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문화 건설은 교회·사회 모두의 몫
'Respet Life'(생명존중)
한국 모자보건법·생명윤리법 개정 등 해결 과제 산재
미국 10월1일부터 전국적 ‘생명존중 프로그램’ 실시
현대사회 안에서 인간생명의 존엄성은 생명윤리의식 부족과 과학기술에 대한 무분별한 옹호,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 등의 영향으로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최근 한국교회는 물론 사회안팎에서도 생명 훼손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죽음의 문화’를 종식시키고 건전한 ‘생명의 문화’ 건설을 위해 수십년간 ‘생명운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현재, 교회의 생명 관련 가르침들은 대사회적으로는 물론 신자들에게조차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생명의 문화 건설은 일부 사목자 혹은 전문가만의 몫이 아니다. 범교회, 나아가 범국민적인 생명운동의 실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목 최일선인 본당공동체와 각 단체 및 개개인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 형성과 의식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 주교회의 ‘생명31운동본부’에서는 기존 생명운동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범국민적인 생명문화운동을 펼치기 위해 재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에서는 ‘생명31운동본부’ 총무인 송열섭 신부, 서울생명위원회 박정우 신부 등과 함께 모범적인 생명운동기구로 평가받고 있는 미국 주교회의 특별위원회 ‘Pro-Life Activities(의장 윌리엄 H.킬러 추기경, 이하 프로라이프)’ 운영 현장을 탐방, 활동 현황과 프로그램 등을 소개하며 한국교회 생명운동의 장단기 실천 방안을 모색해본다. ‘프로라이프’는 주교회의와 교구, 본당간 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생명운동을 지원한다. 또 프로라이프 활동은 독립된 국제단체를 통해서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교회 생명운동
한국 가톨릭교회 생명운동의 기치는 1960년대 산아제한을 내세우는 가족계획 실시에 따라 들어올려졌다.
더욱 본격적인 생명운동은 낙태반대운동을 중심으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그러나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되면서 사실상 낙태가 합법화됐고, 한국은 지금까지도 소위 ‘세계 최대 낙태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교회생명운동은 낙태 반대와 더불어 ‘행복한가정운동 전국협의회’가 주로 주관한 자연출산조절법 보급이 큰 축을 이뤄왔다. 90년대 들어서는 생명운동이 더욱 활기를 띄며 95년에는 ‘생명의 날’이 제정되고, 각 교구별로 생명·가정 관련 전담부서들도 속속 신설됐다. 2003년에는 주교회의 산하에 범국민적인 생명문화운동을 실천하기 위한 생명31운동본부가 출범했지만 각 교구와 본당에까지 활동이 파급되진 못했다.
한국교회는 2천년대 들어 생명공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야기된 안락사와 배아복제연구 등 새로운 생명윤리 문제들과 맞닥뜨린다.
이러한 때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등이 발족돼 보다 실질적인 대사회적 활동을 펼쳤지만, 아직 한국사회는 인간배아연구를 비롯해 독소조항을 담고 있는 모자보건법·생명윤리법 개정, 피임, 불임시술, 각종 성문제 등 크고 작은 해결 과제들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정 안에서 한국교회 생명운동은 실천보다 이론에 머무르고, 또한 일반신자들의 참여도 크게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즉 생명윤리의식과 실천이 개개인의 실제적인 삶 속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교육을 통한 의식화와 쉽고도 효율적인 참여 기회를 마련해야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일고 있다.
또 기존 활동의 답습이나 형식적인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정부 정책 등과 직접 연계, 운영되어야한다는 의견도 적극 제시됐다.
이에 따라 생명31운동본부는 앞으로 ‘기도’와 ‘교육’ ‘홍보’ ‘참여’를 활동 바탕으로 다지고, 대중적인 네트워크 형성과 교육 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교회 생명의 날
10월 1일, 미국의 전 본당에서는 2006~2007년 ‘생명존중의 날(Respect Life Sunday)’ 행사가 장엄한 막을 올렸다.
이날 전국 각 본당에서는 인간존엄성 회복과 생명수호 등을 지향으로 한 특별전례를 동시에 봉헌하며 ‘생명의 문화’ 건설의 뜻을 한데 모으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행사 전에는 구체적인 기도지향이 담긴 예식서와 매일, 매월, 특정 시기별로 바칠 수 있는 다양한 기도문이 제공돼 눈길을 끌었다.
