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주일 기획] '평신도' 용어 변경 필요한가
온라인 등 여론조사에서 “바꿔야한다” 응답 많아
용어 변경 보다 “소명·정체성 교육 필요성” 의견도
이번에 같은 주제로 실시된 조사는 두 가지이다.
‘가티즌에게 묻는다’는 온라인상으로 실시, 무작위적으로 가톨릭 신자 네티즌들의 전체적인 의견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고 ‘100인에게 묻는다’는 교회내의 여론 주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지도급 평신도들 100명을 선정하되, 조사의 편의를 위해 대상은 임의로 이뤄졌다.
따라서 이번 두 가지 조사는 모두 엄정한 학문적 연구 분석의 성격을 띤다기보다는 교회 각 계층 구성원들의 일반적인 여론의 향방을 파악한다는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좀 더 철저한 대상자 선정과 조사 문항 작성 및 연구 분석 과정이 요구된다.
■ 조사의 필요성
우선 이러한 주제의 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그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평신도’라는 용어가 지니는 문제점에 기인한다. 즉 ‘평신도’에서 ‘평’이라는 말이 자칫 성직자, 수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반 신자들의 위상이 하급하다는 오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실제로 여러 뜻 있는 자리에서 지적된 바 있다.
지난 2003년 6월 본회의를 마친 서울대교구 교구 시노드는 시노드의 총결과물인 ‘최종 건의안’에서 평신도 사도직의 활성화 문제와 관련해 우선적으로 성직자, 수도자에게만 성화 소명이 있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평신도’라는 용어 대신 성화 소명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적절한 명칭을 찾아야 한다고 건의한 바 있다.
이러한 건의안에 대해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그해 9월 28일 시노드 폐막식을 거행하고 반포한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의 평신도 영역 제20항에서 평신도라는 용어가 “교회 구성원들의 신분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 쓰이는 용어일 뿐, 이들 간에 차별을 두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하면서 시노드 기도문에서 “교우라는 용어를 수도자와 성직자 앞에 내세우고 있는 것은 뜻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평신도의 본래 의미가 차별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 안에서 현재 평신도들의 떨어진 위상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 ‘평신도’라는 용어로 인해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 조사 결과 개요
두 가지 조사에 응답한 총 신자수는 569명으로 온라인 조사인 ‘가티즌에게 묻는다’가 469명, ‘100인에게 묻는다’는 100명이 응답했다. 그 중 ‘평신도’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응답은 348명으로 61.2%, 바꿀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217명으로 38.8%로 나타났다.
‘평신도’ 용어 개칭 필요성
이를 각 조사별로 보면, 온라인 조사에서는 63%가 바꿔야 한다, 37%가 바꿀 필요가 없다로 나타났고, ‘100인에게 묻는다’에서는 55%, 45%가 각각 바꿔야 한다와 바꿀 필요가 없다는 응답으로 나타났다.
한편 비교적 단순한 조사로 처리된 온라인 조사와는 달리 ‘100인에게 묻는다’는 구성원들별로 세분화된 결과를 보이고 있다.
이 조사의 대상자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학자 총 29명, 각 교구 사목국장 5명, 사도직 단체장 11명, 일선 본당 구역장 및 반장 21명, 남녀 수도자 15명, 본당 사제 10명, 각 교구 평협회장 9명 등 총 100명이다. 신분별로 보면 성직자가 23명, 수도자가 26명, 평신도가 51명이다.
성직자의 경우 10명이 바꿔야 한다, 13명이 바꿀 필요 없다로 나타나 절반이 채 안되는데, 수도자의 경우에는 19명이 바꿔야 한다, 7명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응답해 압도적인 수가 바꿔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평신도의 경우, 구역장 반장들은 21명 중에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응답이 14명으로 바꿀 필요 없다는 응답 7명의 두 배로 나타난 반면, 각 교구 평협회장의 경우에는 3명이 바꿔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나머지 6명은 바꿀 필요가 없다고 응답해 대조를 이뤘다.
전체적으로 평신도들은 51명 중에서 26명이 바꿀 필요가 있다, 25명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응답해 거의 동일한 수준을 보였다.
