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여 성소자 넘치지만 다 수용 못해"
통역 봉사자 유스티나씨가 베트남 교회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 “한번 가 봅시다.” 호치민시(市) 중심가에서 불과 10여분을 걸었을까. 유스티나씨가 작은 시장 골목 안으로 앞장서 걸어들어갔다. 다닥다닥 붙은 소형 상점들,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식당, 지나는 행인에게 손짓하는 노점상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골목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함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골목 끝 지점. 150년 전통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호치민 관구가 그곳에 있었다.
갓 20살을 넘겼을 법한 수련기 수녀 10여명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일행을 바라봤다. 다가가서 사진을 찍으려 하자 “웬일이니~”하며 서로 등을 떠밀며 “까르르” 웃는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수련기 수녀는 모두 110여명. 종신서원을 거친 수녀를 포함하면 모두 300여명에 이른다. 베트남에 이렇게 큰 수도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베트남=사회주의 국가’라는 공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베트남은 중국이 아니었다.
베트남내 여자수도회 회원 수는 1만여명. 남자수도회 회원 수는 약 1500여명에 달한다. 유럽과 달리 베트남의 봉헌생활 성소는 아직도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었다. 사제 성소도 마찬가지. 베트남에서는 신학교에 가기 위해선 모두 일반 대학을 나와야 한다. 그 후에 철학 2년과 신학 4년 과정을 수료해야 서품 자격이 주어진다.
어릴때부터 사회주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청년들이 선택하기에는 쉽지 않은 과정. 하지만 현재 베트남 전국 6개 신학교에선 총 1500여명의 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베트남의 성소 활기는 베트남 내에서 뿐만이 아니다. 현재 미국교회에서 미국 국적을 갖고 활동하는 베트남계 사제만 500여명. 모두 전쟁 당시 미국으로 탈출한 베트남 난민 2~3세들이다. 베트남 교회는 한국과 함께 성소가 가장 활발한 나라인 셈이다. 베트남 교회를 ‘성장이 멈춘 교회’라고 생각해선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느위엔 반 흐흥 호치민 성 요셉 신학대 총장은 “더 많은 젊은이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도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을 정도”라며 “정부의 종교 규제만 풀리면 베트남 교회는 더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많은 수의 성소자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 조직이 체계화 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살아 움직이고 있는 교회 조직이 교회에 활기를 주고, 그 활기가 성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베트남 교회는 한국교회처럼 크게 3개 관구로 나뉜다. 하노이, 후에, 호치민 관구가 그것. 하노이 관구는 하노이 대교구를 비롯해 10개 교구로, 후에 관구에는 6개 교구로, 호치민 관구에는 9개 교구로 구성된다. 이들 관구들은 각각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1850년에 설립된 후에 신학교가 맏형 격이다.
1975년 공산화 이후 학교 문을 닫았다가 1994년부터 새로 신학생을 받고 있다. 현재 재학생은 100여명. 이외에 하노이 신학교(200여명 재학), 호치민 신학교(200여명 재학)가 대표적이다. 이밖에 빈탄, 탄귀이 신학교는 급증하는 성소자를 위해 1988년 새로 설립됐다.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경옥(시메온) 수녀는 “베트남이 비록 선교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는 있지만 중국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기존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활발하고, 교회의 활동도 왕성한 만큼 앞으로 선교 자유와 관련한 큰 변화가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호치민 성 요셉 신학대 총장, 영성담당 신부
“돈없어 성경도 못읽어 한국교회 지원 큰도움”
‘인본, 영성, 지식, 사목’
베트남 호치민 성 요셉 신학대학의 느위엔 반 흐흥(Eruert Nguyen Van Huong) 총장 신부와 두 마우흐 흐흥(Joseph Do Mauh Huong) 영성담당 신부는 베트남 신학교육의 기본 틀로 4가지를 지목했다. “인간을 사랑하고, 영성을 강화하고, 지식을 축적하고, 사목역량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교육방침은 역설적으로 베트남 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열악한 경제적 여건과, 인프라 부족으로 인본, 영성, 지식, 사목에 대한 배려가 상당부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호치민 신학교 재학생은 235명. 모두 일반 대학을 졸업한 후 성소의 뜻을 품고 신학교에 다시 입학한 베트남의 재원들이다. 하지만 신학생들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베트남 교회가 외국교회의 도움을 받아 학문에 재능 있는 신학생을 유학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자들도 성경을 읽고 싶어도 돈이 없어 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신자 재교육이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느위엔 총장신부는 “신학생들과 신자들의 신앙 열정은 그 어느 나라 교회에도 뒤지지 않지만, 재정이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한국교회가 성경 보급 및 베트남 성경 번역에 대한 지원을 해 주고 있는 것이 그나마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신부는 성당 신축이 불가능해 교세 확장은 꿈도 꾸지 못하는 베트남 교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희망’을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요즘 정부 입장이 많이 희망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에 대한 규제도 많이 풀릴 것입니다. 베트남 교회의 저력이 이제 꽃을 필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며 기도하며 준비하겠습니다. 한국교회도 이런 우리의 희망과 함께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50년 박해에 순교자 1만명
베트남 교회 신앙의 뿌리 117위 성인
호치민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붕따우는 또 다른 ‘피의 역사’가 있다.
1862년 1월 7일. 당시 베트남 왕의 박해정책에 따라 붕따우 바리야의 한 감옥에 298명의 신자가 갇힌다. 그리고 “배교를 하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불을 지르겠다”는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298명 중 단 한명도 배교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298명은 모두 산화했다. 순교자들은 뜨거운 불길속에서도 신음소리, 비명소리 하나 내지 않고 묵주기도를 하며 죽어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베트남 교회에 대한 박해는 170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1800년대 말까지 지속됐다. 150여년에 걸친 박해에서 순교자만 1만 여명. 1800년대 신자 실종자만 5만여명이라고 한다. 이들 중 성인품에 올려진 순교자는 모두 117위. 주교가 8명, 신부가 50명, 수도자가 16명, 신학생이 1명, 평신도가 42명이다.
베트남 신자들은 이들에 대해 각별한 신심을 드러내고 있다. 베트남 성인상이 각 성당마다 모셔져 있으며, 몇몇 교구는 공동체 차원에서 베트남 순교 성직자에게 매월 정기적으로 청원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호치민 봉수아이 본당 람 탄 반(Lam Thanh Van)씨는 “베트남 신자들은 순교 성인들에게 어려운 점을 청원하면 모든 것을 들어주신다는 믿음이 강하다”며 “베트남 순교성인들의 영성이 아시아 각국에도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수련기 수녀의 해맑은 웃음 : 베트남내 여자수도회 회원 수는 1만여명. 남자수도회 회원 수는 약 1500여명에 달한다. 6개 신학교에선 총 1500여명의 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베트남 교회의 순교성인상. 성당마다 성인상을 모시고 깊은 순교신심을 드러내고 있다.
▶성 요셉 신학대학의 느위엔 반 흐흥 총장신부(왼쪽)와 두 마우흐 흐흥 영성담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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