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랑 친구하지 않을래요?"
아버지 장애 4급 어머니는 일용직
폐지수집으로 네 가족 겨우 연명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서 새우잠
[전문] 가톨릭신문 창간 80주년을 맞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 한마음한몸운동본부, 그리고 서울 카리타스 자원봉사센터가 함께 하는 ‘천사 운동’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가톨릭신문사는 ‘천사 운동’의 원활한 진행과 많은 분들의 참여를 위해 매주 한 지면을 할애해 특집을 마련합니다.
‘천사 운동’ 특집은 ‘천사 운동’과 관련된 각종 소식을 전하는 ‘천사 소식’, 우리 주위의 날개 잃은 천사들의 소식을 전해 도움을 호소하는 ‘날개 달기’,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나누는 아름다운 이야기 ‘당신도 천사’, 그리고 기부와 봉사에 대한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배움터’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집니다.
이번 주 ‘천사 운동’ 특집은 서울에 사는 수민이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합니다. ‘천사 운동’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변 어려운 이웃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며 사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일일이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보면 누구나 눈물부터 흘리게 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수민이네 가족 역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어려운 이웃 중 하나입니다. 수민이의 나이는 22살. 초등학생 수준의 정신 연령을 갖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입니다.
‘날개 잃은 천사’ 수민이의 입을 통해 그의 가족과 삶을 소개합니다.
▨저는요
이수민(예비신자)이라고 합니다. 기자 아저씨가 말했듯이 나이는 22살.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어요. 지금 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폐지를 주우러 다녀요.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제가 사는 이태원 2동 주변을 샅샅이 돌아다녀요. ‘구루마’라고 불리는 제 유일한 친구인 손수레와 함께요.
요즘에는 어찌나 부지런한 분들이 많은지 폐지 줍기도 힘들어요. 하지만 제가 폐지를 주워야 엄마, 아빠, 언니가 밥을 먹을 수 있어요.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폐지를 찾아다닌답니다.
그 후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어요. 점심을 먹은 후엔 텔레비전을 봐요. 밤에 잠들기 전까지요. 친구를 만나고 싶지만 친구가 하나도 없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왕따’ 였거든요. 저는 잘못한게 없는데 친구들이 그냥 놀리고 때렸어요. 다가가면 ‘더럽다’고 막 피하고요. 하도 맞다 보니까 한쪽 어깨가 주저앉았어요. 아픈 것도 몰랐는데 엄마가 얘기해줬죠. 그래서 지금 거울보는게 싫어요. 어깨가 구부정하니까 걸음걸이도 이상해지고….
그래도 괜찮아요. 화장실 가는 것 보다 불편하진 않으니까요. 저희 집에는 화장실이 없어요. 그래서 화장실에 갈 때는 인근 지하철 녹사평역 화장실로 가요. 집에서 1㎞ 정도 떨어졌지만 급하니까 어쩔 수 없어요. 밤에는 어떻게 하냐고요? 꾹 참아요.
제가 지금 가장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건 컴퓨터에요. 얼마 전에 성당 아줌마가 컴퓨터를 한 대 주셨는데 사용을 못해요. 저희 집에 놓을 곳이 없거든요. 네 식구도 다닥다닥 붙어야 겨우 자는 공간에 컴퓨터 놓을 공간이 있을 리 없죠.
아르바이트나 취업을 하고 싶은데 아무데도 안 받아 줘요. “상태가 이상하다”, “왜 이리 느리냐”는 말만 듣고 쫓겨나기 일쑤였거든요.
저는 정상인데 다른 사람들은 저만 보면 이상하다 그래요. 그래도 내가 식구들 중에서 말도 젤 잘하는 편인데 말이죠.
▨아빠
아빠 이름은 이문규(요한.58)예요. 아빠는 요즘 맨날 누워만 있어요. 원래 다리가 아팠는데 요즘 더 심해졌나봐요. 아빠는 어렸을 때 공차기를 하다 다리를 다쳤어요. 근데 치료를 못 받아서 다리뼈가 녹았데요. 장애 4급이라 그러던데…
요즘에는 눈도 안 보인데요. 돋보기로 봐도 큰 글자만 보인다고 그래요.
원래 아빠는 양복점을 했었어요. 눈이 나빠져서 양복점 안하고 슈퍼를 했어요. 슈퍼 하다가 어떤 아저씨가 아빠한테 아파트 사준다고 하고 돈을 뺐어갔어요. 신용불량자가 됐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렇게 좁은 집에 사는 거라고 그랬어요.
아빠는 예전에 말도 잘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냥 누워만 있어서 불쌍해요. 얼른 일어나서 나랑 폐지라도 주우러 다니면 좋겠어요.
▨엄마
엄마 이름은 박숙엽(예비신자.52)이에요. 폐지 주우러 다니는 일은 원래 엄마가 했었어요. 이제는 몸이 안 좋아서 폐지는 안 줍고 다른 일을 해요.
