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닮은 집’… 곳곳에 상처투성이
천정 내려앉고 누수로 썩은 내 진동
붕어빵 장사로 노모 정신장애 아들 수발
오늘도 찬바람 부는 길거리로 나선다. 붕어빵 장사에 나선지 10여 년째.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농사 일을 하던 남편은 마을에서도 소문날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은 13년 전 어느 날. 3일 동안 수소문 하다가 남편을 만난 것은 병원 영안실에서였다. 농사 일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것. 이후 지씨는 혼자 힘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들을 키워야 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0여 년전 자궁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럼증 때문에 갑자기 길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고된 삶의 후유증 때문일까. 얼마 전에는 장 협착증으로 대장 40cm를 잘라내는 수술도 받았다.
그런데도 지씨는 신기할 정도로 얼굴이 밝다. “모두가 신앙 덕분이지요.”
1995년 부터 오순절 평화의 마을 재속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어떤 구역장 보다 열심히 활동한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나눔의 묵상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김장 봉사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도 열심이다. 주위 신자들은 지씨를 두고 “어려운 형편에도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면 ‘퍼주기’에 바쁜 성격”이라고 말한다.
오늘 하루종일 추위에 떨며 붕어빵을 팔아 번 수입은 4만5000원. 지씨가 구깆구깆한 돈 하나하나를 소중히 펴서 곱게 지갑에 넣었다.
97세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다. 청력 시력이 젊은 사람 못지 않다. 끼니때 마다 밥 한 그릇에 김치를 푹푹 비며 뚝딱 해치운다.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는다. 매일 미사 한번 거르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지만, 최근에는 거동이 불편해 성당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며느리와 함께 50년 가까이 살았다. 이제는 늘 며느리를 볼 때마다 안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며느리 생각만 하면 내가 할 말이 없어. 내가 오래 살아서 미안할 뿐이야.”
정신지체 3급 장애인.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늘 환한 웃음, 화 한번 내지 않는 성격. 그래서 성당에서는 ‘천사’로 불린다. 여덟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뇌에 큰 상처를 입어 10번 넘게 수술을 받았다.
매일 미사를 거르지 않을 정도로 신앙에 열심이다. 어머니 지씨는 이런 아들을 볼 때 마다 가슴에 큰 대못이 박힌다. 구씨가 시계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그러다 휠체어에 올랐다. 미사 참례를 위해 성당에 간다고 했다.
집도 삼대의 아픈 세상살이를 닮았다. 풍파에 지붕이 낡아 비만 오면 늘 샌다. 특히 97세 시어머니가 잠자는 방은 누수로 인해 천정이 썩어 있었다.
지용분씨 집 고쳐주기 수리를 담당한 엠에이디 종합건설 이원준(마카엘.6) 공사 현장소장은 암담해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20여평 정도로 추정되는 공간. 세면장도 문제다. 천정이 3분의 1쯤 주저 앉았다. 빗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기 배선도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정리가 필요했다. 화재의 위험이 큰 상황이다. 마당에서 거실로 들어가는 출입문도 삐걱거려 잘 열리지 않았다.
나무 대문도 낡아 대문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건물 옆으로 뚫린 공간에서 불어오는 한기가 심했다.
집 마당도 엉망이었다. 사용한지 20년이 넘은 수도꼭지도 바꾸어야 했다.
낡은 장판과 벽지를 보면 어떻게 이런 집에서 살았나 싶었다.
사진설명
▶교황대사와 이한택 의정부교구장 주교가 ‘사랑의 집고쳐주기’ 두 번째 대상으로 선정된 지용분씨 가정을 방문, 부엌을 둘러보고 있다.
▶어디가 출입구이고, 어디가 대문인지 분간하기도 힘든 지씨의 집.
▶엠에이디 종합건설 관계자들이 지용분씨 집 지붕 교체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의 집 고쳐주기 두 번째 대상 지용분씨 가정. 왼쪽부터 정신지체장애 아들 구자만씨. 지용분씨, 97세 시어머니 김경술 할머니.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