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
가끔 자동차로 파출소에 밀고 들어갔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다. 그 이유는 경찰이 음주측정을 하면서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다. 화가 북받쳐서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면 앞에 일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일을 저질러 놓고 보자, 화를 풀고 보자는 절제 없는 단순한 사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가 보다. 파출소 안에 사람들이 있다면 죽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우선 행동으로 옮기고 보자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 성숙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체면은 참으로 중요하다.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험한 일을 하느냐’면서 놀고먹던 사람도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가면 청소하는 일, 세탁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한다. 체면 때문에 못하던 일도 일단 한국 사람들이 없는 곳에 가면, 혹은 문화가 다른 곳에 가면 바뀔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 잠시 있을 때, 한국 사람 집에 초청 받아 갔었다. 너무나 많이 차려서 상이 넘쳐 났다. ‘집에 식구도 많지 않은데 이 많은 음식을 다 어떻게 하려고 이리도 많이 차렸나?’하고 걱정했다. ‘체면이 있지 어떻게 조금만 차려 놓고 사람을 초대하느냐’는 생각 때문에 과소비를 했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사람이 나를 초대했다. 가보니 참으로 간단했다. 소시지를 그릴에 굽고 샌드위치를 주는 것이었다. 음료수로는 맥주와 콜라가 제공되었다. 한국 사람이 손님을 초대해 놓고 그렇게 차려 냈다간 초대받은 사람들이 난리를 칠 것이다.
왜 우리는 체면을 중시하는가? 체면을 상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가? 물론 긍정적인 면으로도 봐야 하겠지만 부정적인 면에서 보고 잘못됐으면 고쳐가야 할 것이다.
과거에 이런 자존심을 역이용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골에 장사꾼이 가서, 사람들에게 아주 싼 물건을 보여주며 “여긴 생활형편이 좋지 않아서 이렇게 싼 물건 밖에는 살 수 없겠죠”라고 말했단다. 그러면 버럭 화를 내면서 “무시하지 말아요”라고 응답하는데 그때 아주 비싼 것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비싼 걸 어떻게 사시게요. 서울사람이나 사는 건데요”라고 말했단다. 자존심이 상한 아줌마가 식식거리면서 “내 놔요. 내가 하나 살 거 에요”라며 샀다는 것이다.
그것 사놓고 얼마나 후회했을까? 그 자존심 때문에...
자존심, 체면을 앞세워 ‘에헴!’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가던 바리사이, 사두가이들에게 예수님은 넌더리를 내셨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태 9, 11)라고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체면을 구기면서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이상하게 생각했던가 보다.
우리의 스승께서는 체면보다 사랑을 먼저 생각하셨다. 우리도 스승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최기산 주교(인천교구 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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