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농민회 창립 40주년 기념대회
한국가톨릭농민회(회장 정재돈, 이하 가농)은 11월 8일 경기도 과천시 한국마사회 럭키빌 6층 컨벤션홀에서 ‘창립 40주년 기념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최덕기 주교(수원교구 교구장)를 비롯해 전·현직 가농 지도신부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 신부, 가농회원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원주 ‘매지농악’ 보존회의 풍악으로 시작돼 추수감사미사, 축하잔치, 대동놀이, 기념대회 순으로 진행됐다.
⊙…추수감사미사에서 최 주교는 “가농은 어둠속에서도 부활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라며 “한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겨자씨와 누룩 같은 역할을 맞아 100주년에는 한민족과 하느님께 보다 떳떳한 가농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미사에서는 또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전국 각 교구의 농민들이 생명농업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차례로 봉헌하기도 했다.
⊙…기념대회장 옆에서는 농민운동과 도농교류 사진전이 열려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40년 동안 농촌문제에 앞장서 온 가농의 활동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미사 후에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부산교구본부 연극패가 준비한 ‘우리농의 북소리’주제의 축하공연을 관람했다. 이어 도시민과 농민들은 마당놀이, 씨름대회, 차전 등 대동놀이에 함께 참여해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창립 40주년 기념대회에서는 최민석 전 가농 전국 지도신부(광주대교구)와 유영일 현 가농 전국 지도신부(부산교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역대 회장과 전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농회원들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이와 함께 도시민과 농민이 ‘한국가톨릭농민회 창립 40주년 선언문’을 낭독하고,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만세, 생명공동체운동 만세, 한국가톨릭농민회 만세’를 외치며 이날 행사를 마쳤다.
◎40년 한국가톨릭농민회가 걸어온 길
농업 주권지키기 ‘살신성인’…민주화에도 큰 족적
가톨릭농민회는 1964년 10월 가톨릭노동청년회(J.O.C)산하에 설치된 농촌청년(JAC)에서 태동했다. 당시 가톨릭노동청년회에서 활동하던 도시 노동자들은 대부분 농촌 출신으로, 어려운 농촌 살림을 견디지 못한 청년들이었다. 모든 면에서 J.O.C를 모델로 삼았던 농촌청년부는 J.O.C의 활동이 농촌본당으로 연장된 형태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66년 10월 왜관 감목대리구장 하스(O.Haas) 아빠스로부터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촌을 위해 경북 구미에서 활동해 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인 농촌청년회는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농촌청년회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됨에 따라 그해 8월 J.O.C로부터 분리, 10월 17월에는 경북 구미에서 전국 남녀 대표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가톨릭 농촌 청년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1972년 4월 제3차 전국 대의원 총회에서 청년회의 명칭을 ‘한국 가톨릭 농민회’로 개칭했다.
초기(1966~1972)의 주요활동은 교육과 협동사업이었다. ‘앞서가는 착한 농촌 크리스찬’과 ‘협동하는 천주교 농촌 청년’을 강조한 가농은 조직을 확대하고 농민 운동의 기반을 다졌다. 1974년에 실시한 임차관계 실태조사는 해방 이후 최초로 민간단체가 실시한 전국규모의 농지조사로, 그 결과는 사회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후 쌀 생산비 조사(1975년), 농협실태조사(1977년) 등을 실시해 문제점과 해결점을 제시했다. 이러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한 가운데 1976년 춘계 주교회의에서 공식단체로 인준 받았다. 가농의 다양한 긍정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의 저 농산물가격 구조와 유신정권의 활동 제약으로 인해 함평 고구마 사건(1978년), 안동 농민회 사건(1979년)을 겪어야 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농축산물 수입 개방 압력이 가중돼 농촌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와 함께 군부독재의 압력이 중첩돼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농촌 사회의 민주화와 공동체적 삶의 실현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사업이 펼쳐졌다.
가농의 민주화 투쟁과 수입 개방 반대 투쟁은 전국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1989년에는 전국농민운동연합이 결성되었고, 이듬해 전국 농민회 총연맹으로 발전했다. 가농은 많은 회원들이 총연맹에 참여하도록 촉진하고, 스스로 ‘작은 가톨릭 농민회’, ‘새로운 가톨릭 농민회’를 지향했다.
이것이 바로 생명공동체 운동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생명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립한 가농은 반생명적 질서와 공해 추방에 앞장서며 땅과 농민을 함께 살리는 ‘생명의 농업’에 주력했다.
가농의 생명운동은 다양성 존중과 관계성 강화, 순환성의 구조화, 영성의 드높임을 통해 우리 밀 살리기 운동과 도시교회와 농촌 생산자를 공동체적으로 연결하는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가농은 세계무역기구(WTO) 후속 협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추진문제 등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어느 때보다 위협받고 있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다방면에서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생명과 공동체운동을 강조하며 ‘우리농 전국 물류연합’을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가농은 또 지난 5월 국제가톨릭농민운동연맹 회장 국가가 될 만큼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으며, 앞으로 국제 연대의 구심점이 되어 새로운 농촌문명을 개척하는 선도자가 될 것을 꿈꾼다.
“오늘은 제2 창립일 100주년 향해 도약”
◎정재돈 농민회 회장
“가농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실천하고 계승했기에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농촌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농민들과 함께 아픔과 고통을 나눈 한국가톨릭농민회(이하 가농)의 창립 40주년.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가농에게 불혹의 세월은 의미가 크다. 정재돈(비오.51.인천 연수본당)가농 회장은 “이번 창립 기념대회는 단순히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다”며 “50주년, 100주년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제 2의 창립일이다”고 설명했다.
정회장은 지난 10월에 열린 ‘만민공동회’에서 가농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정회장은 이 자리에서 창립 40주년이 중요한 전환기임을 강조했다.
“가농은 국내외적으로 농촌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안으로는 도?농 공동체를 확대해 농촌과 도시에 희망의 거점을 만들어 나가고, 밖으로는 ‘식량주권과 농업 다양성에 관한 국제협약’을 추진할 것입니다.”
정회장은 5월 한국에서 열린 가톨릭농민회국제연맹 총회에서 한국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 정기환씨가 회장으로 선출된 것도 국제적 활동을 한국 가농이 주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이어 정회장은 “이 모든 일들을 하느님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가농 회원 모두가 대동단결해 전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설명
▶한국 가톨릭농민회 창립 40주년 기념대회가 11월 8월 한국마사회 럭키빌 6층 컨벤션홀에서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 주례로 거행됐다. 최덕기 주교와 사제단이 기념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1966년 가톨릭농촌청년회에서 출발, 40년을 이어온 가톨릭농민회는 1989년 전국농민운동연합 결성 이후 반생명적 질서와 공해추방 등 생명공동체운동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사진은 1966년 농촌청년회 창립 당시 회원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