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소통의 근원은 ‘마음’
그동안 만나 온 여러 사제에게 들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다른 교구의 시노드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교구에서 개최한 시노드에 대해서조차, 그리고 200주년기념 사목회의 의안에 대해서 역시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거의 없다고. 얼마 전에는 한 사제에게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들었다.
자신의 교구 시노드 문헌을 쓰레기통에서 주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일이 신학교 교육과 복음화 현장이 괴리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한 증거라면서 마음 아파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신학교들의 신학 교육이 단순히 현장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의 복음화 비전과 실천을 공유하고 소통시켜 갈 사명에서 떨어져 있는 정도를 말해 준다.
‘마음의 사목자’, 지학순 주교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제가 신학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였을까?
상당수의 사제가 공의회 문헌을, 부분적으로는 몰라도 교과목으로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단순히 이들이 선택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입학해서 부제반까지 공부하는 동안 학교에서 그런 과목을 개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이런 과목을 개설해 줄 것을 요청하기조차 했는데도, 가르칠 교수가 없다거나 교수 신부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이런 요청을 외면 하였다고 했다.
교수가 없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없는 것이다. 교수가 없으면 찾으면 되고, 시간이 없으면 내면 된다.
교수를 찾아낼 마음, 시간을 낼 마음이 학교 교과목 설정에 작용하게 할 만큼 사목회의와 여러 교구 시노드와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육화시킬 마음이 없고는 이런 사태는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신학의 소통 없이 복음화의 성숙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학순 주교는 이 소통을 가능하게 한 마음의 사목자였다. 그는 세계 가톨릭 신학의 현대적 집적으로서 바티칸 공의회의 비전을 자신의 민중, 민생, 민주, 그리고 민족을 위한 사목적 투신을 뒷받침할 신학과 영성의 뿌리로 소통시켜 갔다.
지주교는 공의회 문헌이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기 전에 일본에서 번역된 것을 구입하여 당시 교구 사목에 참여케 하였던 평신도 지도자 장일순 등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들과 토론 모임을 가지면서 세계 가톨릭 교회의 세계에 열린 복음화 비전을 직접 풀어 주는 가운데 이들의 안목을 열어 주었다.
이후 장일순은 바티칸 공의회 문헌과 역대 교황의 사회 회칙들을 김지하에게 건네주며 가톨릭으로 귀의할 것을 권하게 된다.
김지하는 공의회 문헌을 비롯하여, 당시 노동헌장과 40주년, 지상의 평화 등과 같은 교황 문헌들을 함께 공부하였다. 그리고 나서 1971년 3월에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이를테면, 김지하는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의 세계에 열린 가톨릭 사상을 직접 접하고 이것을 민족의 새생명을 위한 길로 수락하며 가톨릭 신자가 되었던 것이다.
세계 가톨릭 신학이 역동적으로 소통되는 경로는 신학교나 성당 담장에 갇히지 않는다. 하느님과 역사의 법정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군사 독재 정권이 양심의 소리들을 질식시키기 위하여 꾸몄던 불의한 법정이야말로, 이계창 신부 등이 증언하듯이, 70년대와 80년대에 가장 중요한 신학의 소통처 가운데 하나였다.
민족 생명의 질 고양에 밑거름
민중 고난의 자리, 하느님의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일반 민중 억압의 자리 바로 거기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관용과 일치와 사랑이, 그리고 생명이신 하느님과 민중의 벗 예수님 살림의 영성이 증거되고 선포되며 호소되었던 것이다.
당시 신학과는 거리가 먼 듯이 여겨졌던 이들을 신학과 소통하게 함으로써 민족 생명의 질을 고양하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역대 교황의 세계에 열린 사목 비전이 한 밑바탕으로 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로 신학을 소통시키는 것은 체제가 아니라 그 체제를 가동시키는 마음이고 영이다.
우리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민족이 함께, 민중과 민족을 섬길 마음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과 영성으로 기를 줄 알았던 저 사목자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저 돌보시는 영과 함께 영원히.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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