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찾으려 신학교 입학합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1% 미만 생존 가능성 딛고 새삶
암세포 뇌에까지 전이돼 하반신 마비
일본서 골수 찾고 본지 독자 도움 잇따라
“하느님께서 살려주신 목숨 하느님께 봉헌”
예수 그리스도가 고통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고통의 연속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꿈꾸며 묵묵히 아픔을 견디어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고통을 극복하고 새 삶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이웃의 모습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닮아 있기에 사순시기를 보내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 2002년 6월
전국이 월드컵 열기로 후끈거릴 때 강원도 원주의 단칸방에서는 한 청년의 사투(死鬪)가 힘겹게 이어지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암세포가 뇌에까지 퍼져 살아날 확률이 1%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스물 넷. 군대도 다녀왔으니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만 남았다고 했던 그는 어머니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화장실에도 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손톱 사이사이에 낀 아들의 변을 닦아내며 하염없이 울었다.
5년이 지났다. 2007년 2월 수원가톨릭대학교. 그는 올해 입학하는 50명의 신학생 중 한 명이었다. 누구 못지않게 건강했다. 병마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하느님의 참 모습을 찾고 싶어 신학교에 왔다고 했다. 나의 하느님을 체험하고 싶다고 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살려주셨기에 자신을 온전히 그분께 봉헌하고 싶다고 했다. 50명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늦깎이 신학생. 지난 5년이 궁금했다.
◆ 고통의 길
2001년 10월. 군 복무를 마친 김영웅(요한 원주 태장1동본당)씨는 ‘내년엔 장학금 타서 효도하겠다’며 부모님께 제대인사를 했다. 넉넉치 않은 집안 사정이었지만 그렇다고 가난 때문에 힘겹지도 않았다.
하지만 제대의 기쁨도 잠시였다. 김씨에게 병마가 찾아온 것은 그 해 한가위 연휴. 무릎과 허리에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었다. 혈액에 있던 종양은 뇌에까지 전이돼 입이 돌아가고 하반신이 마비됐다.
날이 갈수록 쌓이는 엄청난 치료비가 김씨 가족을 짓눌렀다. 밀린 카드대금을 납부하라는 독촉장이 쌓여갔다. 수녀회에 입회한 큰 누나와 직장에 다니는 둘째 누나, 그리고 어머니 김동옥(데레사)씨의 기도가 가족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 희망의 손길
천만다행으로 이식할 수 있는 골수를 일본에서 찾았지만 막상 수술비가 없었다. 본지(2002년 6월 16일자)를 통해 김씨의 사연을 접한 독자들이 작은 정성을 보내왔다. 익명의 한 신자는 거금 1000만 원을 선뜻 내어놓았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전국 방방곡곡의 수많은 신자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보태 김씨의 쾌유를 기원했다. 김씨 가족은 독자들의 성금으로 그동안 빚졌던 치료비를 모두 갚을 수 있었다. 골수이식 후 필요한 혈소판은 김씨가 복무했던 기무사령부 장병들이 기증했다.
독자들의 정성은 기적을 만들었다. 골수를 이식받은 김씨는 나날이 병세가 호전됐다.
위험한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도 투병한 김씨는 1년 후인 2003년 건강한 모습으로 학교에 복학했다. 2006년 가을학기에는 학사모를 썼고 취직도 했다.
김씨 가족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큰 누나에 이어 둘째 누나도 수녀회에 들어갔다. 동생의 병이 낫는다면 수도자의 길로 들어서겠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김씨의 쾌유를 간청했던 둘째 누나는 결국 약속을 지켰다. 큰 누나는 올해 종신서원을 작은 누나는 내년 1월 첫 서원을 한다. 공사장을 전전하다 사기를 당해 치료비마저 날렸던 아버지 김수건(스테파노)씨도 냉담을 풀고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 부활을 봅니다
“죽음의 공포를 겪으며 나의 삶이 오로지 나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1%의 생존확률을 현실로 만든 것이 자신이 아님을 김씨는 안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김씨는 비로소 죽음에 대해 묵상했다. 나에게 새 삶을 주신 분이 결국은 하느님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김씨는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서 만난 사람들은 김씨처럼 하느님을 찾고 있었다. 아니 김씨보다 먼저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도 있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하느님과 함께 살며 누구보다 행복해 하는 누나들과 동료 신자들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도 하느님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죽음에 이르렀던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지도 모르겠다고 김씨는 말했다.
“저도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일원이 됐으면 했어요. 이제 신학교에서 제 하느님을 찾고 싶습니다.”
올해 김씨는 새로 태어난다. 하느님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살아왔던 스물 아홉 해를 뒤로 하고 신학생의 길로 들어섰다. 7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지만 김씨는 그 시간동안 기도 중에 하느님을 만나는 신학생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힘겨웠던 병마를 떨치고 새 삶을 얻는 해이기도 하다. 암 치료 후 5년이 지날 때까지 재발하지 않으면 병원에서는 완치 판정을 내린다. 올해 여름이면 골수 이식 후 정확히 5년이 지난다.
“제게 힘을 주셨던 많은 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고 싶지만 ‘고맙다’는 인사가 너무 상투적이고 형식적일까 걱정됩니다. 죄송스럽지만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과 은인들이 주신 새 생명을 값진 곳에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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