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주님 봉헌축일’은 봉헌생활의 진정한 의미를 묵상하는 ‘봉헌생활의 날’이다. 도대체 봉헌생활이 무엇이기에 수많은 젊은 영혼을 매료시키고 끌어들일까. 봉헌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은 고요와 침묵, 활동 속에서 어떤 행복을 느끼고 살아갈까. 또 그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2월 2일 종신서원을 하고 본격적인 수도생활을 시작한 한 청년의 ‘구도(求道)의 길’을 통해, 봉헌생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묵상해 본다.
“하느님과 결혼…기대 반 걱정 반”
키가 장대처럼 크다. 얼짱에다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여자 서너명은 족히 가슴 설레게 했을 이 청년이 2월 2일 봉헌의 날에 종신서원을 했다. 세속적 의미의 결혼은 이제 물 건너 갔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청빈’ ‘정결’ ‘순명’ 3대 서원을 통해 주님만을 따르겠다는 그 하느님과의 결혼을 ‘겁없이’ 한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만 바라보는 삶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마당에는 겨울 찬공기가 소복이 쌓여 있었다. 조용했다. 손을 호호 불며 초인종을 눌렀다. 류희구(안셀모.38) 수사. 반갑게 손님을 반기는 환한 미소가 흰색 수도복과 어울려 보였다.
1999년 수도회에 입회해 서원기와 청원기, 수련기, 유기서원기를 거쳐 2월 2일 종신서원을 했다. “종신서원을 앞두고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지난 1월 20일까지 한 달간 피정을 했습니다. 갈등 좀 했죠.” 류 수사가 “허허” 웃었다. ‘나는 수도자’라는 겉치레 꾸밈이 보이지 않았다. 기자 앞에는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한 청년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는 결혼도 하지 못하는데…”라는 기자의 다소 무례한 질문에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갓 결혼한 신랑 신부도 이런 심정 아닐까요?”라며 능숙하게 넘긴다. “죽는 그 날까지 남자와 여자가 함께 결혼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쩌면 수도생활보다도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저희들은 그저 모든 것을 받아 주시는 하느님 한 분만 바라보며 살면 되니까요.”
수녀 누나의 죽음이 계기
대학을 나와 3년 6개월 동안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 생활을 하던 막내 누나가 33살의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통곡하며 들여다본 관 속의 누나는 천사였다. “누나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살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 누나의 모습에 제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역시 수도생활을 하던 큰 누나에게 “수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말했다. 누나 수녀는 여러 수도회를 추천해 주었고, 가장 먼저 인사차 찾은 오블라띠 선교수도회에 ‘확’반해 1999년 입회했다.
“과연 내가 평생 동안 봉헌하는 삶을 살 자격이 있는지 고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느님이 이끌어 주시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지요.”
류수사는 “도자기가 불에 단련된 후 세상에 유용하게 쓰이듯이, 나도 단련의 과정을 거쳐 세상에 도움이 되는 그런 수도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나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닌, 주위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주위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작은 도구가 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스도의 향기 품고 싶어
어려운 일은 없었을까. “왜 어려운 일이 없었겠습니까. 처음 한동안은 동료 수도자와의 견해차로 마음 고생도 했고, 낯선 생활 환경에서 오는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대부분 문제들을 극복했습니다.” 류수사는 종신서원을 통해 특히 느낀 것이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 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나는, 그 향기를 전파하는 수도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기도 시간이네요.” 류 수사가 성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성당 안에 향기가 가득했다.
청빈 정결 순명의 삶 서약
수도회마다 영성과 활동 달라
▨ 봉헌생활이란
봉헌생활이란 청빈 정결 순명이라는 복음적 권고를 서약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보여주는 삶을 사는 생활이다. 봉헌생활회는 일반적으로 수도회를 가리키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새 교회법전은 재속회, 동정녀회, 사도생활단을 모두 봉헌생활회에 포함시키고 있다.
재속회는 수도회와 달리 세속에 살면서 하느님 나라 건설과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는 삶을 말한다. 성모 카테키스타회, 그리스도 왕의 시녀회, 그리스도 왕직선교재속회 등이 대표적이다. 수도회와 재속회를 구별하는 큰 특징은 수도회는 회원들이 장상이 맡기는 소임을 행하지만 재속회는 회원 각자가 자기 고유한 직업 혹은 사도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회는 또 크게 관상수도회와 활동수도회로 나뉜다. 관상수도회란 세속에서 기도와 묵상, 노동에 전념하는 수도회를 뜻하고, 활동수도회는 본당, 선교, 교육, 복지,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는 수도회다. 때로는 관상과 활동이 혼합한, 기도와 묵상, 사도직 활동을 병행하는 수도회도 있다.
동정녀회도 봉헌생활회에 속하는데,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따르려는 거룩한 뜻을 세운 동정녀들이 교회에 헌신하는 모임을 말한다. 동정녀회는 전례예식에 따라 교구장의 축성을 받아야 한다. 사도생활단은 수도서원 없이 고유한 사도적 목적을 위해 공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정진하는 단체다. 단체에 따라 복음적 권고인 서원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한국외방선교회 등 각종 선교회가 사도생활단에 속한다.
▨ 수도자가 되려면
수도자는 단순히 되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부르심, 즉 성소(聖召) 식별 과정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하느님께 완전히 바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확인한 후 수도원 문을 두드려야 한다. 특히 수도회는 각기 다른 영성과 사도직 활동, 생활 형태를 갖고 있고, 최근에는 수도회 이외에도 선교회 등 다양한 봉헌생활회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봉헌생활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체로 수도회에서 요구하는 자격요건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미혼 남녀’이다. 수도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 세례받은지 3~5년 이상된 17~30세의 신자로서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추고 있으면 입회할 수 있다.
입회자는 일반적으로 지원기(6개월~1년), 청원기(1년), 수련기(1~2년), 유기서원기(5~6년)를 거쳐 종신서원을 하게 된다. 지원기에는 기본적 생활과 교리 등을 익히게 되며, 청원기에는 구체적인 수도생활을 익히고 수도회의 고유 영성을 배운다. 수련기에 접어들면 사도직 활동을 통해 자신이 선택한 수도회의 영성을 체험하면서 첫 서원을 준비한다. 수도회 장상의 허락을 받아 첫 서원인 유기서원을 한 뒤에는 적어도 2~3년 동안 다시 한번 수도성소를 식별하는 시간을 거친다. 유기서원은 말 그대로 유기서원 기간 동안만의 서원이므로 기간 이후에는 구속력이 없다. 이후 지원자는 종신서원을 통해 본격적인 수도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수도회별로 차이가 있지만 종신서원까지는 보통 6~8년이 소요된다.
▨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는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 성인(1782~1861)이 1816년 설립한 수도회.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활동하는 약 4500여 명의 회원들은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봉사, 영혼의 구원을 위해 온전히 헌신한다”는 정신 아래 어려운 이웃을 향한 복음화 노력에 주력하고 있다. 에우제니오 성인은 선종 당시 “여러분 가운데에서 사랑, 사랑, 사랑을 잘 실천하고 밖으로는 영혼의 구원에 힘 쓰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
※성소 상담 및 문의 031-268-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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