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한꺼번에 수용 못해 3부제 수업
자조공동체 만들어 유치원 운영 도맡아
선교사들 땀·열정으로 주님 향기 전해
# 잠비아의 희망제작소 1 - 땀부 ‘그레고리오 에디타’ 초등학교
땀부 루위병원에서 12km 떨어진 카피디(작은 돌언덕이라는 뜻)B에 위치한 ‘그레고리오 에디타’ 초등학교. 흑인 소녀 에그넨스(12)는 책상 위에 놓인 공책이 보물이라도 되는 듯 두 팔로 감싸 안다시피 하고 있었다. 학교가 문을 열기 전까지 에그넨스는 공책도 연필도 구경한 적이 없다. 아니,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다. 열살이 되도록 나무작대기로 땅바닥에 그림이나 그리는 게 고작이었다. 그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 200여명이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의 은인이 보내준 건축기금으로 학교가 문을 연 이후 마을 추장까지 자신의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줄을 설 정도로 학교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에 퍼졌다. 평생 한번 책 구경도 하기 힘든 밀림지역에서 처음으로 수천권의 장서를 보유한 어엿한 학교 도서관이 생긴 것도 학생들은 물론 주민들에게는 일생일대의 역사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7년의 초등학교 과정 중 현재는 5학년까지만 공부를 하고 있다. 첫 졸업생을 배출할 즈음이면 2년 과정인 중학교 교육을 시킬 수 있는 학교가 바로 초등학교 앞에 세워질 예정이다. 하느님의 도움이셨을까, 아이들의 앞날을 걱정할 때마다 선교사들 앞에 후원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서 수녀들은 더 이상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하느님만 믿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갈 뿐.
“아이들에게 처음 비디오를 틀어줬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1년 남짓, 학교가 문을 연 후 아이들과 지내온 시간을 회상하는 강민영(카리타스) 수녀는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는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는다. 난생 처음 텔레비전을 통해 동영상을 본 아이들이 어떻게 조금만 상자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느냐며 난리를 쳤던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가 제공하는 건 교육만이 아니다. 꿈에도 꿔보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인 것이다.
에그넨스는 카피디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면 몇 년 후 루위병원 앞에 들어설 예정인 간호학교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한다. 피부색보다도 까만 눈망울을 굴리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아이들 모습 속에서 남모를 감동과 함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전해져 왔다.
# 잠비아의 희망제작소 2 - 무풀리라 ‘자카란다 농업기술학교’
오늘은 병아리 250마리를 들여왔다. 얼마나 잘 자라는지 한달이면 장에 내다팔아도 될 정도로 쑥쑥 큰다. 이태 전 사온 소 두마리는 해를 넘기며 여덟마리로 불어나 있다. 또 몇 달만 지나면 새끼 두마리가 더 태어난다.
38헥타르(약 11만5000평) 넓이의 자카란다농장을 책임지고 있는 김무열(임마누엘라) 수녀는 머리에 쓴 수건만 아니면 영락없는 원주민이다. 10년 전 잠비아에 들어온 후 손수 일구기 시작한 농장은 이제 무풀리라뿐 아니라 잠비아 전역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아프리카에 오기 전까지 농사라곤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김수녀는 농장문을 연 후 이것저것 안 지어본 농사가 없을 정도로 농사꾼이 돼버렸다. 우선 주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발전을 기약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렇게 커질 줄은 자신도 몰랐다. 손수 닭 돼지 소 토끼 등 가축을 사육하고 옥수수와 콩 양배추 토마토 등을 파종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바라기도 심어 기름을 짠다. 어떻게 이런 일을 다 해낼 수 있을까, 스스로를 돌아보며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지난 2003년에 문을 연 2년제 농업기술학교는 잠비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로부터 정식인가까지 받은 학교지만 강의실이라고 해봐야 하나뿐이다. 교사 3명이 학생 13명과 함께 오전에는 주로 이론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농장에서 함께 야외실습을 한다.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실습할 수 있는 땅을 줘 학기 후에 평가하는 것은 물론 거기서 나는 작물을 판 수익금을 저축해뒀다 졸업 후 고스란히 돌려줌으로써 삶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도 이 학교만이 지닌 독특한 교수법이다.
