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화는 대화로 이뤄진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중국 본토에 처음 입국할 때, 승려복을 입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일본에서처럼, 동아시아의 가까운 나라들이니까, 불교가 사회의 이념과 질서를 주도하는 중심 세력일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에 정착하고 나서 곧바로 당대 사회 규범이 불교가 아니라 유교를 통하여 형성,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그후 그는 천주 신앙을 받아들이는 중국인들에게 불교와 도교 관련 서적과 물품과 상 등을 미신적인 것이라 하여 불태우게 하였다.
미신적인 것의 파괴
한 젊은 입교자가 신앙 때문에 그의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직접 나서서 상들에다가 다시 절하고 천주 신앙을 버리라고 요구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가혹하게 매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는데, 리치는 이 사실을 한 승리의 표지로 전한다. 그러면서 다른 개종자들이 절에 들어가서 불상의 손과 다리를 잘라 놓았다는 사실도 전하였다. 이 사건들을 겪으면서 리치는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그렇게 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주의를 주었음에도 별로 효력이 없어서 이런 파괴 현상이 계속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신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매질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또한 자기의 믿음을 지켜가는 것은 참으로 숭고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리치나 다른 선교사들은 이같은 문화 파괴에 직면하여 중국인들이 느끼는 심적 고통과 영혼의 상처를 잘 알지 못하였던 것같다. 당대의 한 선비는 선교사들이 입교자들에게 보살 관음상과 관우상 등을 가져오게 해서는 이들의 목을 잘라 변소에 내던지거나 불태우게 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모든 일을 생각할 때 온 몸의 털이 벌떡 일어서고,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 차고 영혼은 상처로 가득하다.…저들은 이런 식으로 중국의 성인들에게 맞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자극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잔혹 행위가 어디 있는가? 이는 실로 큰 죄악이요 신성모독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천주교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이런 파괴를 구원의 보증으로 선전하고 또 실제로 그런 보증으로 삼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중국의 성인상(과 불상)을 완전히 파괴하고 나서 대신 십자가를 세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교권에서 8세기초부터 9세기 중반까지 성상을 파괴하면서 대논쟁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성상의 상징적인 의미를 신학적으로 정리하면서, 성상 파괴의 야만을 극복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문화에 온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공자상과 불상 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하느님의 생명의 다스림 안에서 정당하고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당대의 서구 신학자들은 이 과제 앞에서 그들의 선조들이 과거에 유럽 문화 속에서 용기있게 작용하게 만들었던 이성적 결단을 중국인들을 위해서도 작용시키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신들의 이성을 이용하여, 비록 악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른바 종교적 야만을 정당화하는 우를 범하였다.
종교적 야만행위 반성
저 중국의 선비들이 알고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것은 단순히 중국의 상들을 파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상들을 생명의 길로 살아갔던 사람들의 생명력과 믿음을 파괴하는 종교-사회-문화적인 야만을 낳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역사적 현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저 일체의 파괴에 대하여 당연히 하느님께 질문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리치의 대화가 참으로 당대에 혁명적인 수준의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아직은 가다 만 성격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제약이 동아시아인들의 영혼에게 가한 고통과 상처가 이렇게 깊고도 심각하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한, 그리고 이것을 바르게 극복할 신학과 영성과 사목의 비전을 우리 교회가 새롭게 준비하지 못하는 한, 동아시아 복음화는 언제나 가다 마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복음화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대화’와 함께 ‘대화’만큼 성취되는 법이므로.
황종렬 (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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