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행렬 이어져
⊙…11월 18일 오후 갑작스런 이동호 아빠스의 선종을 접한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과 신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큰 고통없이 하느님 품에 안겼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았다. 수도원 성당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전국의 조문객들로 줄을 이었다. 이아빠스의 영원한 안식을 간구하는 연도가 하루종일 끊이질 않았으며,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대주교, 주교회의 의장 장익 주교, 노무현 대통령 등은 조화를 보냈다. 또 20일 장례미사 때에는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기 위해 온 한국 주교단과 사제단, 수도자, 신자 등이 성당과 마당을 가득 메웠다.
성소가 풍성한 집안
⊙…이아빠스 유족들은 18일 선종소식을 접하고 빈소를 찾았다. 특히 고인의 집안은 성소자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이아빠스는 3형제중 막내로 고모가 이선숙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94)이고, 큰 형이 이동식 신부(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80)이다. 또한 이희정 신부(안동교구 영양본당 주임)가 이아빠스의 조카이고, 현재 조카중 수녀회 지.청원자도 있다.
아빠스의 둘째형 이동근(치릴로.76)씨는 “이아빠스는 형제들이나 조카들에게 축일이나 영명축일에 늘 축하카드를 보내는 등 다정하게 사랑을 베풀면서도 일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서 “이제 하느님의 품에 안겨 풍성한 은총을 받고 남아 있는 우리도 고인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봉사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추모사진전 열려
⊙…왜관수도원 앞마당에는 이동호 아빠스를 추모하는 사진전이 열려 눈길. 이아빠스의 어릴적 모습부터 최근의 활동모습까지 다양한 사진들을 전시해 조문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또한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간구하는 글들을 남길 수 있는 공간도 특별히 마련했다. 조문객들은 “아빠스님! 부족하지만 기도드리겠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도록…. 아울러 하느님의 영광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면전에서 영원 복락누리소서” 등 추모의 글을 남겼다.
평양에서 가져온 흙 하관식 때 뿌려
⊙…평소 북한선교에 열정을 바쳤던 고인을 위해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본부장 장긍선 신부가 북한 평양에서 가져온 흙을 특별히 하관식 때 뿌렸다. 장신부는 “이아빠스가 북한 동포들을 위해 헌신하셨던 업적을 기리며 지난번 평양에서 가져온 흙을 함께 뿌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동호 아빠스가 걸어온 길
북한선교.성소자 양성 헌신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 14)
북녘동포들에게 희망과 빛을 전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전임 함흥교구장 및 덕원자치수도원구장 서리 이동호 아빠스가 사제수품 당시 선택한 성구다.
이아빠스는 그의 모토처럼 44년간 사목자 생활동안 특히 북한 동포들을 위한 물적 지원과 선교에 모든 것을 바쳤다.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계기로 통일과 북한선교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조성됐다. 이에 따라 1985년 북한선교부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로 출범하면서 당시 함흥교구장 서리였던 이동호 아빠스가 담당 주교로 임명됐다.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냉전 이데올로기 사고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 사회에 ‘침묵의 교회’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이아빠스는 1981년 5월 함흥교구장 및 덕원자치수도원구장 서리로 임명된 이후 2005년 11월 사임하기까지 24년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토대 구축에 앞장서왔다.
그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제정 등을 통해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도 계몽운동을 추진하며 활발한 대북 선교활동을 펼쳐왔다.
이아빠스는 북한 동포들을 위한 겨울옷 보내기 운동을 비롯해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을 국제법상의 난민으로 인정해 줄 것을 유엔(UN)에 요청하는 전 교회 차원의 서명운동 등도 전개했다.
1971년 제2대 아빠스로 선출되며 베네딕도회 첫 한국인 아빠스로 기록된 이동호 아빠스. 하느님께 모든 것을 오롯이 봉헌하고 수도회 발전과 북녘동포 돕기에 일생을 바친 그는 성소자 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북한 복음화의 초석을 다지는데 모든 열정을 쏟은 아빠스는 12명의 신학생을 양성해 함흥교구 소속 사제로 만들며 북한선교의 터전을 마련했다.
함흥교구 소속 사제인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 김석중 신부는 “이아빠스께서는 우리가 신학교 시절 모든 애정과 관심으로 신학생들을 물심양면 지원해주었다”면서 “늘 신학생들에게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존경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약력
1935. 12. 4. 만주 간도성 연길현 팔도구 출생
1957. 4. 1. 왜관수도원 입회
1958. 4. 7. 첫 서원
1961. 8. 28. 종신서원
1962. 1. 6. 사제수품
1971. 4. 16. 2대 아빠스 축복
1981. 5. 22. 함흥교구장 및 덕원자치수도원구장 서리로 임명
2005. 11. 21. 함흥교구장 및 덕원자치수도원구장 서리 사임
2006. 11. 18. 선종
사진말-이동호 아빠스 선종 다음날인 11월 19일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당에 안치된 유해 앞에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간구하며 연도를 바치고 있다.
사진말-11월 20일 고별식 후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공동체 가족들이 이아빠스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사진말-11월 19일 이동호 아빠스의 선종 소식을 듣고 달려온 조문객들이 왜관수도원 앞마당에 마련된 추모 사진전을 관람하며 고인의 발자취를 회고하고 있다
사진말-20일 장례미사 후 이아빠스의 큰 형인 이동식 신부(맨 왼쪽)가 오열하자 조문객들이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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