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제작, 제게 맡겨진 십자가죠"
기도지향 새겨 제단·성전벽 장식
입소문 퍼지며 전국서 봉헌신자 나서
이동섭 신부는 수단보다 작업복으로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성당에서도 미사를 드릴 때나 공식 행사를 제외하곤 늘 작업복 차림이다. 편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맞추다 보니 어느 새 작업복에 익숙해져버렸다.
“그저 조그만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으면 해서 하는 일인데요.”
인터뷰 중에도 잠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오고 있는 십자가가 그것이다. 이신부의 십자가 만들기는 지난해 초부터 시작됐다. 지난 2004년 9월 첫 주임으로 발령받은 곳이 지금 몸담고 있는 의정부교구 창현본당. 주임으로 오자마자 이신부를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는 혼자서는 감당하기 벅찬 것이었다. 주일미사 참례자라고 해야 어린이와 청소년을 제외하곤 300명을 넘지 않는데다 그나마 대부분이 노인들이어서 당장 눈앞에 떨어진 성당 재건축이라는 과제는 기적이 아니고선 먼 미래의 일처럼 보였다.
본당 신자들의 힘을 모아 1년 내내 신립금을 모아봤자 5000만원이 채 안 되는데다 지역특산품도 없어 딱히 내다팔 것도 없는 상황이라 이신부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 14)는 사도 바오로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랜 기도와 묵상 끝, 이신부는 손수 십자가를 만들어보자는데 생각이 닿았다. 똑같은 십자가 2개를 만들어 하나는 봉헌자가 가지고 남은 십자가 뒷면에 봉헌자의 기도지향을 써 새로 세워질 성당의 제단과 성전벽을 꾸미기로 했다.
“하느님의 뜻이었을까요. 이후론 당신이 이끄시는 것 같았어요.”
딱히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도 기도지향이 새겨진 십자가가 봉헌돼 성전이 꾸며진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신부가 만드는 십자가를 찾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인근 본당 신자들은 물론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멀리 대구와 광주 등 지방에서도 새 성당에 십자가를 봉헌하겠다는 신자들이 적잖게 나타났다. 급기야 개신교와 불교 신자들 가운데서도 직접 성당을 찾아와 보고는 십자가를 봉헌하고 가는 이들이 생겨났다.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몇 달 새에 애초 봉헌받고자 목표로 했던 6000개 가운데 반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이신부는 이런 인기의 비결을 “기도도 하고 어려운 형제들에게 도움도 주고 성당도 봉헌할 수 있다”는 데서 찾았다.
“아마 제가 십자가에 가장 많은 못을 박은 신부가 아닐까 싶어요.”
신자들의 기도가 가득 찬 성당을 봉헌하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는 이신부는 오늘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을지 모른다. ※문의 031-594-0340 의정부교구 창현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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