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준비하며 삶을 되짚는다
웰빙에 이어 웰다잉 화두
하느님의 선물인 삶 감사
지난 6월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00세 이상 노인의 23.8%가 가장 큰 소망으로 “편안히 빨리 죽는 것”을 꼽았다.
세계적으로도 유래없이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소위 ‘실버사업’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노인을 대상으로 유언과 상속, 보험, 장례식 등을 컨설팅하는 사업이 활개를 띄고, 죽음 관련 모든 제반사항을 지원하는 데스코디네이터와 유언장 대행업 등 신종 직업도 등장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준비가 경제적이고 상업적인 면에서 주로 부각, 또다른 양극화를 양산함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의식 개선의 목소리가 높다. 또 자살이 급증하고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함에 따라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죽음의 순간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웰빙(Well-being)’에 이어 ‘웰다잉(Well-dying)’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다. 특히 교회 안팎에서는 웰다잉의 한 방법으로 ‘죽음교육’의 중요성이 적극 강조된다.
죽음에 무관심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 11월 위령성월이면 유독 자주 떠올리는 문구다.
누구든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연습할 수도 없고 되풀이할 수도 없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가’ 또한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죽음에 대해 올바른 의식을 갖추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우리사회 분위기도 죽음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어왔다.
‘죽음’은 지상순례의 마지막 즉 자연적이며 인간의 유한성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동시에 교회는 죽음은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은혜의 때라고 말한다. 죽음은 인간이 누구인가를 거짓없이 바라보게 하며 인간 실존의 깊이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삶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올바른 태도다.
최근 교회 안팎의 전문가들은 “우리시대 삶의 특징 중 하나가 죽음에 대한 망각”이라고 지적한다. 종교유무와 관계없이 죽음에 대한 반성없이 오직 현세적 삶을 추구하는 부작용을 지적한 표현이다.
웰다잉은 나의 죽음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지금 나의 삶은 어떠한가를 고민하고 되돌아보는 과정의 하나이다.
죽음교육=삶의 재평가
대략 20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살던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았다. 남은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체험하고, 그 시간을 계기로 죽음을 바라보고 대응하는 자세를 갖춰갔다.
그러나 현대사회 안에서 일반인들은 문병이나 장례식 등에 참례하는 때에나 삶과 죽음의 의미를 한번쯤 돌아보는 정도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등의 경우는 TV나 영화, 게임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죽음을 접하는 경우가 많아 죽음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이러한 죽음에 대한 무지와 사회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죽음 준비 교육을 비롯해 성숙한 죽음문화가 적극 요청된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단순히 노년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또 말기암환자 등을 위한 호스피스 등으로 국한되지도 않는다.
웰다잉, 즉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죽음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올바로 인식함으로써 삶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새로 발견하고 가치관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웰다잉은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생명중시 가치관을 평생교육 안에 심화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세계 각국에서는 죽음교육을 초중고 등 연령대별 기초 소양교육에서부터 노인교육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평생교육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죽음교육 현황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죽음교육’은 걸음마 수준이다. 특히 종교계 등이 주관하는 일부 프로그램 외에 공교육 울타리 안에서는 사실상 죽음교육이 전무한 형편이다.
외국의 경우 죽음교육은 인격 도야의 필수과정으로 추진돼왔다. 인생의 마지막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준비하는 한편 건강을 위한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최근 일반 중고등학교 종교교육 중 필수과정으로 죽음교육을 포함시켰으며, 각종 교재도 다양하게 제시한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일반 종합대학 정식과목으로 죽음학이 보편화됐다. 일반인의 경우 유치원 때부터 죽음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접한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지난 2002년, 죽음교육을 학교 공식 교육과정으로 채택했다. 이 과정 안에서는 임종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죽음에 대한 금기없애기, 사후세계에 대한 사고 확장, 죽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 자살 예방 등의 과정 등에 대해 살펴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죽음교육은 학생들이 평소 성찰하는 자세를 갖고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사회 각 기관단체별로 죽음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각계에서 전문교육과정과 함께 죽음인식태도검사와 법률문제 등을 포함하는 관련 강좌도 속속 개설된다. 또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죽음을 연구하는 학회 등도 창립됐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은 일부 관심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일시적으로 이뤄져, 보편적인 웰다잉을 위해 각 종교계 등의 관심과 지원이 적극 요청된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아직까지 연령대에 따른 체계적인 죽음교육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현재 교회 안팎에서는 대표적인 죽음교육 프로그램으로 잘 알려진 ‘임종체험 프로그램’ 등이 각 기관단체 주관으로 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 외에는 각종 피정 등에서 간접적으로 교육된다.
“생의 마지막 경험하며 지금, 나의 삶을 회개”
◎15년째 ‘죽음체험 피정’여는 김보록 신부
“죽음은 하느님 안에서 완벽한 진선미를, 행복을 누리는 시작점입니다.
죽음교육의 하나인 임종체험은 특히 생의 마지막을 경험해봄으로써 나태한 생활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삶을 굳건히 다져나가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김보록 신부(살레시오회·돈보스코 정보문화센터장)는 “위령성월은 돌아가신 분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칠 뿐 아니라 각자의 죽음을 적극 묵상하고 준비하는 시기”라며 “지금 현재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길로써, 지금 회개하고 거룩하게 살도록 다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개 사람들은 주변인들의 죽음을 접하고도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자신 또한 언제 죽을 지 모르기에, 죽음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준비’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두렵고 걱정스럽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신앙선조들이 희망에 차 기쁘게 죽음을 맞이한 모습을 떠올려본다면 각자의 죽음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김신부는 ‘웰다잉’을 위해 일반신자들의 경우 신학적 개념 등을 알기 위해 어려움을 겪기보다는 호스피스 등 죽음과 관련한 신자들의 체험담과 책자 등을 많이 접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또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묵상시간을 가질 것을 권고한다.
“하느님과 죽음 등에 대해 너무 개념적으로만 고민하지 말고 일상의 매 순간에서 그분이 가까이 계신다는 것과 그분의 사랑을 의식하도록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묵상 등에 도움을 주기 위해 김신부는 15년째 ‘죽음체험 피정’을 마련하고 있다.
김신부는 “평소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시다고 의식하는 것 자체가 기도의 시작”이라며 “보다 많은 사목자와 수도자들이 죽음교육에 동참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하루 일정으로 진행되는 ‘죽음체험 피정’은 각 참가자들이 실제 죽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당신을 위한 장례미사’ ‘당신을 위한 고별식’이라는 전제 아래 실제 관에 들어가는 체험과 자신의 묘비와 유언서 작성, 예수님과 성모님께 마지막으로 드리는 글, 십자가 친구 등의 과정도 포함된다. ‘죽음의 영성’을 주제로 한 이 피정은 11일 오전 9시30분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강당에서도 열린다.
※문의 02-848-9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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