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직장인 박민석(미카엘.41)씨는 하루에도 수차례 걸려오는 금융상품 판매 전화에 골치를 썩는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꼭 삭제해달라는 요청으로 전화를 끊으며, 사이버 금융거래에 대해 불안감을 토로한다.
이현주(레지나.28)씨는 신용카드 가입시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각종 인적사항 이용란에 동의를 표한 적이 없다. 그러나 최근 ‘이현주님만을 위한 특별한 기회, 20대 여성 직장인의…’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고 질겁했다. 누군가 내 인적사항을 모두 알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
현대사회에서 개인정보는 ‘제2의 인격’이라고 할 만큼 중요성을 갖는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개인정보가 새어나가는데 대해 한번씩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개인정보 유출의 폐해 등에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재 정기국회에는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법안의 뼈대는 범죄 수사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수사기관이 휴대전화까지도 감청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사적통신영역을 국가 감시체제 안으로 편입시킨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정부측 의지와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역설하는 시민사회단체간 공방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이 이러한 문제점과 그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9월 정기국회서 개정안 결정?
지난 6월 통비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고 결정은 9월 정기국회로 미뤄졌다.
이 법은 기존 통신사실확인자료에 ▲위치추적정보를 추가하는 안과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사실 통지절차의 변경안 ▲통신제한조치 집행의 협조에 필요한 전기통신사업자의 장비 등 구비의무 및 통신사실확인자료 보관의무 신설안 등을 덧붙이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모든 통신사업자는 감청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인터넷사업자도 이용자들의 IP주소와 로그기록 등을 최대 1년간 보관, 각 기관에서 필요할 때 제공하도록 정해졌다. 감청협조와 이용내역 열람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폭도 넓혔다.
테러 위험과 새로운 형태의 범죄수사, 수사효율성 등을 명분으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대한 ‘감시’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진보네트워크 등 각종 시민사회단체들은 통비법 개정안이 ‘정보화 시대, 국가보안법’이라고 반발하며, 각각 성명서 등을 통해 발빠르게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와 한국교회인권센터도 지난 6월말 성명서를 발표하고 “우리 국민 모두에게 생활화되어 있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소위 국가권력인 수사기관의 감시망 속에 들어가게 한다”며 문제점 개선을 촉구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에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활동이나 연대 등의 적극성을 찾아볼 수 없다.
개정안 반대론자들은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이 정보수집의 편의성을 위해 개정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한다. 미래의 수사를 위해 개인 기록을 보관하고, 실시간 정보를 개방하는 것도 구체적인 범죄혐의 없이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 매우 중대한 인권 침해라고 지적한다.
‘자유’와 ‘규제’의 이중성
그렇다면 개인의 정보는 어디까지 보호돼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헌법은 국민의 통신비밀은 침해받을 수없는 기본권(제18조),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수 없음(제17조)을 명시한다. 통비법 개정안은 우선 헌법과 현행 영장주의 등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그러나 이번 논란의 핵심은 국민을 보호한다는 측면(범죄예방 및 수사)과 국민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측면의 대립이다.
예를 들어 최근 사이버상에서는 ‘익명성’으로 인해 각종 개인정보 취득과 명예훼손, 사이버스토킹과 같은 범죄가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범죄 예방을 위해 익명성을 제거,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보안을 미끼로 개개인의 정보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쪽으로 변질돼선 안된다는 입장도 만만찮다.
가톨릭교회 역시 논란이 되는 ‘자유’와 ‘규제’의 이중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사회커뮤니케이션의 윤리적인 면을 다룬 회칙 ‘인터넷과 윤리’에서는 “정부는 사전 검열은 삼가야 한다 … 오히려 공공에 봉사하고 더 큰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기준에 따라 규제해야 할 것”(제16항)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특수한 인터넷 범죄를 다루려면 새로운 규제들이 필요”(제16항)하다고 말하며 교회 역시 매체 이용에 대한 자유와 규제의 이중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는 커뮤니케이션 근본 윤리 원칙을 “인간과 인간공동체는 사회 커뮤니케이션 매체 이용의 목적이며 척도”(회칙 ‘커뮤니케이션 윤리’ 제21항)라고 밝힌다. 인간의 존엄성이 집단의 이익에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사회정의 시민행동’ 상임대표 오경환 신부는 “각종 범죄와 산업적 피해를 막는 것은 중요하지만, 일부 편의를 위해 국민의 인권과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는 법안을 그냥 통과시킬 수는 없다”며 “개인정보를 이용하는데 있어 보다 엄격한 조건이 명시된 후 개정돼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오신부는 “통비법 개정안 등이 개인인권 등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사회정의 시민행동도 여타 관련 단체들과 연대해 올바른 법안 개정에 적극성을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몇몇 국회의원들은 통비법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적극 내세우고 있다. 위치정보 추가안을 삭제하는 등의 내용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어떠한 법안에서도 국민의 사생활 침해와 감청 오남용 등을 막을 세부사항과 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상당한 노력과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권 침해소지 있어”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
“유비쿼터스적인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시대에 돌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정보 인권’ 침해의 문제점 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의 폐해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며, 공동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입니다.”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이번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을 이용하는 이들의 자유와 정보인권 침해가 불가피하다”며 “인권이 소중하다는 것은 성경과 모든 교회문헌의 핵심사상이며, 개인의 정보비밀 보호는 곧 삶과 생명의 보호”라고 역설한다.
현대사회 안에서는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로 새로운 문제들이 야기된다. 특별히 ‘정보 윤리’와 관련한 문제는 소유권과 사생활 침해 등 기본적인 권리와 직접 연결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에 따라 김신부는 “개인의 정보는 ‘제2의 인격’으로 인식되는 시대인 만큼, 개인정보보호 개념은 남이 자신의 정보를 소유하는 것을 방지하는 소극적인 개념 뿐 아니라 자신에 관한 정보의 취득, 이용, 게시 등에 관한 제 조건을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자기정보통제권’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김신부는 무엇보다 “가톨릭교회도 이러한 법안 개정의 문제점을 올바로 알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정되도록 적극 참여하는 자세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헌법상의 권리이며 정보인권인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더불어 국가의 안전보장,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를 위한 범죄수사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밝힌 김신부는 “하지만 통비법 개정안의 긍정적인 면은 살리돼 전자감시 체제 아래 나타날 수 있는 인권 침해와 정보.수사기관에 의한 정보 남용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보완조치가 필수”라고 강조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이 오히려 ‘통신비밀침해법’이 될 수 있는 개정안을 두고 몇몇 시민.인권.종교단체만이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수정이 될 수 있도록 교회도 사회 단체와 적극 연대해 참여하는 적극성을 보여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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