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비우면 영원히 품는다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과 사람, 하느님과 온 우주 만물을 이을 말씀으로써 우리 가운데 오셨다. 요한 복음서는 이 사실을 이렇게 진술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 14) 희랍어 원본을 직역하면 이렇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서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
마음의 공간을 내어주자
내가 서울가톨릭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 가운데 한 말씀이 이것이다.: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
이 대목은 “비움의 영성”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 텐트 안에 무언가를 가득 채우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이 살 텐트가 되지 못한다.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런 텐트에서는.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치신 텐트의 저 빈 공간은 아버지의 비우심(kenosis)은 물론, 아버지의 뜻에 따른 비움의 실천을 통하여 죽음에까지 이르며 아버지와 함께 이루신 인류의 구원 공간을 상징한다. 그분은 그렇게 텐트 비우듯 비운 사람과 교회와 세상의 마음 안에 당신의 거처를 마련하실 것이다. 구원이 그 안에서 살도록.
만일 텐트가 차 있으면? 그러면, 그분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데서 볼 수 있듯이(루카 2, 7) 그곳을 떠나서 다른 텐트를 찾아가실 것이다. 만일, 받아들일 공간-마음을 내어주지 않으면,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은 발의 먼지를 털고는, 빌어주었던 “평화”와 함께, 다른 빈 텐트, 가난한 마음들을 찾아 떠나실 것이다.(마태오 10, 12~14)
텐트란 사람들을 품기 위해 있는 것이다. 텐트가 다 채운 채 비울 줄 모르면, 텐트는 이미 텐트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영원히 비우면 영원히 품는다. 이것이 텐트의 존재 방식이다. 이것이 텐트의 공(空)이요, 공의 있게 함이요, 공의 쓰임이다. 텐트는 비어서 있는 것이고, 다 차 버린 채 비울 마음을 회복하지 못하면, 그때 텐트는 없게 되고 만다.
지학순 주교가 정의를 위한 투신을 통하여 자각하고든 않고든 사목자로서 이루고자 한 하느님의 생명의 다스림의 육화는 텐트 되기의 사명 안에서 역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주교의 텐트 되기는 두 양상으로 나타난다. 자신이 예수의 제자로서 비우는 방식과 그렇게 비우는 이들과 함께 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지주교는 스스로 마음을 비워서 이용하겠다는 이들조차 들어와 쉬도록 텐트가 되어 주었고, 그런 이유로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으로부터 고초를 당하였다. 그런데 지주교가 사목 말기에 접어들어 자신의 무력을 체험하는 가운데서도 젊은 사제들이 겪는 고난의 여정을 품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적도 품어 주는 사랑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에서 노동자 파업이 발생할 무렵, 사북 지역에서 광산 노동자 약 5만 명이 “어용 노조 퇴진과 도급제 철폐”를 주장하면서 파업을 시도한 바 있다. 사북 고한 성당은 1985년 8월에 광산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가톨릭 광산 노동 문제 상담소를 열고 활동한 적이 있는데, 상담소를 ‘불순세력’으로 몰아 극렬하게 탄압당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주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하루는 사북 주임 김영진 신부에게 전화하여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이렇게 말하면서 흐느꼈다. “김신부, 불쌍한 노동자들을 위해서 목숨을 던져라…. 흑흑흑.”
텐트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자기가 품는 것이 더 평안할 수 있다. 지주교 자신이 이미 1970년대 후반에 “교회가 그리스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고난과 박해 더 나아가 죽음까지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또한 1974년 7월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납치되었을 때 발표한 ‘양심선언’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 자신이 이를 실천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려울 수 있는 것이 있다. 목숨을 노리는 이들 앞에서조차 신음하는 사람들과 함께 현장에서 그들의 동반자가 되어 주는 가난한 마음의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자신이 힘이 되어 줄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또 그것을 체험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한 주교로서 가장 철저하게, 텐트가 되어 주는 이들을 위한 텐트 되어 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21세기에 우리 한국 교회는 어떤 형태로 민족과 민중에게 하느님의 다스림이 숨쉬는 생명의 텐트가 되어 줄 것인가?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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