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생각에 할머니 속은 숯덩이가 된다
화재로 집잃은 수인이네 임시 더부살이로 연명
무관심에 더 추운 이들 “올 겨울 어떻게 날지…”
우리의 이웃들이 겨울을 ‘버티고’ 있습니다. 우리가 따뜻한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몸과 마음의 추위와 싸우며 긴 겨울 밤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따뜻한 온기를 그리워하는, 추워하는 이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구유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게 오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들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 겨울 이야기 하나
“여기가 나와 할머니가 잠을 자던 방 이예요. 여기는 화장실이 있던 자리예요.”
7살 꼬마 수인이가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집을 설명한다. 하지만 정작 그 곳에는 집이 없다.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벽이 이곳이 과거에 집이었다는 사실을 말해 줄 뿐이었다.
그 잿더미 위에서 윤병수(가타리나.81.인천교구 대곶본당) 할머니가 말을 잃고 먼 들판만 바로보고 서 있다.
지난해 12월 14일 밤 9시. 바로 옆 양계장(경기도 김포시 약암2리 809)에서 난 불이 집으로 옮아 붙어 윤 할머니와 수인이는 살던 집을 잃었다. 물건 하나 건지지 못하고 몸만 빠져 나왔다.
“다른 것은 모두 잃어버려도 되는데….” 윤 할머니가 폐허가 된 집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아쉬워했다. 신구약 성경을 완필한 노트와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로부터 받은 성경 필사 축복장을 화재로 잃은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인이가 “예수님과 성모님도 모두 불에 타서 돌아가셨어”라며 할머니 옆구리를 푹 찌른다. “그래, 그래. 성모상과 예수님상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지….”
할머니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현재는 이웃 집에서 “당분간 머물며 대책을 생각해 보자”며 임시로 방 하나를 내줘 생활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더부살이를 할 수 없는 처지다. 임시로 생활하는 방도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매일 밤 추위에 떨어야 한다. “나야 웃옷을 두세개씩 껴 입고 생활하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고 해도 이 녀석 보기가 미안해서.” 할머니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증손녀를 볼 때 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할머니가 추위를 덜어주려는 듯, 수인이를 꼭 껴안았다. “할머니 나 공부할거야. 초등학교 가려면 공부해야 돼.” 수인이가 할머니 품을 벗어나더니 노트를 폈다. 공부방이 아니다. 수인이는 무너진 집 앞에서 ‘턱’ 자리잡고 앉더니 한참동안 ‘1, 2, 3, 4…’를 써 내려갔다. 찬 바람이 수인이 옆을 한바퀴 돌고 지나갔다.
# 겨울 이야기 둘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윤석영(바오로.73) 할아버지 집. 100년을 넘긴 삭을대로 삭은 집이다. 슬레이트 지붕은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비가 새고, 비바람에 떨어져 나간 추녀 밑은 각종 산새와 곤충의 피난처가 됐다. 허물어진 벽 사이로는 들쥐가 들락거리고, 아랫목에는 구더기가 기어 나오기도 한다.
당뇨를 앓고 있는 윤할아버지로선 집을 고치려 해도 여력이 없다. 67세 아내가 일용직 청소 등을 하며 돈을 벌고는 있지만, 당장 생활비도 빠듯한 실정이다. “할 수 없지요. 이대로 살다가 하느님이 부르시면 하늘나라로 가야지요.” 거동이 힘든 윤할아버지는 추위를 막기 위해 손 끝으로 이불을 끌어 목까지 당겼다.
춘천에도 ‘추워하는 이들’이 있다. 간호사 김연희(요안나)씨는 2002년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유방암. 세례받은 지 20일이 채 지나지 않아 받은 사형선고였다. 하지만 김씨는 간절히 기도했고, 그 기도는 하늘에 닿았다. 유방암이 치료된 것. 이후 김씨는 전 재산을 처분해 춘천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춘천시 후평1동에 정신장애인 복지시설 ‘평화의 집’을 열었다. 이후 정신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24평 평화의 건물이 문제다. 지어진지 30년이 지나 보수할 곳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겨울’.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겨울이 되면 찬 바람을 그대로 몸으로 버텨내야 한다. 집이 좁아 위생상태도 심각한 상황이다. 힘든 이 겨울에 힘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김씨 유방암이 4년 만에 재발한 것이다.
서울 성동구 송정동의 김용진(요셉.85) 할아버지 부부. 지붕이 비가 새고 벽이 허술해 늘 추위로 힘들어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8월 20일께 지붕을 수리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수술까지 했는데 현재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김할아버지는 “소년소녀가장, 홀몸 노인에 비하면 부부가 함께 사는 우리는 그나마 복이 있는 것”이라며 “보다 어려운 이들이 있으면 먼저 도와주시고, 맨 나중에 혹시라도 저희 부부가 기억나면 기억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 이야기 셋 - 교도소에서 온 편지
저는 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감중인 죄인입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저는 어릴 때는 어머님 따라 성당에도 나가고 착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춘기 때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다가 친구들과 어울려 나쁜 생활에 빠져들어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교도소 생활도 여러번 했습니다. 한때 성실히 살며 결혼도 하고 1남1녀의 자녀도 두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교도소에서 깊은 통회와 반성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략)
가장 걱정되는 일이 있습니다. 현재 딸과 80을 넘긴 노모께서 비만 오면 방바닥이 한강이 되어 버리는 그런 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 집은 집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겨울이 되면 바깥이나 다름없습니다. 손발이 시려와 방안에서는 잠시도 앉아 있기 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이 겨울, 집에서 어머니와 딸이 혼자 추운 방에서 생활하실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현재 저 자신의 지난 삶을 후회도 많이 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매일매일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에 “연로하신 노모께서 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으면”하는 마음을 담아 봅니다.
경북 포항시 흥해읍 흥해우체국(사)2호
이호영(가명)
⊙도움주실분
702-04-107118 우리은행,
703-01-360433 농협(예금주 가톨릭신문사)
사진설명
▶지난 12월 옆집 양계장 화재로 집을 잃은 수인이와 할머니가 폐허로 변한 집 터를 둘러보고 있다.
▶휑한 벌판 한가운데가 올해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수인이의 공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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