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철학에 공통점 많아 놀랐어요”
같은 시대 살았던 동서양 최고 석학
다산에 대한 체계적 연구지원 절실
최고와 최고가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18, 19세기 서양 대표 지성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82)와 동아시아 대표 지성 다산 정약용(1762~1836)이 한자리에서 만난다. 다산이 괴테의 13살 아우. 괴테는 83세까지, 정약용은 75세까지 살았고, 괴테가 4년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법학자 서울대 최종고 교수에 의해 이뤄진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오는 3월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동시대 두 거장과 이야기하는 행복에 푹 빠진 최교수를 서울대 법학부 연구실에서 만났다.
왜 괴테와 다산인가
“유럽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에선 ‘괴테와 톨스토이’ ‘괴테와 타고르’ 등 괴테와 동시대 자국 사상을 비교 연구하는 풍토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이런 시도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최교수는 3월에 나올 자신의 저서 ‘괴테와 다산’을 영문으로 번역, “다산을 세계화하는 일에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다산을 괴테와 만나게 할 때, 세계가 다산의 숨겨진 지적 보화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어서, 시대적 동일선상에서 다루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니 의외로 사상 및 철학에 있어서 공통점이 많아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최교수에 의하면 괴테와 다산은 동시대를 살았던 동서양 최고의 석학이었다는 시기적 일치성 뿐 아니라 사상에 있어서도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최 교수는 그 일치성을 철학, 인생관, 학문관, 문학관, 미술관, 음악관, 국제관, 종교관 등으로 나눠 세밀히 분석하고 있다.
학문관의 경우 괴테는 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모든 지적 호기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괴테는 인문 자연 사회과학 등 모든 학문 모든 분야를 넘나들었으며, 심지어 광학과 색체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다산도 마찬가지. 논어, 맹자, 주역 등 당시 학문 뿐 아니라 음악 분야 등 다양한 실용학문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지적 성취감을 보이고 있다.
국제관도 두 사람이 비슷한 의견을 교환한다. 괴테는 독일인이 볼 때 가장 비독일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 괴테는 국적과 민족은 큰 의미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가 어느 수준으로 발달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산도 당시 중국사관에서 벗어나 서양 및 일본 서적까지 구입해 탐독할 정도로 세계적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을 배척하며 ‘국제법적 주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 풍토에서 다산은 “외국인 일수록 더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폭넓은 국제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 서적과 서양서적을 고루 섭렵하는 다산을 보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석학의 높은 경지가 느껴집니다.”
물론 두 사람이 다른 점도 있다. 괴테가 든든한 정치적 후원을 받으며 평생 동안 별다른 불편없이 하고 싶었던 일을 모두 하며 살았던 반면, 다산은 정조 사후 천주교 박해와 관련해 정치적 시련을 안고 살았다는 점이다. 이같은 서로 다른 환경이 괴테와 다산이 모두 학문적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는 점이 사뭇 역설적이다.
하지만 이번 만남이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최교수는 괴테 연구가 전 세계에서 엄청난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데 반해, 동일한 비중의 석학인 다산에 대한 연구가 미진한데 대해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괴테 관련 자료를 찾는 것은 비교적 쉬웠지만, 다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다산이 광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카메라를 제작까지 했다는 사실도 최근에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다산학 사전은 물론이고 다산의 수많은 저술에 대한 한글 번역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
“한국 사상사에서 큰 봉우리인 다산에 대한 연구가 이제 부터라도 활발히 이뤄져야 합니다. 괴테와 달리 다산은 떠오르는 이미지 조차 제대로 규정된 것이 없습니다. 남산과 당진, 마재에 있는 다산 동상이 모두 모습이 다릅니다. 다산이 천주교 신자였던 만큼 가톨릭 교회에서도 다산학 연구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최교수가 괴테와 다산의 만남을 마무리하며 내린 결론은 ‘큰 산’이다.
“‘경건한 자유 신앙가’ 두 사람의 만남에서 범접하지 못할 큰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최교수가 ‘괴테와 다산’의 대화 한 토막을 소개했다.
“다산이 먼저 괴테에게 물었다. ‘형님. 저는 평생동안 귀양살이 등을 하며 고달프게 지냈는데 형님은 정치적 지원을 받으며 편안하게 사셨습니다. 과연 형님은 행복한 삶을 사셨습니까’ 괴테가 말했다. ‘나도 내 인생 전체에 있어서 행복했던 순간은 4주가 채 안된다네. 나의 파우스트 정신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 바로 다산 자네라네’.”
◎최종고 교수는?
한·독 관계사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
‘한독교섭사’ ‘한강에서 라인강까지’ 등을 집필한 서울대 법대 최종고 교수는 한독관계사 분야 국내 최고 귄위자로 꼽힌다.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한 최 교수는 학창시절이던 1974년 교회사 연구소 제1회 강좌를 수강하며 최석우 몬시뇰, 조광 교수(고려대) 등을 만나 가톨릭과 인연을 맺었다.
최교수와 가톨릭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1975년 최교수가 첫 유학의 발을 디딘 곳이 독일 명문 가톨릭대인 프라이부르크대. 가톨릭 문화를 몸으로 체험한 최교수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가톨릭 인사들과 교류를 계속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발행한 가톨릭대사전의 법 관련 항목을 대부분 집필했으며, 현재도 각종 가톨릭 교회사 관련 세미나에 활발히 참여해 오고 있다. 현재 세계법철학학회 이사, 한국법사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