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천한 곳에서 ‘희망’을 보았다
오물 수거·시체 처리 등으로 연명
온갖 멸시받고도 미래 꿈꾸며 살아
우리의 작은 관심이 그들에겐 큰 힘
[전문] 한국의 희망나누미들이 가난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소외받은 인도의 달리트 공동체를 만났다.
한국희망재단(상임이사 김홍진 신부)은 2월 2일부터 9일간 인도 타밀나두주와 안드라 프라데시주의 달리트공동체를 방문해 현지 주민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자원활동가로 또 다른 이름인 희망나누미로 참가한 최효민(요한 크리소스토모.서울 문정동본당)·최유실(요비따.서울 문정동본당)씨의 소감문을 화보와 함께 싣는다.
■ ‘닿기만 해도 부정해진다’ - 달리트(Dalit)
인도의 카스트제도 밖에 있는, 달리트(Dalit)라는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달리트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을 일컫는다. 말 그대로 ‘닿기만 해도 부정해 진다’는 인도인들의 생각이 담겨있다. 인간사회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아래 있는 무엇으로 여겨지는 그들은 사람들이 가장 비천하다고 여기는 직업에 종사해왔다. 오물 수거, 시체 처리, 가죽 가공, 세탁, 도기 제조 등이 그들의 몫이다.
예수회 마누(Manu) 신부는 달리트를 폭풍우에 힘들어하는 바다위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일까. 그들을 직접 볼 수 있는 해안가의 사람일까. 아니면 바다조차 볼 수 없는 산 너머의 사람일까. 한국이라는 산 너머에 있다가 인도라는 해안가에 온 우리들은 이제 폭풍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일지 새삼 생각해본다.
■ ‘What is your name’
안드라 프라데시주의 닥킬리(Dakkili) 지역 달리트공동체. 그들은 입버릇처럼 “What is your name?”을 연발했다. 교육 받기 힘든 그들이 할 줄 아는 영어는 이름을 묻고 답하기뿐이었다. 짧은 문답이었지만 그들의 순수한 미소와 악수 속에서 외로웠던 마음을 우리에게 기대는 듯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가시나무를 베고 어지럽혀진 길가를 정돈하고 가축의 배설물을 치우며 그들을 위해 땀을 흘렸다. 마치 신석기 시대 움집과 같은 집. 흙바닥에서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민속박물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줬다. 그들이 하루 종일 일해 받는 돈은 30루피. 한화 600원이다.
한국희망재단은 이 마을과 다른 두 곳의 달리트공동체에 소 사주기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현지 상황에 맞게 소 한 마리 대신에 염소 두 마리를 받을 수도 있다. 이미 재단의 지원을 받은 이들 중에는 그 염소가 새끼를 낳아 여러 마리 염소를 가지게 된 부자(?)도 있었다.
염소를 안고 자랑스러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해본다.
염소 두 마리, 세 마리를 주기 보다는 그들이 받은 한 마리를 잘 키워 새끼를 얻은 모습이 더 의미 있다고 본다. 누군가의 작은 관심과 도움이 있다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 대접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음을 느낀다.
■ 나를 버리는 마음으로
충격적이었다. 도시의 달리트, 그들은 오물청소부(scavenger)라 불린다.
그들은 아무 도구도 없이 맨몸으로 맨홀에 들어가 인분 섞인 온갖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었다. 청소를 위해 받는 것은 한 달 비누 6개. 원래 12개였는데 그나마도 줄었단다. 역겨워 도무지 볼 수 없는 모습에 한심했다. 화가 났다.
첸나이에 있는 케살라 필라이 빈민촌. 온갖 쓰레기와 가축배설물, 하수구가 막혀 흘러넘치는 오물이 가득했다. 군데군데 고인 물은 썩어, 벌레가 들끓었다. 구역질을 간신히 참으며 나를 버리는 마음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희망나누미 12명이 쓰레기 더미를 한 곳에 모아놓으면, 달리트 청소부가 그것을 작은 판으로 쓸어 담았다. 우리는 어떻게든 쓰레기와 배설물이 몸에 묻지 않게 행동했지만, 청소부들은 항상 그렇듯 팔 다리에 오물을 다 묻혀가며 청소하고 있었다. 달리트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은 1년 만에 처음 청소한 것이라고 했다.
■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2억이다. 흙바닥을 이불 삼아 살고 오물 뒤덮인 맨홀에서 하루 종일 씨름하는 달리트가 인도 전체를 통틀어 2억 명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그들은 절대적인 빈곤 속에서 차별 받으며 사람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짧은 만남 속에서 작은 빛을 봤다. 자신이 배운 영어 “What is your name?”을 써 보려고 우리에게 와서 말을 건네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온갖 멸시와 차별 속에서도 공부가 곧 길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모습은 분명 희망이었다.
우리는 다시 바다를 떠나 산을 넘어 돌아왔다. 한동안 바다를 보지 못한다면, 그곳에서 어떤 폭풍우가 몰아치고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며 사투하는 지 잊어버릴 지도 모른다.
기억 속에 오래 남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나의 작은 관심이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달리트를 위해 희망의 등대가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폭풍우를 헤치고 무사히 해안가에 다다를 수 있도록.
◎소 사주기·인권활동 등에 1억여원 전달
한국교회로선 첫 지원활동
교회 안팎 사회운동가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해외원조기구인 한국희망재단의 이번 인도 달리트 공동체 방문은 2005년 설립 후 재단의 첫 해외활동이다. 이번 방문에는 재단 이상준 사무처장과 서울 문정동본당 박범석 신부를 비롯 청장년 12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현지 달리트 지원단체인 ‘자노다얌’(JANODAYAM), ‘리드‘(LEAD)와 협력해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달리트 마을 세 곳과 타밀나두주 첸나이시 빈민촌을 차례로 방문해 현지 주민들을 위한 활동을 했다.
또한 달리트 공동체를 위한 소 사주기 사업과 학용품 지원을 위해 한화 300만원을 전달했다. 달리트 공동체와 연계해 방문 및 지원활동을 전개한 것은 교회 내에서는 처음이다. 앞서 재단은 지난 한 해 동안 1억 1000여만원을 인도 달리트 인권단체 활동에 지원한 바 있다.
재단은 앞으로 매년 한 차례씩 인도나 방글라데시 등 재단의 해외원조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을 방문해 보다 많은 이들이 해외원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희망재단은 현재 프랑스 해외원조기구인 CCFD를 비롯해 인도와 방글라데시 현지 단체와 손잡고 달리트 공동체 지원과 방글라데시 소외계층 주택 제공 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해부터는 필리핀과 미얀마 빈곤아동을 위한 교육지원사업도 전개할 예정이다.
※ 후원문의 0502-365-4673, 홈페이지 www.hope365.org
사진설명
▶첸나이 케사바필라이 빈민촌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한국희망재단 활동가들.
▶닥킬리 지역 달리트공동체에서 물동이를 든 채 아이와 함께 서 있는 여성.
▶첸나이 간드히 나가르 빈민촌 공부방 아이들.
▶달리트공동체 환영식에 참석한 자원활동가들. 뒷줄 왼쪽 세번째가 최효민씨, 뒷줄 오른쪽 첫번째가 최유실씨.
▶한국희망재단 이상준 사무처장이 빈민촌에 학용품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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