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구세주의 오심을 고대하던 사람들에게 마침내 강보에 싸인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평화를 기다리는 온 세상 만백성의 축제가 된 크리스마스. 성탄을 맞는 세계의 표정은 나라와 인종, 지역에 따라 다양하기 그지없다. 풍습은 다르지만 평화와 구원을 열망하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성탄절 모습들을 담아본다.
경건한 의식과 성대한 만찬
유럽인들은 대륙의 정신적인 뿌리를 그리스도교에 두고 있으니만큼 성탄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며 경건한 종교 의식을 강조하고 이를 전후해 성대한 만찬을 즐긴다. 독일에서는 전야 미사 전 거위나 대구 요리, 영국에서는 고기 파이나 푸딩을 먹는다. 프랑스도 오후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만찬이 일반화돼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고국이기도 한 독일의 성탄절은 장난감으로 유명하다. 성탄 풍습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선물인데, 예수님이 오심을 기념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선사한다. 어머니는 12월에 들어서면서 혼자서 트리를 세우고, 전야에 온 가족을 초대해 성탄절 식탁으로 모이도록 한다.
캐럴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봉건시대부터 영주의 저택에서 화려한 성탄 행사가 벌어지곤 했다. 여왕의 성탄 메시지가 아침에 전역에 방송되며, 트라팔가 광장에는 거대한 트리가 세워진다. 전야에는 통나무를 통째로 들여다가 벽난로 옆에 두고 행운을 빌며 인사를 한다. 성탄절 아침에는 치즈를 발라 요리한 공작새 고기를 먹는다.
프랑스에서는 집에서 양초와 별들로 트리를 장식하고 부모님은 아이들이 잠든 뒤 작은 장난감과 사탕, 과일을 트리에 매달아둔다. 네덜란드에서는 산타가 흰 말을 타고 집집을 방문한다.
아일랜드인들은 성탄 전날 집 창문마다 촛불을 켜고 창을 조금씩 열어둔다. 이는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를 낳기 위해 마굿간을 찾아 헤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날이 밝으면 메리,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집마다 돌며 촛불을 끈다.
스페인에서 성탄절은 전국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기념하는 몇 안되는 큰 축제이다. 스페인에서 성탄절은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축제이다. 성탄 전날인 24일 오후에는 아이들이 성탄 인형, 즉 목동, 양, 동방박사 등의 인형들을 집이나 학교, 상가 등 곳곳에 설치한다. 저녁식사 후에는 캐럴을 노래하며 집시들은 마을 한 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축제를 벌이는데, 이 축제는 밤새 계속된다.
북미는 차분한 가족주의
축제 때마다 엄청난 정열을 발산하는 남미에서는 성탄도 마을 전체의 야단법석 축제가 된다.
남반구에 있어 연중 가장 더운 시기에 성탄을 맞는 아르헨티나에서는 크고 작은 파티들이 열리는데, 음악과 춤이 동반하는 흥겨운 축제가 된다. 이때 마시는 대표적인 음료가 ‘시드라’(Sidra)라고 불리는 사과술이다. 연희를 계속하다가 자정을 맞으면 한 자리에 모여 일제히 축포를 쏜다.
멕시코에는 ‘포사다’(Posadas)라고 불리는 축제가 있는데 12월 16일에 시작되는 순례자의 축제이다. 멕시코인들은 축제의 시작일에 성탄 장식을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포사다라는 말의 의미는 쉼, 휴식으로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숙소를 찾기 위해 고생했던 일을 기억하는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칠레에서는 동정녀를 기념하는 ‘안타콜로’의 축제와 말 경기가 성탄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콜로라는 작은 마을에는 성탄 때마다 많은 방문객들이 와서 이곳에 세워져 있는 3피트 높이의 동정녀상 앞에서 마리아를 경배한다.
한편 캐나다와 미국 등 북미에서는 성탄절을 차분하게 가족들과 함께 지낸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나라이니만큼 그 풍습도 전세계 모든 성탄 풍습의 요소들을 두루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성탄 축제는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인디언들은 성탄 전날 마을 앞 제단에 모여 북을 치며 축제를 시작하는데, 모든 인디언들이 사슴, 거북이, 독수리, 물소 등의 동물 모습으로 축제에 참가한다. 이들은 성탄의 기념과 함께 조상들을 위한 감사의 예식도 함께 지낸다.
한편 하와이에서는 야자수 나무를 가지고 트리를 꾸미고, 산타클로스는 썰매가 아니라 수상보트를 타고 선물을 나눠주러 온다.
캐나다의 성탄 풍습도 지역에 따라 다른데, 대개 캐나다의 어린이들은 성탄 전야에 벽난로 옆 탁자에 산타클로스를 위한 케이크와 우유 한 잔, 썰매를 끌고 오는 사슴들을 위한 홍당무를 놓아둔다.
젊은이들의 축제
그리스도교적 뿌리보다는 전통 종교와 동양 종교의 뿌리가 깊은 아시아에서 사람들은 성탄절을 종교적 의미보다는 상업성이 다소 깔린 세속적 분위기의 기념일로 지낸다.
개혁과 개방으로 젊은이들이 서구문화에 익숙해진 중국에서 성탄절은 공휴일이 아니지만 가볍게 즐기는 기념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많은 중국인들은 성탄절이 되면 가족, 친지나 연인들끼리 선물을 주고 받으며 외식을 하는 정도로 성탄을 보내는 일이 많다.
범신론이 지배하는 일본은 성탄절의 의미를 거의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성탄절을 화려하게 준비하고 즐긴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캐럴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젊은이들은 각종 파티로 흥을 즐긴다. 가족들은 외식을 하며 한 해를 정리하는 날로 지내기도 한다.
비교적 그리스도교인들이 많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세속적 분위기와 경건한 종교적 분위기가 혼재한다. 성실한 신앙인들은 흥청망청하는 세태를 탓하며 기도와 전례 참례로 종교적 의미를 살리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그저 흥겹게 보내는 기념일로 지낸다.
필리핀은 성탄절이 가장 큰 종교적 축제가 된 유일한 아시아 국가이다. 더운 지방이라 트리를 세우지는 않지만 종교극을 공연하고 전야가 되면 모든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 둔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성탄을 기념해 성당으로 가는 새 길을 만든다. 바나나 나무를 잘라 성당을 향하는 작은 도로를 만들고 그 위에 바나나 나무의 나뭇잎을 아치 모양으로 덮어 터널을 만든다. 다시 그 위에 대나무 줄기를 휘어 덮는데, 그 안에 기름을 넣어 성탄 미사가 시작되기 전 불을 붙이면 성당으로 가는 길이 환히 밝아지게 된다.
사진설명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크로아티아 : 크로아티아에서 성탄을 맞아 기념음악회를 열고 있다.
▶아르헨티나 : 더운 날씨에 성탄을 맞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한 동물원에서 흰곰이 트리 모양의 얼음 위에 놓인 과일을 먹고 있다.
▶베트남 : 베트남 여성들이 하노이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을 판매하고 있다.
▶나자렛 : 나자렛에서 한 아랍 사람이 성탄 장식을 파는 가게 옆을 지나고 있다.
▶베들레헴 : 베들레헴에서 한 남성이 성탄 트리와 구유를 만들고 있다.
▶중국 : 성탄 전야에 중국 북경의 한 성당에서 자정 미사를 위해 입당하고 있다.
▶미국 : 산타클로스가 한 어린아이로부터 소원을 듣고 있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