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짚과 대나무로 구유 만들죠”
방글라데시 “밤새워 춤추고 성가 불러요”
대전가톨릭대 내년에 입학
황석두 루가 선교회서 한국어 연수중
호치민국립대 졸업한 인재들
빈민가 봉사활동하다 사제의 길 선택
구세주가 오신 기쁜 날,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다.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제 서른이 다 돼 가는 그들은 오직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낯선 한국 땅을 밟았다. 주님을 따르는 참 목자(牧者)가 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의 첫 성탄절은 그래서 더욱 뜻 깊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프로베쉬 랑사(파스칼 27)와 바이오린 참부공(베르나르도 31), 베트남에서 온 웽 반 판(요셉 26)과 웽 씨 쿠안(안토니오 26). 발음하기 조차 어려운 이방인이지만 나누면 더 기쁜 성탄이고 연말이다. 성탄절 이야기로 말문을 텄다.
구유와 성탄트리도 만들고 거리에는 캐럴도 울려 퍼지는 한국의 모습을 보며 고향의 성탄이 생각날 법도 하다.
참부공이 먼저 입을 연다.
“우리 ‘가로족’은 성탄 때면 온 집안 식구들이 한 집에 모여 밤새도록 춤추고 성가를 불러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은 너무 기뻐서 술도 마시고 가끔은 취하기도 하죠.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한 전통술을 만들어 친척들에게 대접합니다.”
웽 반 판도 질세라 베트남 이야기를 꺼낸다.
“보통 2주일 전쯤부터 준비를 해요. 노래와 연극도 연습하고 성탄 전야 때는 온 동네 골목마다 붉은 등을 밝히죠. 대나무와 지푸라기를 엮어서 집집마다 구유를 만듭니다.”
고향에 있었다면 이 시간 반가운 이들과 함께 성탄절 밤을 지새웠을 네 사람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커녕 전화도 제대로 없는 고향에는 보름 넘게 걸려 도착하는 편지만이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프로베쉬 랑사는 방글라데시 원주민인 ‘가로족’이다. 가로족은 소수인데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여서 이슬람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는 차별을 받는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고향에는 칠순이 넘은 노모와 누나 셋, 동생 둘이 살고 있다. 장남이라 가족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다. 경찰이 됐으면 월급도 많이 받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다. 바이오린 참부공도 가로족이다. 항상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고 ‘나도 신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웽 반 판과 웽 씨 쿠안은 둘 다 호치민국립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다. 대학시절 빈민가 봉사활동을 했던 웽 반 판은 신부가 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힘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이 길을 택했다.
네 사람은 내년에 대전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신학교 3년 과정을 마치고 온 참부공과 랑사 신학생은 3학년 편입, 베트남에서 온 웽 반 판과 웽 씨 쿠안은 신입생으로 첫 걸음을 뗀다. 모두 대전가톨릭대의 배려와 황석두 루가 선교형제회의 도움으로 외국인 장학생 자격으로 유학 온 셈이다.
짧게는 4년, 길게는 7년 이상 한국생활을 해야 하는 그들은 한국어 연수중이다. 매주 한 번 외출을 빼면 꼬박 일주일을 충북 오창에 있는 황석두 루가 선교형제회 본원에서 한국말과 씨름하고 있다. 일 년이 채 안됐지만 이제는 복음 묵상을 한글로 쓸 정도로 한국말에 능숙하다.
대중 목욕탕에 못가
하지만 연중 무더운 나라에서 온 네 사람에게 추위는 아직 적응하기 힘들어 보인다. 방 안인데 두꺼운 외투도 모자라 목도리를 둘둘 말고 있다.
‘감기’ 이야기를 꺼내자 주사 이야기로 되받는다. 여자간호사가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에 주사 놓는 게 정말 충격이었다고 참부공은 말한다. 또 있다. 참부공과 랑사는 대중목욕탕에 가지 못한다. 함께 생활하는 공원표 신부(성 황석두 루가 선교 형제회)의 손에 이끌려 웽 반 판과 웽 씨 쿠안은 마지못해 목욕탕에 가고 말았지만 둘은 아직도 버티고 있다. ‘목욕탕 밖에서 구경만 하겠다’며 협상 아닌 협상중이다.
한바탕 웃으며 한국생활의 놀라운 점을 이야기했지만 올해 맞이하는 성탄은 그들에게 당연히 낯설고 어색하다. 고향생각이 간절한 연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공신부님과 우리 넷이 함께 성무일도를 바치고 묵주기도 하고 미사 드리는 것처럼 우리 교회도 하나잖아요. 그곳의 성탄도 한국처럼 똑같이 반갑고 기쁘고 즐거울 거예요. 하느님 뜻에 따라 이곳에 온 것만큼 기쁜 것도 없는 데 잠깐 떨어져 성탄절을 보내는 건 아무것도 아니죠.”
사실 네 사람이 한국에 오기로 결심한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고향에서 신학교를 다녔다면 보다 빠른 시간에 신부가 될 수도 있다. 어려운 한국말도 공부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네 사람은 보다 더 큰 꿈을 키우고 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해요. 제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다 신학교에 들어온 것도, 또 한국에 오게 된 것도 다 저를 쓰시기 위한 하느님의 생각이시죠. 저희는 그저 그분을 따를 뿐이에요.”
숙소 곳곳에 붙어 있는 ‘LET GOD(하느님께 맡기세요)’이라는 글귀대로 살아가겠다는 게 네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다.
한 시간 가까이 웃음만 짓던 공신부가 말문을 연다.
“이 사람들이랑 함께 살면서 우리가 같은 교회다, 하나의 교회다 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또 다들 선교사의 삶을 꿈꾸는 것 같아요. 캄보디아나 중국, 인도 같은 다른 아시아 나라 사람들을 돕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어요. 한국 신학교 생활이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이들의 꿈이 이뤄지길 바랄 뿐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네 사람은 일 년 간 갈고 닦은 한글 솜씨를 뽐냈다.
글씨는 삐뚤빼뚤하지만 정성껏 써 내려가는 모습이 진지하다. 참 사목자의 꿈을 키워 나갈 제2의 고향, 한국의 신자들에게 전하는 그들의 첫 인사다.
‘성탄을 축하합니다’
사진설명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에서 유학온 신학생들을 만났다. 한국에서의 첫 성탄을 맞는 이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네 명은 내년에 대전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프로베쉬 랑사(가운데)와 바이오린 참부공(왼쪽 첫번째)), 베트남에서 온 웽 반 판(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웽 씨 쿠안(왼쪽에서 두번째). 오른쪽 첫번째는 아시아 신학생들의 한국생활을 돕고 있는 공원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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