 500여km의 여정은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다. 도로 곳곳이 패여 고속도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아스팔트길을 요동치며 예닐곱 시간 달리면 본격적인 고생문에 들어선다.
‘땀부(Ntambu) 78km’라고 쓰인 이정표를 따라 일행을 태운 미니버스가 비포장도로로 들어서자 붉은색 길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흙먼지가 밀림 위까지 치솟아 먼데서 보면 산불이라도 난 듯하다. 창문을 꼭 닫고 달렸건만 어디론가 새어 들어온 먼지는 버스에 탄 일행들을 하나같이 ‘붉은 원숭이’로 만들어 놓는다.
버스가 밀림 한가운데를 내달리자 숲에 가려 보이지도 않던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길가로 달려 나와 환영한다는 뜻의 “알로! 알로!”를 외쳐댄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까지 외국 사람은 고사하고 버스마저도 처음 보는 이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땀부는 오지 중의 오지. 짧은 구간이지만 버스가 서너 시간을 달려야 할 정도로 거친 길은 이 지구상에 몇 남아있지 않은 오지로 뚫린 유일한 문명의 통로요 희망의 끈이다.
흙먼지와 차멀미에 익숙해질 즈음 ‘루위병원(Luwi Hospital)’이라는 희망발전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꿈을 현실로 만들다
땀부에서는 아프기라도 하면 500km나 떨어진 대도시까지 나가야 하기에 병은 주민들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가장 가까운 병원이 145km나 떨어져 있어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는 주민들로서는 병원을 찾아가다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근근이 병원을 찾았다 하더라도 치료할 의사는 고사하고 약조차 없어 헛걸음을 할 때가 대부분이다.
한국이라면 쉽게 고칠 수 있었을 간단한 병도 주민들에게 너무도 큰 십자가를 지운다. 눈병을 방치하다 아예 눈이 멀어버린 노인, 부러진 뼈를 치료받지 못해 그대로 굳어버린 노파, 변변한 치료약이 없어 썩어 들어가는 살을 보고만 있는 소년….
그래서 4년 전 의료에 문외한이던 수녀들이 손수 병원을 짓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던 것이다. 시멘트와 섞을 자갈마저 귀한 곳이라 땅을 파고 바위를 캐내 일일이 정으로 맞갖은 크기로 쪼개는 일부터 시작했다.
시멘트는 한국 신자들이 보내온 돈으로 어렵게 구해온 것이라 하나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루위병원 책임을 맡은 강민영(카리타스) 수녀는 몸소 주민들과 함께 병원 건립 과정에 뛰어들어 한해에도 몇 번씩 말라리아로 고생하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아프리카에 진출한 후 그렇게 10년 가까이 준비해온 병원이 지난 9월 15일 문을 열었다. 원주민들 말로 ‘은총’이라는 뜻의 병원이 문을 연 이날 오전, 추장을 포함한 100여명의 지역인사와 따로 청하지 않았지만 반가운 마음에 새벽길을 나선 주민들까지 3000여명이 미사에 함께 하며 기쁨을 나눴다.
80헥타르(약24만평)의 대지에 연건평 1000여평 규모로 지어진 루위병원을 둘러본 주민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성당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지어진 병원은 114병상의 입원실을 비롯해 진찰실 검사실 X레이실 수술실 격리실 분만실 물리치료실 중환자실 회복실 등 잠비아에서는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췄기 때문이다. 전등과 세면기마저 처음 보는 주민들로서는 기적의 현장을 보는 듯한 감동이 밀려들 법했다.
이날 축복미사를 주례한 솔웨이지교구장 노엘 오레건 주교는 축사를 통해 “병원의 봉헌은 서로 다른 사람들 가운데 서로 다른 하느님의 선물이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며 “고통 받고 헐벗은 이,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귀한 선물을 나누는 이들로 하느님나라가 오늘 이 자리에 임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과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 선교후원 : 우리은행 111-318370-13-001(프란치스코전교봉사수녀회)
◎인터뷰-루위병원장 강민영 수녀
“이젠 전기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겠지요.”
루위병원 축복식이 열리던 날, 행사장 한켠에서는 감회어린 표정으로 남몰래 눈가에 고인 눈물을 찍어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지난 2002년 7월부터 꼬박 4년이 넘게 걸린 병원 건립 과정을 몸소 진두지휘해온 강민영 수녀가 주인공이다.
총건축비를 5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한국 신자들이 1차로 모아 보내준 5000만원을 종자돈으로 병원 공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이렇게 오래 걸리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경제난의 후폭풍이 드센 만큼 모금활동과 그에 따른 건립 사업도 기한 없이 늘어지기만 했던 것이다. 그럴수록 강수녀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만 갔다.
‘병원만 문을 열면 맥없이 죽어가는 원주민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텐데….’ 당장 눈앞에서 스러져가는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에 속을 끓여야 했던 그였기에 잠시도 쉴 새 없이 돌을 캐고 벽돌을 찍어내며 이어온 시간이었다. 그러다 말라리아에 걸려 한해에도 몇 번이고 사선을 넘나들어야 했다.
“가깝게는 10㎞, 멀게는 50㎞ 밖에서도 며칠씩 걸어 병원을 찾아오는 이들을 보며 우리가 해낸 일이지만 우리들보다 더 바라고 원하신 분이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이 채 문을 열기도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매달 1500명이 넘는 이들이 수십리 길을 걸어 병원을 찾고 100명 가까운 이들이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은 땀부 일대 원주민들에게 희망이 솟아나는 기적의 샘이 돼버렸다.
하지만 아직은 태양열판으로 낮 동안 모은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탓에 엑스레이기 한대 가동하기 힘들뿐 아니라 큰 수술을 하기에도 역부족이다.
대도시에서 전기를 끌어오려면 10억이 넘는 돈이 들어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스스로 부시우먼(bush woman)이 되고 말았다는 강수녀는 희망 섞인 웃음을 짓는다.
“저희보다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 당신이 마련하시리라 믿습니다.”
사진설명
▶9월 15일 3000명이 참례한 가운데 거행된 루위병원 축복식 미사에서 신자 대표들이 예물을 봉헌하고 있다.
▶솔웨이지교구장 노엘 오레건 주교 주례로 축복미사를 거행하고 있다.
▶루위병원장 강민영 수녀(맨 왼쪽)는 전기 부족 해결을 위해 10억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며 하느님의 은총과 은인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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