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장애도 선교열정 막지 못했죠"
10년째 전주교구 쌍치공소서 활동
눈질환·간암도 소명·열정으로 극복
상담·교리·소공동체 모임 등 도맡아
“‘네’라고 대답만 하면 됐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하느님 사랑의 손길은 여전히 크시니까요.”
황명훈(요왕마타.46)씨는 평신도 선교사다. 다른 사람들은 ‘평신도 선교사’를 그의 직업으로 부른다. 국내에 수십명이 채 안되는 ‘평신도 선교사’를 여전히 특별한 눈길로 보기 때문인 듯 하다.
사제의 사목적 배려가 닿기 힘든 벽지 공소 등에서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특별한 월급이나 지위 보장도 없는 불안한 삶이지만 벌써 20여년째 매일같이 복음을 전하는 소명에 성실히 응답하고 있다.
현재 황씨는 전주교구 쌍치공소(전북 순창군 쌍계리) 선교사로 활동한다.
집도, 땅도, 돈도, 경당도, 신자들도 아무것도 없는 산골마을 쌍계리에 성경 한권 들고 발을 디딘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황씨는 스스로를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굳이 그의 삶에서 특별한 것을 찾아내자면 매순간 십자가에 매달려 사는 것 딱 한가지를 꼽는다.
그러나 황씨를 직접 만난 이들은 그의 성실한 삶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진 장애, 그리고 가난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꼬리표였지만, 그는 장애와 가난 따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황씨는 간암까지 선고받았다.
그러나 해맑은 미소까지 띄며 자신의 병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에 되레 기자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의 부인도 밝은 미소를 띠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하튼 남들이 하는건 골고루 다해본다니까요”라며 말을 보탠다.
황씨의 시력은 선천적으로 매우 나빴다. 백내장에 녹내장, 망막박리까지 각종 질환을 앓은 눈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학창시절에는 필기가 많은 수학과 영어과목 등은 별수없이 포기해야 했다. 본의아니게 절대 커닝(cunning)을 하지 않는 양심학생으로도 불렸다. 엔지니어가 되고 싶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 그래도 성실히 공부해 원예학을 전공하고 원예시험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가톨릭교리신학원 통해 새 삶
그런데 우연히 입학한 가톨릭교리신학원은 인생 진로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사실 그는 특별히 선교사로서 사명감에 불타 입학한 것도 아니었다. 졸업할 때도 자신이 선교사로서 투신할 줄은 몰랐다. 87년, 경기도 연천의 작은 공소를 시작으로 우연처럼 선교활동은 시작됐다.
“눈 때문에 사제성소의 길도 포기했었지요. 그런데 모든 부르심은 저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이 가슴 속에 들어오자 깨달음을 얻게 되고 이 기쁨을 나누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기도 연천에서 진도, 해남, 순창을 거쳐 쌍치공소에 자리를 잡았다. 길이 잘 닦인 지금도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굽이굽이 산기슭과 들녘을 1시간여 따라돌아야 도착하는 곳. 하도 골이 깊이 6.25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피신처로 유명했고, 전쟁이 끝나고도 2년 후에야 수복된 지역이다.
그러한 곳이다보니 초기교회 당시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앙선조의 후손들이 신자임을 자청하고는 있었지만 신앙생활 지원이 아무래도 어려웠다.
황씨는 산골 곳곳에 떨어져 사는 신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신앙생활을 도왔다. 몇 년전에 대부분 지붕개량을 끝냈지만, 황씨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마굿간과 부엌이 같이 있는 재래식 집들이 수두룩했다.
10년 전 35명이던 신자들이 지금은 60명이 넘는다. 마을을 떠나고 혹은 돌아가신 분들의 숫자를 포함하면 신자수가 꽤 늘어난 편이다.
신자들과 알음알음 힘을 모아 한옥형태의 매무새가 고운 경당도 한 채 올렸다. 지금 황씨는 성당 옆 18평짜리 조립식 주택에서 아내, 딸아이와 함께 산다.
“쌍계리에 처음 들어온 날은 3월이었는데도 눈이 펑펑 쏟아졌어요. 콘테이너 한 채를 몇 개의 방으로 나눈 건물 한켠에 세들어 몸을 누이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천국같은 공간이지요.”
자그마한 조립식 주택은 황씨 가족들의 집일 뿐 아니라 그야말로 마을의 열린 쉼터로 자리잡았다. 누구든 오가다 불쑥불쑥 들른다. 진료소도 되었다가, 상담실도 되었다가, 마을어르신들의 회의장도 된다.
