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에 담긴 생명의 말씀
온몸으로 하는 신학의 한 절정을 정약용의 침묵에서 만날 수 있다고 본다. 1800년 6월에 정조가 죽고 순조가 왕위를 계승하자, 그동안 정조에게 눌려 있던 서학 공격 세력이 천주교도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1801년 2월초에 정약용도 체포되어, 2월 10일, 첫 심문을 받는데, 이때 있었던 한 장면을 보자.
“너의 집에서 압수한 문서를 보아라.” “진실로 누구의 편지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또한 한 장의 문서가 있는데 보고 나서 말하여라.” “이 또한 누구의 편지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서찰 중에서 정약망(丁若望)은 누구인가?” “저희 일가 중에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정씨 성을 가진 ‘약망’이 누구인가? ‘약망’은 ‘요한’을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정약망’은 정요한을 가리킨다. 정약용은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입교했었다.
그런 그가 ‘정약망’이란 사람이 자기 집안에 없다고 하였다.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선구 세례자 요한의 사명을 이땅에서 이어가리라며 택하였던 그 이름 ‘요한’을 죽음의 형틀 앞에서 부인하였던 것이다.
정약용은 계속되는 심문에서 일부 신자의 이름을 대고 신자를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 주기도 한다. 그리하여 실제로 관청에서 몇몇 신자를 체포하는 데 기여한 적도 있다.
또한 1791년 진산 사건 이후 제사를 금하는 교회를 오랑캐로 보아 떠났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했던 과거의 행적을 강조하며 서학과 무관함을 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서학 반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옛동료 홍낙안 같은 사람은 정약용을 끝까지 죽이려 하였다. 그는 황사영이 9월말에 체포되었을 때도, 정약용을 다시 심문대에 서게 만들면서 집요하게 처형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여러 관료의 도움으로 정약용은 유배형을 선고받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하여 1801년 2월말에 경상도 장기로 유배를 떠났다가, 황사영 사건 때 강진으로 유배당하게 된다.
당대에 서학을 반대했던 사람들 중에 정약용이 진실로 서학에서 돌아섰다고 여기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하느님의 종 124위에 올라 있는 정복혜의 아들 윤석춘이 4월에 유배당할 때, 유배지로 정해진 곳이 장기였다.
그러자 경상도 감영에서 정약용이 완전히 천주학을 떠났는지 알 수 없으니 이들이 다시 소통하여 주민들을 천주학으로 물들일 것이 염려되므로 윤석춘의 유배지를 재고해 달라며 공문을 발송한 일까지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의심하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정약용은 심문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예수를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천주와 예수를 모독하였다면, 당시 관변측 기록에 이 사실이 수록되지 않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런데 현재까지 그런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신유박해 때 기록을 보면, ‘예수(耶蘇)’를 모독한 이들도 있고, 모독하기를 끝까지 거부한 이들도 있다. 모독하는 말을 한 사람들은 목숨을 구제받거나 형량을 적게 받거나 하였다.
그러나 정약용은 끝까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예수라는 이름을. 자기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는 부인할지언정, 예수에게 모독이 되는 말을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침묵이 정약용이 하느님의 침묵에 자기의 존재를 걸고 궁극적으로 응답하는 한 방식이었다고 보면 무리일까?
생의 최저점에서, 시체처럼, 자기의 모든 것을 놓게 만든 하늘의 뜻에 순명하는 마지막 몸짓으로서 예수를 입에 올리지 않는 저 침묵을 나는 온몸으로 온 입으로 온 머리로 그리고 온 마음으로 하는 신학의 한 꽃으로 본다.
그의 이러한 순명과 겸비함이 그로 하여금 마침내 유배를 하늘이 자기에게 내린 은총(天之寵)으로 노래하는 새로운 생을 맞이하게 하였으리라.
하느님은 말이 없으시다. 하지만 그분의 그 묵언(默言)을 알아듣는 이들에게 그분은 생명의 말씀이시다. 말없이 말하시는 그분의 말을 알아들을 길은 하나이다. 이 기획 서두에 말하였듯이, 성자의 케노시스를 닮아 두물머리의 영으로 듣는 것.
자기를 낮추어 다리 밟히듯 밟힐 줄 아는 이들만이 그분의 묵언을 전달받아(耳) 민중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전하는(口) 하느님의 사람(聖人)으로 서게 될 것이다.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