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열정 넘치는 ‘아시아 교회 장녀’
주민 2만여명에 성당이 40개 달해도
주일이면 자리 없어 밖에서 미사 참례
정부통제 극복하고 세상과 화합 “과제”
하나, 둘, 셋, 넷…. 성당이 10~20m 간격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도로에 인접한, 눈에 보이는 성당만 20개가 넘어 보였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집집마다 대형 성모상을 모시고 있었고, 길거리 성물 파는 가게는 성업 중이었다. 가톨릭 본고장이라는 유럽의 어느 마을 모습이 아니다. 베트남 호치민(사이공)에서 동북쪽 방향으로 승용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동나이 마을. 주민 수 2만여명에 불과한 이 곳에 성당이 40여개에 이른다. 소성당을 포함할 경우 그 수는 100여개로 늘어난다. 더 놀라운 것은 주일이면 이 많은 성당에 자리가 부족해 성당 밖에 서서 미사에 참례해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그 어느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렇게 활기 넘치는 교회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베트남 교회를 ‘아시아 교회의 장녀’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법했다.
동나이 가톨릭 마을은 1954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나뉠 당시 북쪽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향했고 동나이에 정착, 마을을 세웠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성전 신축. 출신지역별로 경쟁적으로 성당을 세웠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일했다. 이들의 신앙 뿌리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 베트남 천주교 전파와 박해
베트남 교회 역사는 한국교회 보다 200년이 앞선다. 베트남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16세기. 프랑스 선교사인 이냐시오 신부가 베트남에 첫발을 디딘 것이 1533년이다.
베트남 교회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1600년대 중반으로, 베트남 첫 방인 사제 트랑 신부를 비롯해 1668년에만 4명의 베트남 사제가 탄생했다.
이후 17세기 중반, 베트남 교회 신자는 40여 만명에 달했고, 17세기 말에는 그 배인 80여만명에 이르게 된다.
한국에선 박해가 한창이던 1802년에 베트남은 이미 3명의 주교와 55명의 외국인 선교사 사제, 121명의 베트남 방인 사제가 활동하는 대규모 교회로 성장한 것이다. 베트남에서의 선교사 역할은 한국교회 이상이었다.
현재 베트남인들이 사용하는 베트남 문자를 만든 것이 선교사들이다. 또 다양한 서양문물과 과학사상을 전파, 당시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환희의 신비’도 잠시. ‘영광의 신비’를 위해선, ‘고통의 신비’가 필요했다. 박해가 닥친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조상제사 금지 방침은, 베트남인들을 자극했다. 특히 새로운 서구 사상은 당시 베트남 각 왕조에 대한 전통을 위협하는 요소도 강했다.
그 이유로 17세기 초반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300여년에 걸친 대대적인 박해가 이어진다. 학자들은 이 시기에 순교한 베트남 신자가 약 1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8년 이들 순교자 중 117위를 성인품에 올린다.
▨ 베트남 교회의 정착
박해는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가 되면서 끝난다. 1867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식민지 시기는, 베트남 민족으로서는 굴욕적인 시기였지만 베트남 교회 입장에서는 황금기였다.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나뉜 후에도 가톨릭은 남 베트남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급속히 성장했으며, 학교와 기관, 국영방송, 복지시설에 이르기까지 활동을 확대해 나갔다. 특히 1960년 11월24일은 베트남 교회의 기념비적인 날이다.
요한 23세 교황은 이날 베트남 교회에 하노이, 후에, 사이공 등 3개 대교구와 17개 교구(량송, 하이퐁 등)를 설정한다. 이들 교구는 이후 더 분할돼 현재 25개에 이른다.
▨ 베트남 교회의 한계와 과제
베트남 교회에서 ‘박해의 기억’은 오히려 ‘한계의 근거’가 된다. 베트남 신자들은 외부인들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울타리를 쳤다.
타종교인 및 일반인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고, 신앙인들만의 ‘끼리기리’삶을 유지했다.
