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계획에 따라 돌아가신 예수
모욕과 조롱 당하며 고독하게 숨져
7. 십자가에 못 박히심(15, 21~32)
이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처형 당하시기 위해 총독 관저에서 골고타 형장으로 끌려가신다. 그 낱낱의 과정들이 지극히 절제된 감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모아, 마치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수난 장면 하나하나에 머물러 보자.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심 (21절)
예수님께서 가혹한 채찍질로 이미 기진하신지라 지나가던 사람을 붙들어 강제로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한다. 키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을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초대교회에 잘 알려진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가 지고 간 십자가는 십자가의 수평대에 해당되는데, 십자가의 수직대는 처형 장소에 미리 박혀 있었다. 시몬은 자의는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짐으로써 세상의 불의와 거짓을 드러내는 예수 죽음의 증인이 되었으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제자직분을 실현하고 있다.
해골 터 골고타 (22절)
예수님께서 끌려가신 곳은 예루살렘 제2 북부 성벽 밖 서쪽에 위치한 골고타로 현재 성묘성당이 세워져 있다. 해골이라는 뜻의 골고타가 라틴어로는 갈바리아(Calvaria)이기에 처형 장소를 갈바리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몰약을 탄 포도주를 사양하심 (23절)
누군가가 예수님의 고통을 삭감시키기 위해 마취제 구실을 하는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건네는데 예수님께서 마시지 않으신다.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 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14, 25)던 서약의 말씀을 상기시킨다. 수난의 고통을 철저하게 감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십자가에 처형당하심 (24a절)
십자가 사건을 전하고자 달려왔던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24a절)라고 지극히 간결하게 서술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오히려 숨이 막힐 것 같은 극적 장면을 만나게 된다.
로마군 형리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짐 (24b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군 형리들이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주사위를 던져 결정하였다”(24b절)고 한다. 시편 22, 19를 인용한 이 표현에서 예수님의 운명을 고통 받는 의인의 죽음과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처형되신 시각 (25절)
마르코는 예수의 수난기를 세 시간 간격으로 나누어, 빌라도 법정에 서셨을 때가 오전 6시, 십자가 처형이 오전 9시, 그리고 정오에 이르러 어둠이 세상을 덮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다(33~34절)고 전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돌아가셨다는 마르코의 의도적인 서술이라고 할 수 있다.
죄명 패 “유다인들의 임금”(26절)
예수님의 죄명은 명실 공히 로마제국의 국가질서를 위협한 국사범이다. 예수님을 조롱하는 이 말은 극도의 아이러니 속에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님 좌우편에 못 박힌 강도들 (27절)
예수님은 강도 둘과 함께 처형되어 죄인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지는데, 이들은 단순한 강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독립운동에 가담하다가 붙잡힌 열혈당원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사범으로 처형된 예수님의 죄목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건만, 그들 또한 예수님을 모욕하고 조롱한다.(32b절)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함 (29~32절)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독한다. 시편 22, 8을 상기시키는 경멸하는 몸짓이다.
“저런!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더니.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29b~30절)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 심지어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님을 비아냥거리며 조롱한다. 마르코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만인에게 철저하게 버림받고 모욕당하시면서 고독하게 돌아가셨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최혜영 수녀(성심수녀회 가톨릭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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