이러한 결과를 얻기까지 황씨가 감내한 어려움은 헤아릴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온갖 일을 돕고 술도 마시고 같은 취미도 가졌다. 수십리 먼길을 매일같이 움직인 것은 물론이었다.
“처음엔 아무도 우리를 관심갖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 어떤 행동보다 ‘기본’을 지키는 진실된 태도만이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각장애인에다가 암까지 걸린 사람이 선교사를 한다니까 특별하게 보는 눈도 있지만 저는 그저 하느님 말씀에 자연스럽게 응답했을 뿐입니다.”
황씨는 매일 칠흑같이 어두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성당에 불을 켜고 온기를 채워넣는다. 그는 한가한 일상이라고 말하지만 많게는 시도때도 없이 방문객들을 맞고 전화대화를 하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 모른다. 그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상담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작은 위로와 구원에 대한 확신을 나눌 뿐이다.
“어떤 때는 하루 7~8차례 이상 방문객들이 드나들때도 있지요. 오늘 새벽에도 한 마을사람이 대뜸 전화를 걸어 부인이 도망갔다고, 어쩌면 좋냐고 넋두리를 늘어놓아 가슴이 아팠습니다.
주일미사와 공소예절, 소공동체 모임 진행도 그의 역할이다. 예비신자교리는 대부분 각 가정마다 직접 찾아가 맞춤식으로 진행한다.
손발이 되어주는 아내
“제 아내가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주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부인인 하계옥(모니카.46)씨는 남편이 그저 하느님과 함께하는 사람이라서 결혼을 승낙했다고 한다.
“저도 신자이긴 했지만 사실 공소라는 개념도 잘 모르고 선교사가 하는 역할도 다른 봉사활동과 같은 줄로만 알았어요. 쓰레기와 술병이 널부러진 냉골에 짐을 풀고 살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무식하니까 용감했지요.”
단 하루도 집을 가져본 적도 없고 넉넉한 살림을 꾸려본 적도 없었지만 부인도 이제 ‘프로’ 선교사가 다 되어 있었다.
장애와 병을 어떻게 극복했냐는 상투적인 질문에 황씨는 뜻밖의 대답을 던졌다.
“닥치면 누구나 다 합니다. 아주 평범한 삶이지요. 누구에게나 매일매일 극복해야할 삶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단지 앞으로 못보는 것이고 암덩어리일 뿐이지요. 동기와 종류가 다를 뿐입니다.”
오늘 아침에 문지방을 건너다 박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내놓은 황씨의 말이다.
눈이 안보여 좋은 때는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다. 항상 컴컴하기 때문에 어두움이 별 상관이 없단다. 얼마전부터는 운동을 겸해 새벽기도 때 절도 겸한다. 성인호칭기도를 바치며 드리는 103배다.
대림이나 사순절이면 그에게 특강을 부탁하는 본당도 늘어난다. 그는 근사한 강의록을 준비하지는 못한다. 자신이 일상 안에서 경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풀어놓을 뿐이다.
“어떤 강의를 해도 우리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와 그 사랑 외에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처음엔 눈이 보이지 않아 강의록을 만들 수 없었지만, 사랑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강의록을 쓰지 않아도 늘 새로운 말씀만이 넘쳐납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먹거리를 걱정하거나 배를 곯아본 적이 없다”는 황씨는 “하느님께서 늘 필요한 것 이상을 주셨다”고 강조한다.
늘 채워주시는 주님
실제 무엇이든 모자람이 없었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공소 건립비도 신자들과 힘을 보태니 어느 순간 다 채워졌고, 항암치료를 9번이나 받았지만 여전히 통장의 잔고는 지난해와 같다. 황씨는 이러한 삶을 “모든 가치를 하느님께 두기 때문에 생겨나는 행복”이라고 설명한다.
‘희망은 구원을 가져다줍니다(로마서 8, 24)’. 황씨에게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인식하게 한 성구다. 타인이 보기에 정말 치열하게 살아온 삶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평범함 안에서 하느님께 목숨을 건 삶일 뿐”이라고 말한다.
사진설명
▶황명훈씨가 한 공소 신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언제든 공소운영에 필요한 것은 늘 하느님께서 채워주셨다는 황씨는 모든 삶의 가치와 기준을 하느님께 두고 나니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부인 하계옥씨와 이야기꽃을 피우며 웃고 있는 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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