‘교우’가 압도적 지지
한편 ‘평신도’라는 명칭을 바꿀 경우,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선택된 것은 ‘교우’로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온라인 조사에서는 ‘교우’가 ‘평신도’라는 용어를 대신할 가장 적절한 용어라고 응답한 사람이 267명으로 3분의 2에 달하는 65%의 지지를 받았고, ‘신자’가 106명(26%), ‘신도’가 37명(9%)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는 ‘100인에게 묻는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데, ‘평신도’라는 용어를 대신할 용어로 69.1%가 ‘교우’를 선택했고, ‘신도’와 ‘신자’가 각각 9.1%와 12.7%를 차지했다.
■ 결론
전체적으로 볼 때, ‘평신도’라는 용어에 대한 문제의식은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교회 용어에 대해 확정적으로 개정으로까지 이어질 정도로 절대적인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물론 3분의 2에 가까운 조사 대상자들이 평신도라는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응답을 함으로써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특히 교회의 여론 주도층에서는 그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도 용어의 개정까지 촉발할 만큼 문제 제기가 되는데에는 어려움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적지 않은 응답자들이 문제의 핵심은 용어에만 있지 않으며, 오히려 현재 ‘평신도’라는 용어가 참으로 어떤 위상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응답자들은 또 용어만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소명과 정체성에 대한 교육이 심화돼야 한다는 의견을 주기도 했다.
‘일반 신도’로 부를 때 교회 친교정신 드러내
■ 특별기고/‘평신도’ 명칭의 변경 필요성-심상태 몬시뇰
평소에 성직자가 아닌 교회 일반 구성원을 가급적 ‘평신도’ 아닌, ‘일반 신도’ 명칭으로 부르는 편이다. ‘평신도’ 명칭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정신과 가르침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평신도’는 어원적으로 물건처럼 취급되는 자격 없는 대중이자 낮은 ‘백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라오스’(laos)로부터 유래하는 라틴어 ‘라이쿠스’(laicus)의 우리말 명칭으로 통용되고 있다.
초기 교회 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로부터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으로 불림 받았다는 자의식을 지니며 로마 제국으로부터 가해지던 가혹한 박해를 견뎌내던 중 313년 홀연 교회가 종교 자유를 획득한데 이어서 로마제국 종교로 부상하면서 성직자들이 제국의 위계질서 안에서 상응하는 특권을 부여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민족이동의 와중에서 교회와 직무구조가 건재한 가운데 멸망한 로마 제국을 승계하게 되면서 성직자들이 사회 안에서 교육과 예술, 그리고 지식을 독점하는 특권적 지위에 오르게 되는데 반해, 일반 신자들은 공용어인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와 교회 안에서 비전문가, 무식자, 바보, 문외한, 속물 등을 가리키는 의미를 지니는 ‘라이쿠스’, 곧 ‘평신도’로 불리게 된 것이다.
고·중세의 군주제적 사회질서를 반영하는 교계제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은총을 ‘위로부터 아래로’ 베풀어주시면 상부에 있는 성직자가 이를 받아 관리하면서 하부의 일반 신도들에게 전달하게 되는 것으로 간주되면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가 상하의 신분관계로 고착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가 교회의 군주제적 질서를 삼위일체적 친교 질서로 대체하는 획기적 전환을 이룩하였으니, 곧 교회 구성원 모두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지칭하고 일반 신자들도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고 가르치기에 이른 것이다(‘교회 헌장’ 10항; ‘평신도 교령’ 2-3항 참조).
공의회는 신자 누구나 수행하는 사제직이 ‘일반사제직’으로서 본연의 실질적 사제직이며, 성직자들이 수행하는 사제직을 ‘직무사제직’으로서 지칭하면서 양자가 상호 대치되지 않고 상호 보완되는 개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공의회는 교회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반영하는 모상으로서 인류와 하느님, 그리고 인류 상호간의 일치를 이룩하는 도구이자 표징으로서 성사로 규정하였다(‘교회 헌장’, 1-4항 참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어느 위격도 다른 위격보다 더 높거나 낮지 않고, 앞서지도 뒤 따르지도 않은 가운데 상호간에 동등하고 동시적인 사랑의 친교 관계가 형성되듯이, 교회 안에서도 성직자와 일반 신도들이 ‘로마제국적 피라미드형 수직관계’를 더 이상 맺지 않고 ‘삼위일체적 상호삼투(渗透)형 친교관계’를 맺는다고 규정되어야 할 가르침이 발해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성직자가 아닌 교회 구성원들을, ‘병신도’로 자조적으로 불리기도 하는, 비하의 음조를 띠는 ‘평신도’ 보다는 ‘신도’ 내지 ‘일반 신도’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지난 공의회의 획기적 쇄신 정신에 상응하는 자세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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