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랑 만난 ‘민족화해호’ 해법은?
대북 교류와 지원은 어떤 상황서도 계속돼야
효율적 민족화해운동 위한 제도적 틀 급선무
북한의 핵실험으로 그 어느 때보다 거센 풍랑 앞에 놓인 ‘민족화해’호의 좌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가 11월 2~3일 1박2일간 서울 예장동 서울유스호스텔에서 개최한 제9차 민족화해 가톨릭 네트워크는 표류 위기에 처한 민족화해를 향한 항로에 새로운 나침반을 마련한 행사였다.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 사회-한국 천주교회의 과제’를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북핵 사태 이후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반목과 갈등의 뿌리를 반세기가 넘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상존하고 북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찾았다. 또한 참석자들은 이번 사태를 성찰의 계기로 삼음으로써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운회 주교는 이날 ‘북한 핵실험과 평화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북한 내부의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고 통일 이후 등에 대비해 북한 주민의 민심을 미리 잡아놓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면서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 사회를 안정시키고 생존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게 장기적으로 통일비용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주교는 “신앙인들은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대립하고 있는 이들이 민족적 운명에 대한 책임의식과 신념을 가지고 대화하도록 중재자가 돼야 한다”고 밝히고 “지속적인 인도적 지원과 교류는 어떤 상황에서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의료지원을 위해 70번 이상 북한을 방문한 바 있는 ㈔나눔인터내셔날 이윤상(베로니카.43) 대표는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의 현실과 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대북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민간단체는 현장 중심활동과 민간교류의 통로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정치적 중립성과 인도주의 원칙에 기초한 독립적이고 유연한 활동을 통해 정부나 유엔기구의 과도한 정치적 접근이 초래할 수 있는 충돌과 대립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이대표는 또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은 남북관계의 최소한의 안전판으로 중단돼서는 안 되며,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상황 악화를 간과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교회가 국민들이 마음을 열고 북한 상황을 이성적으로 볼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지난 1996부터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좋은벗들’ 이승용 부장은 ‘재외 탈북자 문제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탈북자 규모는 1999년 30만명에서 현재 10만명으로 급감했으며, 탈북 동기도 1990년대 후반과 달리 식량, 생계, 인권 침해 등 다양한 요인이 혼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 내 탈북자의 90%가 여성으로 추정되고 20~40대의 연령층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탈북여성이 낳은 5만여명에 이르는 난민아동 문제가 새로운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부장은 이러한 북한 난민 문제의 해법으로 ▲탈북의 원인이 되는 식량난과 인권 개선 ▲난민 여성 자녀들에 대한 교육기회 제공 ▲지나친 정치적 접근 배제 ▲국제사회의 북한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수용정책 확대 등을 제안했다.
국내에 들어온 새터민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들에 대한 정서적 지원의 필요성이 폭넓은 공감대를 이뤄냈다.
공릉종합사회복지관 김선화 부장은 ‘지역사회 중심의 새터민 정착지원’을 부제로 한 발표에서 “새터민에 대한 교육 내용이 포괄적이고 다양한 반면 이를 흡수하기에는 새터민들의 환경적 조건과 내적 조건이 적절치 못해 교육 효과가 높지 못하다”고 밝히고 “새터민 정착은 지역 중심, 생계밀착형 서비스와 맞춤형 서비스 제공의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개된 자료에 따르면 남한에 입국하는 새터민 수는 1999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02년부터는 매년 1000명을 초과하고 있으며, 곧 1만명 시대를 맞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관련해 김부장은 “새터민은 종교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남한 정착 과정에서 꾸준하게 종교단체와 연결돼 종교활동을 한다”고 밝히고 “천주교회는 지역적 기반과 함께 다양한 분야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어 새터민들에 대한 제도적 접근의 취약점을 보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교회가 지역사회 안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선 새터민 최혁(가명)씨는 “새터민의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지역사회 중심의 접근이 실질적 도움이 된다”면서 “새터민들의 자존감을 건드리지 않는 지원이 이뤄질 때 새터민들이 보다 한국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으며 통일 전후 과정에서도 올바른 역할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을 빚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교회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접근이 이뤄져 눈길을 모았다.
좋은벗들 노옥재 사무국장은 ‘북한사회와 북한 주민, 인간 안보로서의 인권’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북한 핵실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생존마저 위협당하는 북한의 취약계층”이라고 지적하고 “북한 주민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은 대북정책은 인권 개선의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으며 인권이란 미명하에 오히려 인권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노국장은 “북한 정권적·체제적 차원의 인권 침해 문제는 문제제기의 의도와 절차에 있어 정치적 압박으로 왜곡될 여지가 있다”고 강조하고 “북한 주민 대다수의 인권 침해가 일어나고 있는 부분에서부터 순차적으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개선책을 우선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종합토론을 통해 교회의 민족화해운동이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각 교구 단위뿐 아니라 본당까지 민족화해분과가 구성돼 제도적 틀을 구축하는 게 급선무라는데 공감대를 이뤄냈다.
또 흔들림 없이 민족화해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 함께 올바른 인식을 유지하는데 전제가 되는 지속적인 정보 제공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했다.
◎인터뷰/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총무 함제도 신부
“북한지원, 신앙인의 당연한 몫”
인도적 도움은 북한 인권상황 호전 계기
상대방 배려하며 형제적인 관계 회복을
“고통받는 이들 가운데 예수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누가 가장 고통스러울 지 돌아보면 어렵지 않게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핵실험 이후 신자들이 겪고 있는 혼란에 대해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총무 함제도 신부(메리놀외방전교회 한국지부장)는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찾고 따르면 된다”며 의외로 손쉬운 해법을 제시한다.
국제카리타스 대북지원사업 운영위원회 의장으로 가톨릭교회의 대북 지원사업 조정자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한 함신부의 생각은 한국교회의 순교자정신에 맞닿아 있다.
“다시 한번 순교자정신을 되살려 인내심을 갖고 희생하는 마음으로 북녘 동포들에게 다가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소신학교 시절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져오다 1960년 사제품을 받은 직후 한국에 파견돼 반세기 가까이를 한국인으로 살아온 함신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신앙인으로서 당연한 몫임을 힘주어 말한다.
그는 핵문제와 상관없이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면서 대화를 위한 꾸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 교황청의 입장을 상기시키며 신자들의 영신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1995년 북한의 대홍수 이후 20번 넘게 북한 곳곳을 방문하며 남과 북의 사랑을 이어온 함신부는 도움을 주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는 자칫 겸손함을 잃기 쉽습니다. 상대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다가설 때 형제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녘 동포들과의 교류와 만남이 잦아지면서 그들 안에 심어져있는 신앙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는 함신부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난민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이는 새터민 발생을 줄여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전반적인 인권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민간 교류에 대한 확신과 실천의 바탕은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떠한 조건도 달지 않습니다.”
사진설명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는 11월 2~3일 제9차 민족화해 가톨릭 네트워크를 개최, 민족화해를 향한 새로운 나침반을 마련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참석자들이 민족화해 가톨릭 네트워트 워크를 마치며 기념촬영을 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