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참 열심히 삽니다. 잠시도 쉴 수 없습니다. 삶과의 싸움에서 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참 열심히, 그리고 하느님 뜻에 따라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봉사활동을 하거나 거액의 기부를 해서가 아닙니다. 대림시기를 맞아 평범한 서민으로서 신앙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웃들이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추운 휴일 밤, 맥주 사러 나왔는데 과일가게 할머니께선 늦게까지 조용한 거리를 지키신다. 참 열심히 사신다. 출근시간 전철 안, 난 음악 들으며 가는데 옆 자리 아저씨는 중국어 회화를 듣는다. 참 열심히 사신다. 퇴근길 전철 안, 졸다가 눈을 떠 보니 나보다 어린 아가씨가 씩씩한 목소리로 장갑을 판다. 참 열심히 산다. 집에서 뉴스 보며 쉬고 있는데 택배 아저씨가 왔다. 저녁에만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저녁에 배달 오신단다. 참 열심히 사신다. 잠 자려고 누워 오늘 열심히 살았는가 하고 나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멀리서 찹쌀 떡 메밀 묵~~ 소리가 들려온다.’(김상민의 ‘만화 블로그’ 중)
양재호(요셉, 43)씨는 언제나 ‘스마일’이다. 주위에서는 그런 그를 깨끗한 사람, 산소같은 남자, 맑은 사람, 순박한 남자,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서울대교구 주수욱 신부도 “양재호씨 만큼 마음 맑고 깨끗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깨끗한 이미지는 우선 직업 탓(?)이 크다. 제빵사. 현재 경기도 용인에 있는 유기농 제품 관련 업체에서 근무하는 양씨는 우리 밀로 빵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벌써 13년째 이 ‘바른 먹거리’ 만드는 일을 해오고 있다. 제빵 자격증 따기 전에는 무공해 비누를 만들고, 무공해 빨래비누를 가루로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했다. 평생 ‘무공해’와 관련된 일을 해온 셈이다.
그런데 양씨가 살아온 지난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스마일’속에 담겨진 아픔을 읽을 수 있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저런 밝은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다. 가난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체험했다. 초등학교 학력의 그를 받아주는 직장은 거의 없었다. 돈이 없어서 결혼도 미루다 혼기를 놓쳤다. 순박하고 남을 선뜻 믿는 성격 탓에 여러번 사기도 당했다.
“가난이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그 가난 안에서 참으로 소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마저 가난해서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마음만은 늘 부자입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 때문일까. 양씨는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보면 늘 앞서서 돕는다. 늘 양보하는 성격이지만 ‘함께하는 것’에 대한 원칙에는 물러서지 않는다.
“함께하면서 나는 내세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려운 이웃이 스스로 일어 설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양씨는 빠듯한 시간을 쪼개 수도원을 다니며 수사와 수녀들에게 풍물을 지도한다. 어려운 이웃을 만나면 손수 빵을 만들어 준다. 회사 동료와 함께 복지시설을 방문하기도 한다. 빵 기술을 전수하는데도 열심이다. 가진 것은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양씨는 요즘 또 주경야독(晝耕夜讀)에 푹 빠져 있다.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까지 갈 계획이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술이요? 많이 먹지 않아요.” 퇴근 길. 양씨가 한기를 이기기 위해 점퍼의 깃을 세웠다. 그렇게 한참을 가던 양씨가 뒤돌아 보더니 손 한번 크게 흔들었다.
비슷한 시각. 영등포구 신실 4동의 한 사무실. 편안한 웃음을 지닌 허덕범(마태오, 44)씨는 서울건설산업노동조합에서 산재와 체불임금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을 상담하고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 경기가 어렵다 보니,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열악한 조건과 형편없는 수준의 임금에도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합니다. 더 큰 문제는 하청의 하청을 받은 사업장에서 일하다 보면 제대로 돈을 못 받고 떼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도 못받는 이들이 최근 부쩍 늘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든 도와야 합니다.”
정작 본인의 생계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돈이 없다는 것이 어느 정도 불편하기도 하지만 아껴 쓰고 검소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재주꾼 노동자다. 페인트, 용접, 다이아몬드 가공 등 하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다. 그랬던 그를 지금으로 모습으로 바꾼 것은 ‘큰 고통’이 발단이 됐다.
청소년 시기에 보일러를 만지다 오른손 손가락 두 개를 잃고, 왼손 손가락도 크게 다쳤다. 세상은 손가락 장애를 가진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 많은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지만 그 때 마다 손을 보여 주어야 했고, 대부분 회사들은 장애인인 그를 채용하지 않았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좌절의 시기였습니다. 정말 많이 방황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방황만 할 수 없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들어갔다. 신앙을 ‘제대로’ 접한 것도 그때 였다. 허씨는 또 그곳에서 가톨릭 노동 청년회를 알게 됐고 1984년부터 2000년까지 15년 넘게 활동했다. 1999년에는 가톨릭노동청년회 남부 연합회 회장 직을 맡기도 했다. 노동 청년회에서 활동하다가 프라도회를 알게돼 잠시 ‘봉헌된 평신도’로 살기도 했다.
“손가락이 절단되어서 살레시오회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가톨릭 노동청년회를 알았고, 또 노동 청년회에서 프라도회를 알게 됐습니다. 살레시오회와 가톨릭노동청년회, 프라도회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저도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아야지요.”
가톨릭 노동 청년회를 통해 ‘드러나지 않는 활동’을 배웠다는 허씨에게 앞으로의 인생계획을 물었다.
“과거 가톨릭 노동자로서 열정을 갖고 활동했던 그 당시가 그립습니다.
제가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진정한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살아가겠습니다.” 허씨는 지난 11월 4일 결혼한 늦깍이 새신랑이다. 상담을 마친 허씨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술이요? 어제 마신 술이 7개월 만에 처음 마신 술입니다.” 허씨가 “허허허” 크게 한번 웃었다. 그리고 “어이 춥다” 한번 하고는 몸 움츠리고 집으로 향했다. 허씨도 양씨처럼 그렇게 평범한 서민의 한 모습으로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가난이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난 안에서 참으로 소중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마저 가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 마음만은 늘 부자입니다.”(양재호씨)
“손가락이 절단되어서 살레시오회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가톨릭 노동청년회를 알았고, 또 노동 청년회에서 프라도회를 알게 됐습니다. 살레시오회와 가톨릭노동청년회, 프라도회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저도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겠습니다.”(허덕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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