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천사들 있어 우리곁엔 벌써 천국이…
겨울 추위가 예전같지 않다지만, 지난 13일 ‘꽃동네학교’를 방문하던 그날도 그랬다. 중부고속도로 진천톨게이트를 빠져나와 21번 국도를 타고 맹동(꽃동네) 방면으로 가다 덕산면 소재지를 지나 신돈삼거리에서 우회전, 곧장 5km 정도를 가면 4층 붉은 벽돌집이 나온다. 중증 중복 장애아들을 위한 특수교육 시설인 ‘꽃동네학교’. 84명의 장애아들이 함께 배우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곳의 하루는 ‘한바탕 전쟁’으로 시작된다.
#장면 하나
“안녕~ 잘 잤어요?”
“아~악 수녀님! 짜~알 잤어요!”
아침 이른 시각인 6시 30분, 장애아 생활(기숙)시설인 ‘성모의 집’ 3층 햇님방. 벌써 깨어나 말똥 말똥 쳐다보는 아이들과 이모 삼촌들과의 한바탕 전쟁(?)이 시작된다. 이곳에선 봉사자와 생활지도사들을 이모 삼촌이라고 부른다.
“아이고 우리 미미는 똥도 이렇게 예쁘게 쌌네~” “우리 미란 공주도 쉬야를 이렇게 많이 했네~”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하는 목욕시간. 이모 삼촌의 손놀림은 더욱 바빠지고 이마엔 어느새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다. “하늘아~ 비눗물 먹으면 안되지~!” 거품마사지를 하던 이모의 목소리가 욕실에 가득 울린다. 햇님방은 정신지체와 지체장애 정도가 심한 여아들의 생활공간.
장애가 심한 남자아이들이 생활하는 별님방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햇님방 별님방 모두 아이들 혼자선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중증 중복 장애를 갖고 있다.
목욕이 끝나면 얼굴과 몸에 로션을 촉촉히 바르고 기저귀를 찬다. 봉사자 이모 삼촌들이 각자의 이름이 표시된 옷을 찾아 입힌다. 그런 다음 휠체어를 타고 보조신발을 신는다.
일찌감치 목욕을 끝내고 휠체어에 탄채 머리를 말리던 햇님방 보름이(9살)가 “아. 쩌. 씨~”하며 부른다. 그 옆 휠체어에서 맨 먼저 등교준비를 끝낸 두용이(10살)가 눈길을 마주친다. “예” “아니오”를 잘 한다는 이모의 귀뜸. 몇 번의 “아. 니. 오” 끝에 결국 두용이 나이를 맞추었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등교를 준비하는 아이들 얼굴엔 설레임이 가득하다.
“우리 아이들만큼 학교에 가는걸 좋아하는 아이들도 없을거에요.” 성모의 집에서 학교까지 3층 구내 복도로 연결된 등굣길은 불과 10여 미터. 그나마 거동이 나은 아이들이 휠체어를 밀고 서로 서로 손을 맞잡고 등교하는 행렬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아이들 모습에선 마치 개선 장군 같은 당당함(?)마저 엿보인다.
#장면 둘
오전 9시 반을 넘긴 시각, 유치부 새싹반.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종서, 뇌수종을 앓고 있는 인산이, 다운증후군 민규, 세명이 전부다. 시력을 거의 잃고 몸조차 가누기 힘든 인산이는 휠체어에 의지한채 소리로 사물과 상황을 인지하는 교육에 한창이다. 핸드벨 소리에 등굣길에 휠체어를 밀어준 종서와 민규가 오히려 더 신이 났다. 선생님이 경쾌한 리듬으로 노래를 불러주자 멀뚱하던 인산이 얼굴에도 웃음이 스친다.
초등부 2-2반 교실. 아홉 살인 보름이 운철이 민혁이와 스무살을 훌쩍 넘긴 정아와 미숙이가 한 반이다. 정아는 선생님이 스물세살이라고 말할 때 마다 소리를 지르며 몸을 돌린다. 아마 부끄럽기도 하고 싫기도 한 모양이다. 그러나 금새 환한 웃음으로 악수를 청한다. 스물두살 미숙이와 정아는 꽃동네 시설인 환희의 집에서 살며 이 곳에 다닌다.