동사무소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주거든요. ‘취로사업’이라던가. 그거 해요. 동네 여기저기 청소해요.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3시간 하고 들어와요. 한 달에 14일 하는데 30만원 준데요.
그래서 우리가 ‘기초생활수급자’가 안된데요. 엄마는 언니랑 나를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키고 싶어서 신문배달을 15년 동안 했어요. 엄마도 나랑 비슷한데 그 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파출부도 했었어요. 신문배달로는 학교 등록금이 모자라서 그랬데요. 한번은 내가 학교에서 너무 심하게 맞고 와서 엄마가 학교에 온 적이 있어요. 근데 엄마가 가고 나서 친구들이 더 때리고 놀렸어요. 엄마가 웃기다고 그러면서요. 나는 우리 엄마가 제일 좋은데 친구들은 자기 엄마를 안 좋아하나봐요.
▨언니
이정화(예비신자.24). 언니 이름 예쁘죠? 얼굴도 나보다 예뻐요. 언니도 나처럼 폐지를 주워요. 내가 동네 위로 가면 언니는 아래로 가고, 내가 아래로 가면 언니는 위로 가요. 언니도 걸음걸이가 이상해 둘 다 무척 느려요.
언니도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어요. 언니는 나처럼 많이 맞지는 않았나봐요. 근데 언니 친구들이 툭하면 돈을 빼앗았데요. 언니는 돈도 별로 없는데 말이죠. 언니도 나처럼 ‘왕따’여서 친구가 없어요. 취업도 나처럼 못했고요. 한번은 엄마 파출부하는데 따라갔다 못하겠다고 그랬어요.
이상한게 언니가 최근에 말을 잘 안해요. 고개도 맨날 숙이고 땅만 보고 있어요. 누가 가서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해요. 이러다 언니도 아빠처럼 될까봐 걱정이에요. 언니는 나보다 똑똑했었는데… 가족들이 자꾸 이상해져 가요.
▨성당에 간 날
2월 4일에 성당 갔어요. 아빠도 오래 안가다 이번에 가족 모두 갔어요. 원래 언니랑 나만 가려고 했는데 엄마, 아빠도 같이 가서 좋았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무슨 입교식이래요. 아줌마들이 성당 다니면 아빠처럼 이름 뒤에 이름 하나 더 생긴다 그랬어요. 그래서 일요일마다 갈거에요.
여긴 친구들도 많아요. 학교 다닐 때처럼 친구들이 때리지도 않아요. 성경책도 선물로 받고 다들 너무 잘해줘요.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어요.
▨걱정
최근 들어 주변에 사는 성당 아줌마들이 이런 말을 해요.
“엄마, 아빠 갑자기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래?”
대답을 못하겠어요. 생각 해 본 적이 없어서요. 엄마 없으면 힘들 것 같긴 해요. 저랑 언니는 빨래도 못하고 밥도 못하거든요. 그래서 아줌마들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 된다”고 말해주곤 해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열심히 하면서 사는데 아줌마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나봐요. 누구한테 도움을 받으라고 하는데 무슨 도움을 받아야 될지 모르겠어요. 누가 나한테 빨래하는 거랑 밥하는 거도 가르쳐 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취재후기
사랑의 날개 달았으면…
입춘을 하루 앞두고 포근한 봄기운으로 가득 찼던 지난 2월 3일. 수민이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보지 않으면 창고인지 집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의 작은 단칸방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박숙엽씨는 마침 자매가 모아온 폐지를 구분, 분리해놓고 있었습니다. 어눌한 목소리로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는 박씨는 제 손을 잡고 집안으로 끌었습니다.
굳게 닫힌 문. 첫째 정화가 머리를 감고 있었습니다. 동생 수민이가 귀띔합니다. “내일 성당에 간다고 머리 감아요.” 성당 간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는지 정화는 낮부터 준비 중이었습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눈앞에 벌어진 집 안 풍경에 또 한 번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1평도 안될 정도의 부엌과 2평 남짓한 방만이 있었습니다.
천장은 눅눅할 데로 눅눅해져 조만간 무너져 내릴 듯 했고 온갖 물건들로 인해 방안에는 쾨쾨한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정화는 보일러 시설이 없어 차디찬 물로 머리를 감은 후라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수민이 가족이야 말로 ‘날개 잃은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사는 모습에 마음도 아팠습니다.
수민이 가족과 같은 어려운 이웃들이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수민이 가족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그날, 그 때까지 그들에게 사랑의 날개가 달렸으면 합니다.
■ 후원계좌=예금주 (재) 천주교한마음한몸운동본부
우리은행 1005-194-001004 농협 386-01-019602
사진설명
▶언뜻 보면 사람이 사는 곳인지 분간이 안되는 수민이네 집. 누가 보더라도 곧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상황이다.
▶2~3명이 앉으면 가득 차는 수민이네 단칸방. 화장실도 없는 이곳에서 수민이네 네식구가 생활하고 있다. 왼쪽부터 어머니 박숙엽씨, 첫째 정화, 둘째 수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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