심지어 천주교 공동체가 ‘국가속의 작은 국가’라는 비판까지 받을 정도였다. 실제로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나뉠 당시, 북 베트남 지역 신자의 50%(70여만명)가 남쪽으로 이주했지만, 같은 시기 남쪽으로 넘어온 비가톨릭 신자는 0.5%에 불과했다. 북 베트남 입장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민족과 나라를 배신하고 오직 외국 신앙만 따른다는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베트남 교회는 개인 신심 위주 신앙이 강하다. 사회주의 정부의 제약도 원인이기는 하지만, 주로 ‘나 홀로 구원’의 신심이 강한 것이다.
그래서 사회문제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세상과 단절된 교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베트남 한인 천주교 공동체 이창신 신부는 베트남 교회의 당면 과제를 “우선 정부의 통제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에 대한 제재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는 현재도 가톨릭 교회 성장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바티칸이 주교를 임명해도 그 임명을 거부하고 있으며, 사제 임명과 보직 발령에 대해 여러 규제를 가하고 있다. 정부가 허락하는 사제 수품자의 수가 부족해 베트남 사제 연령층을 계속 높아지고 있으며 은퇴사제 수도 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995년 처음으로 하노이 신학교에서 매년 신학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지만 그전 까지는 2년에 한번 정부가 인정한 신학생을 받아들이게 했다. 새 신학교 설립 허가도 지연하다가 최근에야 한 곳에 신학교 설립을 허가했다. 성소자는 많지만, 사제가 부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다 보니 베트남 교회 성장률도 저조하다. 1960년 인구대비 신자비율이 7.17%이던 것이 지난해 말 현재 7.5%에 그치고 있다. 인구성장률을 감안하면 오히려 신자수가 줄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2년간 여러 개방 조치들을 추진하고 있어 많은 사제와 신자들은 “앞으로는 달라진 베트남 교회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황
▲ 교구 수 : 3개 대교구 포함 총 25개 교구
▲ 신자 수 : 800여만명. 인구의 약 7.5%
▲ 사제 수 : 3000여명
▲ 수도자 및 선교사 수 : 수사 1500여명. 수녀 1만여명. 선교사 4만여명
▲ 신학생 수 : 1500여명
▲ 연간 세례자 및 견진자 수 : 세례자 1O만여명, 견진자 3만여명
▲ 성인 : 117위(주교 8명, 신부 50명, 선교사 16명, 신학생 1명, 평신도 42명)
◎'한국발' 성경공부 열기
성경보급·지도자 양성 매진
“돈없어 성경 구입 못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성서백주간 확산
베트남 교회는 지금 ‘한국 발(發)’ 성경 열기가 한창이다.
나뜨랑 교구와 퀴논 교구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최근 성경 공부를 시작했고, 다낭 교구에서도 성경 보급 및 성경 지도자 양성에 한창이고, 호치민 대교구도 2005년 11월 성서 백주간 봉사자 300여명을 양성하는 등 성경 공부 분위기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2005년 영문성경 매일 묵상집이 처음 발간된 것을 시작으로 2006년과 2007년에는 나·다해 성경 묵상집이 각각 2000권씩 만들어져 전국의 신학생들과 성직 수도자들에게 전해졌다.
최근에는 주교회의 차원에서 54개 소수민족의 고유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베트남 주교회의는 또 오는 2008년 한 해동안 신학생과 젊은 성직 수도자 청년들에게 1만 여권의 ‘영어 베트남어 혼용 성경 매일 묵상집’을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이같은 베트남 성경 열기는 모두 서울대교구 이문주 신부(양재동본당 주임)까 뿌린 10년 노력의 결실이다.
1969년부터 1979년까지 백마부대 군종신부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이 신부는 1997년부터 성경보내기 운동을 전개했다. 베트남 성경 열기를 일으킨 장본인인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이신부 소개로 전해진 성서 백주간이 호치민대교구를 중심으로 활발히 확산되고 있다.
성서 백주간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호치민대교구 사목센터 피터 칸 소장 신부는 “베트남은 지금 성당과 복지시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 성장”이라며 “단돈 1달러가 없어 성경을 읽지 못하는 베트남 신자들을 한국교회 신자분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베트남 성경 보내기 운동 문의 02-3462-9981 서울 양재동본당
사진설명
▶호치민 소재 노틀담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
▶베트남 교회는 지금 한국발 성경공부 열기가 한창이다. 사진은 성경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나뜨랑 교구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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