한 학급뿐인 초등부 1학년 교실. 개구쟁이 수빈이(다운증후군)가 있다는 그 반이다. 퍼머머리에 유별나게 교실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이 한눈에 수빈이를 알아보게 한다. 이마에 난 선명한 흉터자국이 수빈이의 활동성(?)을 짐작케 한다.
이 반은 말그대로 통제 불능. 구석 구석에서 엎지르고 넘어지고... 수빈이는 어느 틈에 선생님 책상을 점령했다. 그것도 굵은 딱풀을 한입(?) 가득 문 채로. 바닥에 쏟아놓은 크레용을 주워담던 선생님이 “다치지 않고 사고만 안 나면 다행”이라며 오히려 위로한다.
큰 형님 누나뻘인 중학교 2학년 교실. 몸집부터 보기에도 의젓하다. 초등부 2-2반 정아와 스물세살 동갑내기인 상열이를 비롯해 소설가를 꿈꾸는 영은이, 신부님이 되겠다는 정식이, 컴퓨터 전문가 보영이, 황금미소 댄스왕 예성이, 가수가 꿈인 다영이, 현도복지대학 진학을 꿈꾸는 진우, 그리고 시어머니 지연이까지 모두 여덟명이 클래스메이트다(원래는 세명이 더 있지만 이날은 치료차 외출중이었다).
꽃동네학교의 해리포터로 통하는 정식이는 웃는 모습과 표정이 너무도 순박해 보여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렇게 착할 수가 없다”는 정식이는 지능은 정상아이들과 별 다를 바 없어 상급 학교 진학을 기대하지만 신체장애가 걱정이란다. 잠깐동안의 만남이지만 교실 문밖까지 나와 꾸벅 인사하는 정식이 웃는 얼굴이 가슴에 와 박힌다.
지난 1999년 천사의 집에서 재택 학급으로 출발한 ‘꽃동네학교’는 2000년 6월 지금의 자리에 있던 폐교를 구입, 리모델링을 거쳐 2001년 3월 축복식과 개교식을 가졌다. 5년이 지난 지금 유치부부터 중학교 2년까지 14개 학급에 90여명이 특수교육을 받고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모두 중증의 장애를 겹겹이 갖고 있다. 목에 가래가 차 죽조차 넘기기 힘들어 한시간 이상을 쉬엄 쉬엄 먹어야 한다. 그나마도 소화시키지 못해 힘들어한다. 자꾸만 굽어지는 몸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며 힘들어하기 일쑤다.
더욱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또 변할 것 같지 않은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는 것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러나 이곳의 중증 장애아들, 그리고 그들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교사, 지도사들에게 그런 투정은 사치에 불과하다.
순간의 삶이 곧 영원일 수 있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이 아이들에게선 매 순간 순간이 곧 영원으로 빛난다. 어느 교사의 말처럼 “더불어 한 길”을 가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 탄생의 의미는 그래서 더욱 강한 빛으로 다가온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아무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피해갈 수 있도록/이 몸 묶어주시고/외롭지 않도록 당신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들을 수 있고/생각할 수 있는/세 가지 남은 것은/천상을 위해서만/쓰여질 것입니다
그래도 소담스레/웃을 수 있는 여유는/그런 사랑에 쓰여진/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나는 행복합니다”
(꽃동네학교 축복 및 개교기념 비석에 새겨져 있는 시).
사진설명
▶오전 수업을 끝낸 초등학교 고학년생과 중등부 아이들이 생활시설 성모의 집 지하 성당(다목적실)에 모였다. 성탄예술제 공연을 준비하던 아이들이 제대 앞에서 하트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다.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정식이(오른쪽), 소설가가 꿈인 영은이. 15세 동갑내기 이들의 웃는 모습에선 그늘을 찾아보기 힘들다.
▶초등부 1학년 개구쟁이 수빈이(왼쪽)가 단짝 별이와 어깨동무를 하고 장난스럽게 웃고 있다.
▶초등부 2학년 반, 스무살을 훌쩍 넘긴 정아(뒷줄 오른쪽)와 미숙이가 보름이와 운철이랑 짝이 됐다.
▶유치부 새싹반 종서가 뇌수종을 앓고 있는 같은 반 친구 인산이의 휠체어를 밀며 등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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