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이웃 돌보며 주님세상 실현
하루종일 청소·병수발 등에 헌신
“그리스도인은 주는 사람” 실천
[전문] 복자 데레사 수녀는 인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인이다.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보여준 데레사 수녀의 사랑과 헌신은 인도인들의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때문에 데레사 수녀가 활동했던 인도 북동부 도시 콜카타는 신자 비율이 채 1%도 되지 않지만 사회복지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다.
사랑의 선교회 ‘수련자’(Novice)들의 하루를 통해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교회의 모습을 엿본다.
“쾅쾅쾅”
새벽 3시. 천장에 매달려 노려보는 박쥐 덕분에 잠을 설치다 겨우 눈을 붙였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갓 돌이나 지났을 법한 아기를 안은 경찰이다. 길거리에서 우는 아기를 발견한 경찰은 무작정 사랑의 선교회를 찾아왔단다. 수련자가 전화를 걸어 영유아 보호소를 알려주고 나서야 상황은 끝났다.
흔히 있는 일이란다. 가난한 부모로부터 버림받거나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길거리 아무 곳에나 버려지고 있었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조차 모른다. 오늘 새벽 수련소에 온 아기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
길거리에서 태어나 길거리에서 자라고 길거리에서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벽 4시 40분 기상
새벽 4시 40분. 기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수련소에 울린다. 아침기도와 묵상, 미사를 마친 여덟 명의 수련자들은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1층 숙소(Ward)에는 환자와 노숙자들, 정신지체 어린이들이 살고 있다. 치료는 포기한 채 ‘죽음만 기다리는’ 환자가 15명, 거리를 떠돌던 노숙자가 35명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버려진 22명의 아이들도 이곳 가족이다.
수련자들이 청소를 시작한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환자를 안아 옆으로 눕히고 시트를 바꾼다. 한쪽에서는 세수를 시키고 이도 닦아준다. 제 힘으로 숟가락도 들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밥을 먹인다.
두 시간 동안 바삐 움직여 모든 사람들을 보살피고 나서야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전 8시.
버림받은 이들 위해 투신
수련자들은 대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다. 나름의 포부를 갖고 인생을 설계해 갈 나이지만 그들은 가난한 이들과의 삶을 택했다. 삶의 의지조차 없는,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이유는 뭘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곧 하느님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3년째 수련과정을 밟고 있는 프라풀(19)은 콜카타에서도 기차로 20시간을 가야 하는 시골에서 왔다. 가난해서 학교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장남인 그는 돈을 벌어야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이 길을 택했다. 하느님 세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음을 믿었고 그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식사를 마친 수련자들이 다시 1층으로 내려간다. 상처 입은 노숙자들을 치료하고 아이들을 산책시키기 위해서다. 엊그제 이곳에 온 한 노숙자는 엄지발가락을 잘랐다. 얼마나 오랫동안 씻지 못하고 살았는지 상처 속에서 수십 마리의 벌레가 나왔다. 조금만 늦었으면 발목을 잘라야 했다.
봉사자들도 힘을 보탰다. 이탈리아와 독일, 일본에서 온 봉사자 네 명의 도움은 일손이 부족한 수련자들에게는 큰 힘이다.
외국인 봉사자 넘쳐
인구가 많으면 자원봉사자도 많을 법 한데 봉사자는 열이면 열 모두 외국인들 모습만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사람은 많지만 가난한 사람도 그만큼 많다. 특히 노숙자나 부랑인, 장애인 등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부나 NGO의 지원은 없다. 인구조차 정확히 집계되지 않는 나라. 길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을 보살필 여력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존심을 지킨다며 세계 각국의 물적 도움은 거절한단다. 콜카타가 세계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찾아온 봉사자로 넘쳐나는 것은 아이러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수련자들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굴러갈까 싶은 생각이 드는 낡은 구급차에 몸을 싣고 역으로 향했다. 수십만의 인파가 드나드는 역 주변에는 온전한 사람들보다 노숙자가 더 많다. 너무 많아 어떤 사람에게 먼저 가야 할지 모를 정도다.
하지만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도움을 받는 것조차 거절했다. 지붕있는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자고 하는데도 한사코 거절한다. 그들에게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포기한 사람들. 세 시간을 꼬박 다녀봤지만 의식을 잃어가는 노인 한 사람만을 태웠다. 수련자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힌두교도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싫증내지 말고 주십시오. 그런데 남은 것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상처를 받을 때까지, 고통을 느낄 때까지 주십시오.”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묵상시간. 데레사 수녀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수련자들은 오늘 하루 동안 남은 것을 주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모두 내어놓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는지 되돌아본다.
서양에서 들어온 외국 종교를 믿는, 사회가 버린 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는 차별과 몰이해 속에서도 사랑의 선교회가 인도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데레사 수녀의 말처럼 ‘남기고 바라는데’ 만족하지 않고 ‘주는’데 인색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을 내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10억에 가까운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은 8명에 불과한 수련자들에게서 보듯 아직까지 보잘 것 없다. 그러나 하느님 세상을 만들어가려는 작은 노력들이 모이고 또 모일 때 교회는 진정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교회로 거듭날 것이다. 데레사 수녀가 가난한 노숙인의 손을 잡았던 그때처럼….
◎사랑의 선교 수사회 피터 물무 수사
“아시아 많은 젊은이들 가난한 교회 체험하길”
피터 물무 수사는 1977년 사랑의 선교 수사회가 한국에 파견한 첫 수도자다.
비록 4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전히 한국말은 능숙하다. 한국이 자신의 첫 파견지였고 그만큼 기억에 남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지게 지는 할아버지들이랑 막걸리 마시고, 단칸방에서 추위에 떨던 일이 생각납니다. 삼선교 셋방에 살 때 동네 아이들은 제게 ‘깜둥이 아저씨 나와라’하고 놀리곤 했었죠. 아직도 눈에 선해요.”
30년 전 서울은 지금의 콜카타와 비슷했다고 물무 수사는 말한다. 어디에 가도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2001년에 다시 갔는데 완전히 바뀌었더라구요. 깨끗하고 발전된 모습은 좋은 데 사람들이 어딘지 모르게 바쁘고 정이 없어진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물무 수사는 가진 건 없어도 정 하나로 서로 도우며 살았던 30년 전 한국의 모습이 더 좋았다고 말한다. 평생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인 듯 했다.
“교회가 사회와 함께 발전하고 있지만 낮은 곳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라고 되물으며 기도로 응답하고 있죠.”
물무 수사는 “그 응답은 콜카타에서 찾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보름, 길게는 1~2년씩 죽어가는 사람들 곁을 지키는 젊은 봉사자들의 모습이 곧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 그 자체라는 것.
“아시아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가난한 이들의 교회를 체험하고 나누었으면 해요. 그것이 곧 아시아교회가 손을 잡고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될 테니까요.”
물무 수사는 아시아의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수련자들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Come And See’(와서 보아라)
사진설명
▶사랑의 선교 수사회 수사와 밝게 웃는 한 어린이. 사랑의 선교 수사회는 가난한 노숙자와 환자뿐 아니라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도 보살피고 있다.
▶사랑의 선교 수사회 수사들이 한 노숙자의 상처를 소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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