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도움 없으면 하루도 못살아”
정부는 경제 성장에만 주력
복지 인권 환경에는 무관심
교회, 사각지대 메우기 주력
노숙자와 장애인 보호 앞장
악몽같은 1년이었다. 행복의 기억은 까마득하다. 1년 동안 가정도, 희망도 모두 사라졌다. 마이 트이 탄 트랑(Mai Thi Thanh Trang 31 여)씨. 에이즈에 감염된 남편은 2살 아기를 남겨 놓고 지난해 6월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탄 트랑씨도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남편을 따라 가야 한다. 남편으로부터 에이즈가 전염된 것. 병원에서는 길어야 6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탄 트랑씨는 요즘 기도에만 매달리고 있다. “내가 죽으면 이 아기는 어떻게 하나요…” 아기를 바라보는 탄 트랑씨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도나 트이 가이(Dona Thi Gai 48 여)씨는 호치민시 봉수아이(Vuonxoai) 본당이 오갈 곳 없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한 쉼터에서 탄 트랑씨와 함께 살고 있다. 간암 말기 환자. 얼마전만 해도 그럭저럭 몸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이제는 팔을 올리는 것 조차 힘들 정도다. “성당에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아마 길거리에서 죽었을 겁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신앙을 알았으니까요. 매일 하느님과 천주교 교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트이 가이씨 손에는 묵주가 들려 있었다.
쉼터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위치한 람 탐 반(Lam Thanh Van 48 여)씨 가정. 남동생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고, 76세 어머니는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다. 아버지는 오랜기간 심장병을 앓다 3년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와 남동생 병간호를 위해 결혼도 못한 탐 반씨는 “하느님께 매일 기도하고 있으니까, 우리 집에도 언젠가는 웃음 꽃이 필 날이 있겠지요”라며 웃었다. 람 탐 반씨는 “성당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 가족은 하루도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베트남 교회는 희망의 다른 말이다. 오랜 기간 박해를 받아온 베트남 교회는 내세 지향적인 신앙이 특징. 특히 타 사회 기관 및 종교에 대한 폐쇄성과, 신자 ‘끼리’의식이 강하다.
그래서 그동안 사회복지나 정의, 생명, 환경 운동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제가 성장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교회는 이 땅의 소금과 누룩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베트남 교회는 최근 정부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사각지대 복지 활동에 전념하고 있으며, 특히 노숙자와 장애인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호치민시 봉수아이 본당 판 깍 뜨으(Phan Khac Tu 68) 주임신부가 가볼 곳이 있다고 했다. 호치민에서 차로 1시간 30여분 거리에 위치한 ‘팅 풋’(Thien Phuoc). 우리말로 ‘천국 어린이’라는 의미다. 팅 풋에는 천사들이 있었다. 뇌성마비와 정신지체 어린이 5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10여년전 봉수아이 본당이 자체적으로 설립, 버려진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다. 정부의 지원은 거의 없는 상황. 베트남은 최근 경제 발전의 여파로 이혼과 마약 복용이 늘면서 버려지는 아이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을 수용할 복지시설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이다. 장애인 보호와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다. 교회가 그 틈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열악한 재정으로 실질적 도움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호치민 대교구 캄 느웨인 영성사목센터 소장 신부는 “과거에는 모두가 가난했지만 이제는 빈부격차가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지고 있다”고 말했다. 캄 느웨인 신부는 또 “아직 베트남에서는 교회가 사회구조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기도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상을 정립하는 것이 베트남 교회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백화점엔 최고급 브랜드 즐비
빈곤층은 폐품 모아 생계유지
▨ 심화되는 빈부격차
호치민 중심지의 한 백화점. 여성 화장품 코너에 세계 유수의 브랜드들이 들어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장 코너에도 버버리, 피에르카르뎅 등의 옷들이 걸려 있다. 전자제품 매장에도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선진국 시장에서도 고가품으로 분류되는 LCD, PDP 텔레비전이 진열되어 있다. 삼성, LG 등은 물론이고 소니 필립스 파나소닉 등 세계적 메이커들이 경쟁하고 있다.
불과 10년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베트남은 최근 4년간 7%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1995년에는 8.4%성장률을 기록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대략 640달러 수준으로 2000년 국민소득의 370달러에 비해 70% 넘게 성장했다.
하지만 통코이 중심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사이공강에 가면 전혀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강 어귀 한 귀퉁이에서 한 노인이 강물에 밀려 떠내려온 쓰레기를 모으고 있다. 옆에서는 10살도 안돼 보이는 한 소년이 자맥질을 하며 강 바닥에 버려진 철근 등 쓰레기를 건져 올리고 있다. 호치민에서 폐품을 모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베트남 절대빈곤층비율은 2005년 말 현재 20%대. 절대 빈곤층 기준도 월 1만5000원 이하 수입으로 정하고 있어, 실제 빈곤층은 50%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맹률도 6%대. 베트남 교회가 최근 교육과 사회복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열악한 재정 형편 때문에 큰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경제성장에만 치중하고 있어, 복지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인터뷰] 호치민 ‘사회복지의 대부’ 판 깍 뜨으 신부
“복지시설 운영비 조달 위해
국회의원 인민위원 등 겸직”
3선 국회의원, 호치민시 인민위원회 산하 사회복지회 전담위원, 국영 호치민 TV 자문위원….
호치민 대교구 봉수아이본당 판 깍 뜨으(Phan Khac Tu 68) 주임신부는 명함이 많다. 일부 동료 신부 중에는 이런 그를 못마땅하게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판 신부는 이런 시선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제 명함은 하나의 도구입니다.”
판 신부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직함들은 선교와 각종 종교 활동, 복지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실제로 판 신부는 30여년 전부터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목에 주력하고 있다. 교회 재정이 열악한 만큼 대부분 운영비는 국가로부터 이끌어 낸다.
판 신부가 국회의원직을 고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도 100만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형 복지시설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래서 호치민에서 판 신부는 ‘사회복지의 대부’로 통한다.
“교회가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소외된 이들을 보고도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판 신부가 ‘밖’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봉수아이본당 신자 수는 7000여명. 이들을 위해 성경 보급 및 성서 세미나, 피정 등 타 본당에서 실시하지 않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교육에도 열심이다. “신앙인들 그리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남은 생을 바칠 생각입니다.”
본당 신자들에게 무엇을 가장 강조하느냐고 물었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십계명을 철저히 지켜 진정한 신앙인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기복적인 신앙이 아니라 희생하는 신앙을 강조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은 바로 사랑과 십계명, 희생 속에 있습니다.”
사진설명
▶호치민시 봉수아이 본당 복지시설에 있는 장애 아이들. 베트남은 최근 경제 발전의 여파로 버려지는 아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사이공강에서 한 노인이 강물에 밀려 떠내려온 쓰레기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폐품을 모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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