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 가톨릭 60년의 역사에서 자기의 미션을 어떻게 수행해 왔는지 “총체적으로”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번에는 몸의 증거 차원에서 우리 교회가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세계에 열린 복음화 정신에 따라서 민족의 얼과 생명력의 고양을 위하여 투신했던 단체들을 중심으로 밝은 면을 간략히 언급하였다.
밝은 면이 있으면, 그림자 영역이 있는 법이다. 이러한 현실은 현대사에서 우리 교회가 복음화를 수행한 방식과 직결되어 있다.
예컨대 지난번에 언급한 사제단이나 가농, 가노청, 평협과 정평위 운동 등에 성직계 지도층과 신앙 공동체가 보인 응답이 어느 면에서 복음적이었고 어느 면에서 옳지 않았는지 성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 옳은 것은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부족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오류로 고백하는 가운데 이를 극복할 비전과 실천 대안을 마련하는 축복의 장을 열어 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의 삶의 여정에서 발생시켜 온 그림자들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야훼가 야훼이신 방식이다.
야훼께서 모세를 당신 산으로 부르셨다. 모세가 부르신 곳으로 다가가자 그분이 말씀하셨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기 3장 5절)
그리고는 그를 부르신 분이 누구인가를 알려 주셨다. “나는 야훼다. 나는 있는 나다.”(3장 14절)
모세의 역사에서 이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나는 네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를 뜻한다.
나는 야훼의 이름을 계시한 이 사건을 모세의 신과 연결지어서 이렇게 풀이한다. “네 신을 벗어라. 이제 내가 네 신발이 되어 주리라. 네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너의 바닥이 되어 네가 굳건히 서게 하리라.”
이를테면, 야훼는 우리의 바닥이 되어서 우리와 함께 당신의 일을 하도록 동반하시는 ‘영원한 현존’이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교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돌아볼 기준이다. 교황은 자신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말한다. 모세를 부르신 장면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란 야훼를 닮아서 서로에게 신발이 될 존재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 비전에 따르면, 교황의 저 호칭은 하느님의 “신들의 신”이라는 말이다. 실로, 바닥에서 밟힐 줄 아는 존재만이 하느님의 공동체가 하느님의 질서 안에서 바로 서게 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교황이 아무리 “종들의 종”이라고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허사(虛辭)일 따름이다.
죽을지언정 주님과 함께 있겠다고 한 베드로였지만 닭이 울기 전에 아프게 아프게 예수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처럼, 자기가 진정으로 하느님의 종인지 아닌지 누구도 말로 증거할 길이란 없다.
교회 구성원 가운데 누가 이 진리에서 벗어날 수 있으랴. 종은 말로나 생각으로, 혹은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오직 온몸으로 실천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신발이 머리 위에서 군림하려고 할 때, 그 신이 교회 구성원 누구이든, 이들은 벗어야 할 신이고 떠나게 해야 할 신일 따름이다. 하느님이 벗으라는데 벗지 않는 성직자나 수도자가 있다면, 그런 평신도가 있다면, 그런 이들은 이미 하느님을 가로막아선 파라오와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이들은 야훼의 신이 아니라, 교구와 본당과 가정과 사회를 파라오의 억압과 죽음의 땅에 붙들어 맬 족쇄 내지 전족과도 같은 존재가 되기 쉬울 것이다.
이제 원주교구면 원주교구, 서울대교구면 서울대교구, 올해 50주년을 맞는 부산교구면 부산교구, 이땅의 모든 교구가 자기의 그림자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그림자들을 짙게, 어둡게 만들어 내는 영성이 고갈된 ‘신들’을, 그가 주교든 사제든 수도자든 평신도든 상관없이, 벗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다시 하느님의 영 안에서 새신으로, 하느님의 바닥으로 갱생해서, 다시 공동체를 바르게 섬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 나는, 우리는 어떤 신인가, 우리 교구에? 우리 본당과 소공동체가 현재 도달한 발 크기에 나는, 우리는 과연 맞는가?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야훼의 신으로 존재하는가, 우리 교회는?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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