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웃음꽃 피게 하는 복덩이”
한국 말, 음식 공부에 가족들 배꼽빠져
대중목욕탕 처음 보고 “어머나 부끄러워…”
조상 공경, 어른 섬김 남달라 기특하고 대견스러워
전북 군산 지곡동에서 목욕탕을 운영하는 지창순(데레사 70)씨 가정. 요즘 베트남발(發) ‘행복 깨소금’ 볶는 고소한 냄새가 가득하다. 베트남에서 온 20살 며느리 ‘쯔엉 티 리엥’씨 때문이다.
한국에 온지 불과 2개월. 한국말을 아직 하지 못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추운 날씨와 낯선 환경. 20살 어린 나이로는 적응하기가 힘들 법도 한데, 도무지 그런 표정이 아니다. 얼굴에 늘 웃음이 가득하다.
애교도 만점.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 눈 동그랗게 뜨고 멀뚱히 쳐다보는 모습이 영락없는 귀염둥이 시골 소녀다.
“순박하고 밝은 모습에 첫눈에 반했습니다.” 남편 신병철(아우구스티노 43)씨가 베트남 한인 가톨릭 공동체 김인규(루카) 회장 주선으로 리엥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7월. 리엥씨의 붙임성 있고 밝은 모습에 반한 신씨는 “평생 하느님 안에서 행복한 성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약속했고, 리엥씨는 그 언약을 받아들였다.
리엥씨는 요즘 바쁘다.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강좌에 나가 하루 2시간씩 ‘가갸거겨~’ 한글을 배운다. 배우는 속도가 빠르다. 불과 2개월 만에 웬만한 한글 단어는 척척 읽어낸다. 배워야할 것은 또 한글 뿐만이 아니다.
한국 음식 조리법과 옷 입는 법 등 한국 문화에도 빨리 적응해야 한다. 병철씨네 가풍도 익혀야 한다. 전주교구 신원철 신부(필리핀 교포사목)가 병철씨의 동생. 구교우 집안인 탓에 친척 중에 수도자도 많다. 신앙 가정인 만큼 베트남 며느리도 신앙생활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최근 세례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 와 있는 베트남 사제에게 부탁해 베트남어 교리서를 구해 매일 공부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주일미사도 거르지 않는다. 남편이 레지오 마리애 회합과 본당 단체 모임에 나갈 때도 늘 함께 성당에 간다.
도무지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병철씨가 “한국에서는 베트남과 달리 어른이 있는 장소에서 나이 어린 부부가 너무 친근감을 표시하면 예의에 어긋난다”고 말해 주어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성당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워낙 남편 곁에 꼭 붙어 다니는 탓에 이제는 모르는 신자가 없어요.” 시어머니는 아들을 며느리에게 뺏긴 것 같다는 표정이다.
문화 차이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일어난다. 목욕탕집 며느리가 목욕탕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리엥씨는 아직도 목욕탕에 들어가지 않는다. 한국에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시어머니가 목욕하고 나오라며 등 떠밀어 넣은 여탕에서 비명을 지르고 다시 도망치듯 뛰쳐 나왔다. 여러 사람이 옷을 벗고 함께 목욕하는 것을 처음 봤다는 리엥씨. “부끄러워서 도저히 목욕탕 만큼은…” 이라며 고개를 흔든다.
해프닝 또 하나. 시어머니가 “여름만 있는 나라에서 한국에 와서 겨울을 맞으니 얼마나 추울까…”라며 양말과 내복을 주어도 그 때마다 번번이 벗어 던진다. 베트남에서 한 번도 양말을 신거나 내복을 입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추워서 벌벌 떨면서도 양말을 신지 않고, 내복도 입지 않으니…” 시어머니로선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런 시어머니의 마음을 알았을까. 리엥씨는 언제 부터인가 양말을 신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복은 노(NO)다.
리엥씨의 한국 배우기 열정은 대단하다. “이제 평생동안 한국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김치와 된장 앞에서 코를 막았지만 이제는 김치 조각을 척척 찢어 입에 넣을 정도로 한국 음식에 익숙해 졌다. 계란탕 끓이는 솜씨도 일품. 직접 베트남 음식 재료를 구해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요리를 대접하기도 한다.
효심도 지극하다. 병철씨에게 지난해 중순경 세상을 떠난 시아버지의 묘소에 가자고 자주 조른다. 베트남 부모로부터 조상을 공경하는 것이 후손된 도리라고 배웠다고 했다. 딸기 등 과일을 먹으라고 주면, 늘 시어머니 먼저, 시누이 먼저다. 내심 긴장 반, 기대 반으로 며느리를 맞았던 시어머니도 이젠 “나이도 어린 아이가 나눠 먹을 줄 안다”며 며느리 사랑이 대단하다. “어린 아기가 자라날 때 말을 하나 둘 배우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잖아요. 요즘 며느리가 말을 하나 둘 배울 때 마다 집에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는 한국말 못하는 베트남 며느리가 “집에 웃음 꽃 피게 해 준 복덩이”라고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며느리 자랑이 대단하다. 함께 레지오 활동을 하는 주위 신자들이 “이제 며느리 자랑 그만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요즘 목욕탕집에 경사가 겹쳤다. 임신 6주. 리엥씨 뱃속에는 생명이 자라고 있다. 한국생활이 행복하냐는 질문을 겨우 알아들은 리엥씨. 환하게 웃으며 “신랑이 참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 모습에 병철씨가 ‘허허’ 덩달아 함께 웃었다.
기사입력일 : 2007-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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