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체감온도 올려주세요”
소액 다수 나눔문화 점차 사라져
이웃사랑 실천은 우리 모두 의무
[전문] 케이 스프링켈 그레이스는 ‘기부문화의 대변혁’이라는 책을 통해 자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Charity(박애정신)는 개척정신과 함께 미국 사회를 지탱해 온 대표적인 힘이었다.’
진정한 변혁적인 나눔이 사회를 유지하는 기틀이 된다는 말이다. 교회의 가르침 역시 이와 일맥상통 한다. 예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라고 말씀하시며 나눔의 의미를 강조했다.
■사회에서 펼쳐지는 기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2006년 12월 26일 현재 성금 모금액은 지난해보다 5억원 많은 850억원으로 집계됐다.
희망 2007 이웃사랑 캠페인의 ‘사랑의 체감 온도’가 52.7도로 올해 목표액(1614억원)의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구세군 자선냄비도 지난해 12월 24일 거리모금 운동을 한 결과 30억8000만원을 모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목표액보다 8000만원을 초과한 결과이다.
각각 목표액 이상의 성금을 모금했지만 모금 결과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걱정이 앞선다. 특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 실상이 눈에 띈다. 기업 중심의 모금을 하는 중앙회는 지난해 보다 57억원이 많은 737억원을 모금했다. 그러나 개인 모금을 주로 하는 16개 시.도 지회는 71억원 줄어든 110억원을 모았다.
소액 다수의 나눔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는 결과이다.
이와 함께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한국인의 기부지수’는 또 다른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나라 20세 이상의 성인 중 지난 한 해 동안 자원봉사를 한 경험이 있는 이는 32.6%로 2004년의 31.4%에 비해 다소 증가했으나 기부의 경우에는 20.4%로 2004년의 24.7%에 비해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즉 기부와 자원봉사가 함께 이뤄지지 않는, 이중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부 문화에 앞장서는 이들
최근 이러한 현실 가운데서도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활발한 나눔 문화를 진행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경우 송년회, 신년회를 취소하고 헌혈, 성금 기부, 현장 봉사활동 등을 통해 나눔 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인식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개인 차원의 나눔도 확산 되고 있다. 그 가운데는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어 나눔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기도 한다.
지난해 8월 6일 의정부교구 호원동본당 마당에는 옷이 가득 쌓였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80대 할머니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고급 의류 2000여벌을 기증한 것이다. 이 할머니는 8년째 매년 정기적으로 본당에 옷을 기증했다. 중견 의류상인 이 할머니는 “그동안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도 없이 혼자 생활하다 지난해 2월 14일 84세의 나이로 숨진 박순례(아녜스.광주대교구 함평본당) 할머니는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고 떠났다. 전남 함평군 대동면사무소에 따르면 박할머니가 2월초 면사무소를 찾아와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쌀을 사줘라”는 부탁과 함께 700여만 원이 입금된 통장과 목도장을 맡겼다는 것이다. 박할머니는 매월 정부에서 지원받는 생활비 26만9000원을 아끼고 평소 폐품 수집 등을 해서 이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눔에 대한 교회 가르침
나눔 열풍이 사회 현상으로 번진 가운데 교회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까.
통계청이 지난해 실시한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서는 10년간 가톨릭 신자 수가 7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03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대한민국 전체 종교계가 사회사업 및 복지 시설 등에 쓴 금액 총 590억 원 중 천주교가 47.3%인 279억을 사용해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교회의 양적 성장 수치에 비교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는 금액이다.
교회는 기부와 자선을 매우 중요한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다. 성경에서도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나눔을 단식, 기도와 더불어 신앙생활의 지주로 여긴 예수는 “너에게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루카 18, 22)라고 나눔에 대해 말씀하셨다.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시원스럽게 꾸어 주어라. 주면서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마라. 그리하여야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가 손을 대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신명 15, 10)라고 말씀하셨다.
예수의 이러한 말들은 신자라면 당연히 두말할 나위 없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부를 통한 이웃사랑의 실천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말이다.
서울대교구 김운회 보좌주교는 지난해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설립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인사말을 통해 기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웃사랑 실천은 우리 모두의 의무로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기부문화가 우리 안에 정착되어 이웃을 위한 나눔 실천이 생활의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나눔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비추어 소명이고 의무, 나아가 기쁨을 주는 숭고한 행위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
◎‘기부 생활화’ 실천하는 김금재 교수
“작은 나눔이 어려운 이들에겐 생명줄”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게 사랑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본인의 뜻과 달리 타인들에 눈에 자랑으로 비칠까봐 걱정부터 앞선다는 김금재(아나스타샤.60) 교수.
전북대 간호대학 명예교수로 몸담고 있는 김교수는 지난해 1월부터 지속적으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기부를 해오고 있다.
‘기부하는 게 뭐 별다른 게 있나’라고 생각하면 오산. 김교수는 거의 매일, 마치 밥 먹듯이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ARS(자동응답시스템)를 통해 3000원씩 기부해오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 취지에 맞게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어 나눔을 구체적인 삶의 형태로 드러내고 증거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직접 행동으로 나서지 못해 부끄럽다는 김교수. 그는 이러한 자신의 부족함을 제자들에게 쏟아냈다. 학생들을 잘 가르쳐 간호사로 만들어 현장에서 간호 업무를 충실히 하게끔 만드는데 정성을 다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두 가지 밖에 없더군요. 그저 가진 능력을 나누는 것뿐입니다.”
김교수가 나눔을 생활화하게 된 것은 말 그대로 ‘생활의 발견’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세탁기를 사용하던 중 세탁기 호스가 수도꼭지와 잘 맞지 않아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진 것을 본 것이다. 이내 그는 물방울 대야에 담아봤다. 1시간 남짓 흘렀을까. 대야에는 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작은 물 한 방울이 이내 대야를 가득 채우는 모습. 작은 것도 모이면 큰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죠.”
김교수는 하루 식사를 두 번 밖에 안한다고 했다. 성체로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시는 예수님처럼 자신도 자신의 것을 쪼개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콩한조각도 나눠먹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 말처럼 기부도 생활화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은 것을 나누는 것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생명줄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 강조하는 김교수. 핸드폰 끝번호가 1004인 것처럼 스스로 천사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말미에 마더 데레사 성인을 끌어냈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은 하느님의 몽당연필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그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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