‘생명존중의 날’ 행사는 미국교회의 대표적인 생명수호 운동의 하나이다. 미국교회는 1973년 낙태가 합법화되기 전부터 생명수호 캠페인에 돌입해, 1972년부터 매년 10월 첫째 주일을 의무적으로 생명존중의 날로 지내고 있다. 이 ‘생명존중의 날’부터는 앞으로 1년 동안 펼칠 생명존중 프로그램(The Respect Life Program)이 시작돼 더욱 의미가 깊다.
‘생명존중 프로그램’은 각 본당공동체와 단체별로 혹은 신자 개개인이 생명수호운동에 더욱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교육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기도와 자원봉사, 기부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이뤄진다. 특히 주교회의 프로라이프가 제공하는 자료는 신자들의 참여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프로라이프는 매년 가장 쟁점이 되는 생명윤리문제와 관련해 각종 자료를 제작해 프로그램 자료로 배포한다. 올해 프로그램 자료에서는 특히 부분낙태와 사형, 동성애, 줄기세포연구 등의 쟁점들을 다뤘다.
또 생명문화 증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모델을 비롯해 교회와 학교, 공동장소 등에 부착하거나 직접 나눠줄 포스터와 홍보물, 전례지침서 등 프로그램 전반에 관한 자료를 꼼꼼히 만들어 각 본당 등에 보낸다. ‘생명존중의 날’과 ‘생명을 위한 참회와 기도의 날(1월 22일)’, ‘성모영보대축일(3월 25일)’에는 사목자를 위한 강론자료를, 기도를 돕기 위해 미사 지향과 신자들의 기도문, 3대 성인에게 전구하는 9일기도문, 십자가의 길 등에 대한 기도문도 각각 제공한다.
때문에 본당 등에서는 생명운동 전문가를 따로 두지 않고도 안내자료에 따라 쉽게 참여하고 있다.
한편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 앞서 프로라이프 위원장 윌리엄 H.킬러 추기경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최근 프로라이프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결혼할 때까지 순결한 삶을 지키는 모임 참가 젊은이가 늘어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또 킬러 추기경은 “신자들은 전국적으로 낙태가 없어지고 생명문화가 건설될 때까지 개인적으로 혹은 가족이나 본당 공동체와 함께 단식하거나 매일 미사와 성시간에 참여하고, 묵주기도 등을 바칠 수 있다”고 독려했다.
“삶에 자리잡는 생명운동 돼야”
◎미국 주교회의 탐방한 생명31운동본부 총무 송열섭 신부
“생명운동이 특별한 활동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누구나 일상 안에서 실천하는 일상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길 기대합니다.”
9월 16~26일 미국 워싱톤 주교회의 특별위원회 프로라이프를 탐방하고 돌아온 송열섭 신부(한국 주교회의 생명31운동본부 총무)는 “한국교회 안에서는 생명운동이 특별하고 또 어려운 활동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생명운동이 생활 안에 스며든 일상습관이자 의무가 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03년 주교회의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생명31운동’ 확산에 적극 힘쓴 바 있는 송신부는 올해 5월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를 거쳐 ‘생명31운동본부’ 총무로 선임됐다.
송신부는 “한국교회 안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여전히 부족한 형편”이라며 “생명31운동이 범국민적인 문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보기 쉬운 메뉴얼과 참고자료를 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송신부는 “미국 젊은이들이 각종 생명 수호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한국에서는 지난 2003년 서울과 수도권 내 레지오마리애 청년 6천여명이 모인 이후 별다른 행사가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도 장기적으로 생명운동을 확산하기 위해 자원봉사자 양성이 시급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신자유무에 관계없이 자원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문화가 보편화되어 생명운동에도 큰 힘이 된 듯 합니다.”
아울러 “대사회 홍보와 정책에 대한 압력, 법 개정 등의 분야에서 적극 활동할 수 있는 신자 전문가 양성도 시급하다”고 밝힌 송신부는 “전문가 양성과 사제교육은 장기적으로 지속해야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사진설명
▶미국 워싱톤교구 가톨릭학생회 젊은이들이 낙태아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고 있다. ‘Pro-Life Activities’에서 제공하는 생명존중프로그램은 다음해 생명의 날까지 지속되며, 10월 ‘생명의 날’, 1월 ‘생명을 위한 참회와 기도의 날’ 등에는 대외적인 행사도 대규모로 열린다
▶미국 생명존중 프로그램(The Respect Life Program) 포스터.
▶송열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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