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 소박 미소…착한 사람들의 나라”
고도성장으로 거리는 활력 넘쳐
조상 잘모시고 ‘여신숭배’ 독특
아오자이(베트남 전통의상)와 오토바이의 나라 베트남.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 참전을 통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나라다. 변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약동하는 나라. 베트남의 사회와 종교, 베트남 교회의 모든 것을 5주에 걸쳐 연재한다.
아찔했다.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사이공 가톨릭 신학교 총장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지나가던 오토바이에 팔을 부딪쳐 넘어진 것. “길을 가득 메운 오토바이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베트남 한인 공동체 신자들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게다가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해 팔을 앞으로 안으면서 넘어진 탓에 팔꿈치에 큰 상처를 입었다. 살점이 패이고 피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모두들 이방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함께하는 모습이었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여성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오자이가 어울리는 20대 여성이었다. 여성은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더니 약국으로 향했다. 그리곤 소독약과 연고를 사더니 직접 팔꿈치와 무릎 등 상처 입은 곳에 발라주었다. 연락처를 주고 “상처가 심해지면 연락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물론 이 모든 대화에는 손짓 발짓이 크게 도움이 됐다). 여성은 다시 한번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친절했다. 마음이 밝아졌다. 팔꿈치 통증도 어느 정도 가셔지고 있었다. 거리의 한 벤치에 앉았다. 호치민시티(Ho Chi Minh City, 베트남 최대의 이 도시의 다른 이름은 사이공이다). 도로에는 오토바이의 물결로 가득했다. ‘착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생동하는 베트남 경제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우르릉’ 오토바이 소음 속에는 밝고 맑은 얼굴들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만난 한인 교포신자들은 한결같이 “과거에는 베트남 사람들의 얼굴이 그다지 밝지 않았는데 2000년 이후에는 몰라보게 밝아졌다”고 말했다. 김인규(루카.60) 한인 천주교 공동체 회장은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발전 가능성이 많은 나라”라며 “마치 60~8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변하고 있다. 베트남은 1986년 12월 개혁 개방 정책을 의미하는 ‘도이모이’가 도입된 이후 2002년 7.04%, 2003년 7.1%, 2004년 7.7%에 이어 지난해에는 8.4%라는 경이적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산업생산율도 2000년부터 15% 이상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며 2004년 15.6%에 이어 2005년 17.2%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마치 거대한 용이 승천을 앞두고 있는 형상이다. 특히 최근 이뤄진 세계무역기구(WTO) 150번째 회원국 가입은 승천을 앞둔 용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베트남 한인 천주교 공동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공장 노동자 최저 임금이 약 45달러(한화 약 4만원)에 불과하다. 최근 임금이 급등하는 추세를 보이곤 있지만 아직도 일반적으로 노동자 한 달 임금이 75~80달러에 불과하다. 대학 졸업자의 경우도 한달 임금이 150~180달러 수준이다. 이같은 저렴한 노동력과 낮은 물가라는 매력에 해외투자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활력 가득한 베트남의 거리. 그 거리에는 순진함과 소박함,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베트남의 편안함을 베트남 한인 교포사목 이창신 신부는 이렇게 옮겼다.
“호치민은 오토바이 천국입니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어디를 그렇게 달려가는지…. 이제는 그 시끄러운 소리도 소음이 아니라 매일 떠오르는 태양처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길에서 늘 만나는 오토바이 부대들 속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친구를 위해 오토바이를 탄 친구가 한발로 자전거를 밀어주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며 가는지…”
민속신앙과 여신숭배
베트남에서는 본질적으로 신과 인간 사이에 절대적 구별이 없다. ‘응옥 호앙 트응 테’ 또는 ‘옹쩌이’라고 불리는 지존무상의 최고신 이외의 다른 신은 인간이었다가 수행과 깨달음에 의해 해, 달 별, 바람을 다스리는 신이 됐다. 신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존재로 본 것이다.
또한 베트남 민간 신앙에는 조상 숭배적 요소가 강하다. 조상을 모시는 일이야 말로 베트남 인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명절 때 마다 가족들이 모여 음식을 함께 나누고 조상을 기억한다. 조상의 기일을 지키고 제사를 잘 드리면 복이 따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상숭배와 더불어 베트남인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보편적 신앙이 바로 ‘터매’(어머니 숭배 종교)다. 베트남에서는 특히 여신숭배 사상이 강하다. 그래서 어머니를 의미하는 ‘매’와 ‘머우’와 관련된 여신을 많이 섬긴다. 매미어(사탕수수의 어머니), 매루어(쌀의 어머니), 매르어(불의 신), 브응머우(왕모), 구억머우(국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매년 전국 유명 여신 사당에서는 터매, 즉 여신 숭배와 관련한 축제와 행사가 성대히 개최된다.
이 여신숭배 사상은 불교 천주교 등 타종교를 수용하는 과정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재 베트남의 많은 불교사원에는 불상과 함께 다양한 여신을 함께 모시고 있는데, 특히 관음보살은 여성과 어린이를 지키고 재난에서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섬겨지고 있다.
16세기 중엽 베트남에 전파된 천주교의 성모 마리아 공경이 베트남인들에게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수용된 것도 바로 이 여신 숭배 사상 때문이었다.
▨ 베트남
▲국명 :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수도 : 하노이(Hanoi)
▲인구 : 8000만명 ▲면적 : 33만991㎢(한반도의 약 1.5배)
▲시차 : 한국보다 2시간 늦음 ▲언어 : 베트남어(공용어)
▲민족 : 베트남인 88%, 중국계 3%, 기타 60여 소수민족
▲종교 : 불교 80%, 천주교 9%, 카오다이교, 호아하오교 등
종교자유 보장. 단 선교 자유 없음.
▲주요산업 : 쌀, 고무, 시멘트, 화학산업
▲행정 : 61개 도시 및 지역으로 구분 ▲사회 : 강한 남녀평등의식
▲통화 : 동(DONG), 1달러 당 약 1만5900동(2006년 말 현재)
▲기후 : 북부(하노이) 아열대성 기후, 최저 13.8℃~최고 35℃
남부(호치민) 열대몬순성기후, 최저 21℃~최고 36℃
▨ 한국 베트남 교역현황
한국 베트남 교역은 1992년 수교 이후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이제 베트남 측에서 볼 때 미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에 이은 5위 교역 상대국이 됐다. 한국의 대 베트남 수출은 2002년 20억 달러대로 진입했으며, 2004년에는 30억 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의 베트남 투자는 2005년 190건에 5억5000만 달러로, 1996년 이후 최대 투자액을 기록했다. 한국이 베트남 연간 해외투자 3위, 누계 기준 4위의 투자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인들이 많이 왕래하다 보니 천주교 한인 공동체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사진설명
▶마치 60~8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보는 듯하는 베트남은 오토바이 천국이다.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은 학생들. 전통이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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