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포기하고 가수의 길로
아버지에게 너무 큰 상처 남겨
그렇게 오디오에 푹 빠져 살면서도 직접 노래하겠다는 생각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실 해보질 않았었다.
어릴 때는 주로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굳이 표현하자면 평범한 모범생과 정도엔 속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6.25 한국전쟁이 발발해 피난 중에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까지 진학했다. 모두가 고생스럽던 시절 때문이기도 했지만 난 특별히 노래하는데 관심을 갖진 않았었다. 단지 미국 라디오방송을 통해 음악을 자주 듣곤 했다.
당시 수원에서 피난민 종합학교를 다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나는 다시 서울 경복고에 복학해 졸업을 맞게 됐다. 그리고 서울대 법학과를 가게 됐다.
시험은 곧잘 치러 성적도 우수한 편이었지만 솔직히 법대를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법대는 순전히 아버지가 원하는 대학이었다. 나는 상과에 진학하려 했는데 아버지는 “네가 성적이 안되면 몰라도 성적도 넘치는데 왜 상과를 가느냐. 사법고시 치고 판검사는 해야잖겠냐” 하시며 내키지 않아하는 나를 대신해 직접 원서까지 사오셨다.
우리 아버지는 무섭거나 강압적인 분은 아니셨지만, 나는 아버지의 뜻에 토를 다는 일은 하지 않는 그런 아들이었다.
그렇게 돌이켜보면 아마 내가 노래한답시고 대학문을 박차고 나온 것은 아버지가 인생에서 가장 겪어내기 힘겨웠던 자식의 반항이었으리라.
그래도 대학교 3학년 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시에도 응시했었다. 이후 노래에 정신없이 빠져 졸업도 겨우 했다. 졸업논문 제출 시간은 다가오고 공연은 줄지어 이어지고…. 눈코뜰새 없이 바쁜 가운데 마음은 급해 아예 대기실이나 분장실에서 논문을 쓰기도 했다. 아마 서울대 법대를 나와 가수를 하는 사람은 아직까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아버지는 내가 고시를 포기하고 가수의 길을 걷는 것을 알자 크게 상심하셨던 것 같다.
당시 대한일보 문화면에 ‘대기만성형 학사 가수 최희준’이란 제목으로 대문짝만한 기사가 났는데 아버지께서 “저 가수가 바로 너지?”하시는데 나는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 마음에 너무나 큰 상처를 드린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노래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제1회 서울대 장기대회에 참가해 노래실력을 선보이면서부터였다. 이후 미8군 클럽 악단에서 활동하던 친구의 적극적인 권유로 오디션에 참가했었다.
당시 미8군 클럽 무대는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야 설 수 있는 검증된 무대이자, 수많은 인기가수를 배출한 무대이기도 했다. 노래 아르바이트가 과외보다 훨씬 더 많은 돈도 벌면서 나는 노래 아르바이트에 더 치중하게 됐고, 점차 대중음악의 정점에 서게 됐다.
미8군 클럽 무대에서 나는 국내외 뮤지션들과의 협연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대중음악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때 내 별명은 ‘한국의 냇킹콜(Nat King Cole)’이었다. 나는 냇킹콜의 모창을 시작으로 재즈를 특히 즐겨 불렀다. 정적인 연주스타일에 지적인 매력까지 풍기는 쿨재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다.
그리고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를 타이틀로 첫 음반을 취입하게 됐다.
그 시절에는 수요는 많았지만 공급은 잘 되지 않던, 다시말해 노래하는 이들이 많이 부족한 때였다. 게다가 제대로 노래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진설명
1960년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를 타이틀로 첫 음반(왼쪽)을 취입하며 마침내 가수의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토록 판검사가 되길 바라던 아버지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기사입력일 : 200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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