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간 사랑한 당신을 기억합니다”
4월 29일~5월 3일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대건화랑
“성당에 꽃을 꽂는 그 수수한 수녀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으나 그 작은 숨은 노력은 성당을 아름답게 해준다. 주께서 원하시면 그는 성당을 찾는 많은 구도자에게 보다 더없는 귀중한 존재가 된다. 이런 작은 상징이고 싶다. 청빈과 고독을 스스로 택하여 사는 것. 이것이 내 사제행의 동기고 도 그런 그리스도이고 싶다. 그리고 주께서 원하시면 조그만 향기를 풍길 수도 있는….”(76년 5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살고자 했던 한 젊은 부제가 남긴 메모다.
매일의 일상에서 끄적인 메모에는 사제성소에 대한 가식없는 태도, 진정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이고 싶었던 젊은 열정을 엿보게 하는 글귀가 가득하다. 그러나 메모의 주인공 김정훈(베드로) 부제는 사제서품식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유학 중이던 오스트리아 땅에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김부제의 지인들은 그가 어린시절부터 유달리 사물에 대해 깊은 직관을 가졌다고 회고한다. 반면 그는 풍부한 감성을 품었으며, 무엇보다 자연과 인간을 더없이 사랑한 사람이었다.
이 젊은 부제가 떠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삶과 영성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전시회가 성소주일을 맞아 마련돼 더욱 애틋하다.
생전에 김부제는 종종 동경하던 초생달과 나목들을 자주 스케치했다. 산과 시골풍경들은 파스텔로 아주 소박하게 그려냈다.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김부제는 성직자이면서도 예술가로서도 뛰어난 흔적을 남겼다.
그의 아버지는 1950~60년대 우리사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던 ‘사도법관’ 김홍섭(바오로) 판사다. 각박한 현실 안에서도 청렴한 법률가로서, 티없는 맑은 종교인으로서 산 김판사는 풍부하고 흔쾌한 예술가로서의 자질도 다분해 스케치북도 늘 가까이두고 살았다.
김부제와 나이를 초월해 친교를 나눴던 서양화가 나희균(크리스티나)씨는 “김부제는 미술을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좋아하던 자연의 정기는 뛰어나게 표현하곤 했다”며 “김부제가 그린 나뭇가지의 섬세함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예술적 역량이 성큼 느껴진다”고 전한다. 나화백은 “전문가가 아니기에 더욱 순수한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고 덧붙인다.
‘추모유작전’은 김부제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던 나희균(크리스티나) 화백의 제의로 동기사제들이 공동으로 추진했다.
30년이 지난 시간이지만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친구의 삶과 영성을 후배들과 나누고 싶은 동기들의 마음씀씀이로 꾸민 자리다. 미술학도가 아닌 신학도였지만 회화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탄한 한 젊은이의 붓터치가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성소를 깨워주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유학중인 김부제를 오스트리아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었던 김정수 신부(부산교구)는 “정훈이는 늘 삶의 깊은 부분을 고민했고, 예민하고 풍부한 감성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을 자주 드러냈었다”며 “전시회를 계기로 지금의 성소자들이 김부제의 이러한 삶과 영성을 조금이나마 알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추모유작전은 4월 29일~5월 3일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대건화랑에서에서 펼쳐진다.
전시회에서는 김부제가 남긴 파스텔 풍경화, 수채화 등 30점이 전시된다. 그의 메모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라는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18~28일 부산가톨릭센터
이어 5월 18~28일 부산가톨릭센터 내 대청갤러리와 6월 1~9일 서울 정동 갤러리품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전시회를 연다. 6월 1일 오후 5시30분에는 동료사제단이 공동집전으로 추모미사도 봉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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