김수녀는 기술만 전수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농장 부근에 200헥타르(약 60만4800평)의 땅을 별도로 임대해 정착촌을 일궈나갈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졸업생들 가운데 뜻있는 이들에게 5헥타르(약1만5120평)씩의 땅을 나눠줘 스스로 자립의 토대를 마련해나가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배출된 1기 졸업생 가운데 함께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도 적잖아 김수녀의 기대는 머잖아 현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적인 여건만 되면 교실을 몇 개라도 더 지어 더 많은 청년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김수녀는 요즘 새로운 구상에 빠져있다. 가난한 주민들의 자녀들을 위한 초등학교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초록색 녹음 사이에서 도드라지지 않는 보랏빛 빛깔로 그윽한 향기를 내며 아프리카의 풍경에 운치를 더해주는 ‘자카란다’, 그 꽃에 원주민들 사이에서 은은한 주님의 향기를 전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 잠비아의 희망제작소 3 - 무풀리라 가와마마을 ‘인산사학교’
빈민들의 집단 거주지인 컴파운드 가와마마을에 위치한 인산사(Nsansa, ‘행복’이란 뜻)초등학교는 그야말로 주민들에게 희망 그 자체다. 가난 때문에 학교에 보낼 수 없어 체념한 지 오래인 자신들 틈으로 선교사들이 비집고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주민들은 그리 큰 기대를 갖지 않았다. 먹고살기도 힘든 터에 교육이라곤 꿈도 꾸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수녀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교육환경은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책과 연필도 없이 선생님의 입만 바라봐야 했던 학생들은 이제 제 가방을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타 지역 학교의 교장이나 교사들도 빈민지역 학교라고 우습게보고 왔다 놀라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사들의 열정도 열정이지만 다른 학교에서는 꿈도 못 꾸는 도서실을 갖춘데다 아이들에 대한 각종 부교재 지원도 일반 공립학교보다 훨씬 나은 편이어서 학생들의 평균 성적도 뛰어나다.
이런 변화를 확인시켜 주듯 요즘 학교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교실이라고 해야 달랑 5개뿐이지만 교육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찾아나선 아이들의 발걸음을 외면할 수 없어 5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받다보니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은 늘 학생들로 북적댄다. 학생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없어 3부제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입학하고 싶다는 대기자만으로도 당장 한 학년당 서너 반씩은 더 만들 수 있을 지경이다.
학교 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양경희(데레지나) 수녀에게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스러울 뿐이다.
“주민들이 자신들 가운데서 희망을 발견하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북돋우는 게 저희들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가와마마을에는 아직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들이 많아 나이가 찼음에도 학교에 가지 못하는 미취학 아동들을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양수녀는 5~6살 연령대의 아이들로 유치원을 개원했다. 주민들로서는 난생 처음 받아보는 호강인 셈이다. 받고 싶은 아이들은 넘쳐났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우선 30명만으로 시작했다. 더 어린 서너살의 아이들도 돌보고 싶지만 손이 없다. 교사 1명의 월급도 근근이 주고 있는 실정에서 욕심을 냈다가는 감당할 수 없을 게 뻔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위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마저 서슴지 않고 나서는 수녀들을 보고 마을 주민들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발적으로 바자를 열어 모은 수익금으로 선교사들을 위한 화장실을 마련하는가 하면 학교의 이런저런 일을 자신들의 일처럼 돕고 나서고 있다. 이제는 스스로 자조공동체를 만들어 유치원 운영을 도맡고 나서는 등 놀라운 변화를 보이고 있다.
“주민들과 기쁨 슬픔을 나누면서 그들이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하느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살아계심을 깨닫습니다.”
먼저 다가가 나눔을 통해 변할 것 같지 않던 주민들에게 하느님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들, 어느새 주민들의 표정과 낯빛을 닮아가는 그들을 통해 새로운 하느님나라가 열리고 있음이 보였다.
사진설명
▶그레고리오 에디타 초등학교 학생과 교직원들이 한 동뿐인 학교 교사 앞에서 함께 했다. 상급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난 만큼 이들의 희망도 쑥쑥 자라나고 있다.
▶인산사 초등학교 학생들이 방문을 환영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책상 가득히 놓인 공책에서 그들이 써내려 가고 있는 꿈이 읽힌다.
▶자카란다 농장에서 김무열 수녀가 후원회원들에게 농장에서 개발해 보급하고 있는 농사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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