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성당에 새 옷 입혔어요"
베트남 난민촌 ‘참파 마을’ 찾아
성당 도색과 보수 작업에 땀흘려
“나는 청소년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며 공부하고 나의 생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가난한 아이들과 일생을 함께 했던 성 돈보스코. 그 정신을 따라 (재)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관구장 황명덕 신부)와 (사)국제청소년지원단(단장 이명천 교수)이 주관한 ‘작은 나눔 큰 사랑’의 참가 청소년들이 세계 최빈국 캄보디아로 향했다. 1월 13일부터 15박16일이라는 긴 여정동안 한국 청소년들과 빈민가 아이들이 만들어간 가슴 뜨거운 이야기를 동행 취재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밤하늘은 예뻤다. 한국에서는 인터넷과 게임에만 몰두했을 청소년들은 캄보디아 땅을 밟으며 오랜만에 하늘을 봤다.
10년 전만 해도 기나긴 내전으로 인해 시내에서도 총알이 날아다녔던 캄보디아는 이제 평온해졌다는 듯 별만 반짝이고 있었다.
캄보디아 돈보스코 학교 교장 선생님과 학생들의 환영을 받으며 입국한 첫날, 청소년들은 모기장을 둘러치고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캄보디아에서 맡은 소임을 다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청소년들이 향한 곳은 캄보디아에 살고 있는 베트남 공동체.
베트남 공동체는 베트남 전쟁이 발발한 후, 공산당과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캄보디아로 망명해 부락을 형성한 곳이다. 현재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인 참파(Champa) 왕조의 이름을 따 이곳을 ‘참파 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청소년들은 최빈국 캄보디아에서도 극빈층에 속하는 참파 마을을 도우러 왔다. 이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베트남도, 캄보디아 국적도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 보트피플(Boat People)은 의료, 교육, 문화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김수연(리디아.17) 학생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이곳에 왔는데 예상을 깨고 사람들의 얼굴이 밝다”며 “감동적이고 벅차다”고 말했다.
수연 학생의 말대로 참파 마을은 밝았다. 집집마다 가난한 와중에도 성모님과 예수님의 사진을 붙여놓고 향을 피워 가톨릭 신앙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자신들의 푼돈과 노동력을 모아 메콩강 옆 부락 한가운데 8년 전 성당을 완공하기도 했다.
본당 주임 피터 신부는 “어느날 이곳 사람들에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꿈에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며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은 우선 성당 벽에 새로 옷 입혀주기 작업을 시작했다. 가져간 도구로 성당 벽 페인트를 긁어내고 새 칠을 하는 일이다. 고사리 손으로 하는 일이라 페인트를 벗기는 데만 나흘이 걸렸다.
또 여름만 되면 인근 메콩강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당 마당에 시멘트 작업을 하기도 했다.
지루하고 힘이 빠질 만도 한데 청소년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불만 한마디 터뜨리지 않았다. 예닐곱살도 안 되어 보이는 참파 마을 꼬마들이 더 작은 손으로 청소년들을 돕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 5일째. 청소년들도 이곳 참파 마을의 사정에 익숙해졌다. 마을에서도 가난한 여자 아이들은 14세가 되면 사창가로 팔려간다는 것과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잘못으로 에이즈(AIDS)에 감염돼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함께 참여한 백광현 신부(살레시오회)는 “봉사하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감사한다”며 “시간이 가며 쌓이는 피곤과 짜증을 작은 배려로 감싸 안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정든 참파 마을 사람들과 작별을 고하기 3일전, 이 날은 주일이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깨끗하게 변한 성당 에서 마을 사람들과 미사를 봉헌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어였지만 청소년들은 미사에 기쁜 마음으로 참례했고 마을 꼬마들의 손을 잡은 채 성체를 모셨다. 성체성가는 청소년들의 한국 성가로 이뤄졌다. 기타 반주에 따라 마을 아이들은 신기한 듯 박수치며 노래를 흥얼댔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두 개의 다른 언어로도 가능했다. 한국어도, 베트남어도 아닌 가슴 깊은 곳에서 움트는 말이었다.
떠나야 하는 날.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여자아이들뿐 아니라 개구쟁이 베트남 남자아이들도, 열심히 봉사한 한국 청소년들도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
“안녕. 행 갑 라이(다음에 다시 봐요).”
※문의 02-833-6006 국제청소년지원단
-“20달러면 에이즈 환자 1년 돌봐”
◎에이즈 마을 보레께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빈부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황금 지붕에 은으로 바닥을 깐 화려한 왕궁 뒤로 에이즈 마을 보레께라(Borei Kela)가 있다. 동성애가 성행하고 올바른 피임방법을 알지 못하는 캄보디아인들 중, 에이즈에 걸린 이들이 모여 마을을 이뤄 사는 곳이다.
보레께라에서는 해마다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이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사망하고 있다. 예전에는 인식이 좋지 않아 에이즈에 걸렸다하면 무조건 보레께라로 와야 했다. 면역 결핍으로 인해 청결한 위생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허름한 판잣집과 더러운 이불 위로 자신의 몸을 뉘일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캄보디아 돈보스코 학교 교장 레오 신부는 “20달러만 있으면 에이즈에 걸린 아이 하나를 1년 동안 돌볼 수 있다”며 “가난하고 헐벗은 나라 캄보디아에 한국 신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 “난민 학생 스님 860명 진료”
◎봉사활동 함께한 말구유나눔회
국제청소년지원단과 함께 이번 참파 마을에 의료혜택을 준 숨은 공로자들이 있다. 바로 70년대 무의촌 용산시장 노숙자들을 진료했던 베들레헴 진료단의 새로운 이름, 말구유나눔회(회장 김용인 루카)다.
이번 캄보디아 진료에 참여한 말구유나눔회 단원은 의사, 간호사, 의대와 간호학대 학생 등 총 14명이다.
김용인(49) 회장은 진료단 창단멤버다. 그는 “의대생 때의 순수한 마음이 원동력이 돼 나이가 들어도 진료단을 떠날 수 없나보다”라며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과 하나 되어 인류애를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말구유나눔회는 88올림픽 이후 전자상가로 변해버린 용산을 떠나 노인진료 봉사를 거쳐 현재는 인천시 서구 백석동에서 인근 이주노동자 진료를 하고 있다.
김회장은 이번 캄보디아 진료가 이주노동자 진료는 물론 나아가 해외진료 봉사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나눔회는 이번 봉사에서 참파 마을 진료와 함께 캄보디아 돈보스코 학교 학생들과 인근 불교 승려들까지 860여명을 진료했다. 또 칫솔 2000개와 치약, 샴푸, 참빗 등도 전달했다.
매일 이어지는 진료에 지칠 만도 하지만 말구유 나눔회 단원 14명은 “배운 것이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김회장은 “우리는 진료혜택을 베푸는 사람이 아닌 도구일 뿐”이라며 “오히려 환자들을 돌보며 뜨거운 가슴을 얻어간다”고 말했다. 말구유나눔회 활동에 동참하거나 후원을 보내고 싶다면 www.nanum4all.com에 접속, 회원 가입 후 신청하면 된다.
사진설명
▶청소년들이 베트남 아이들과 함께 성당 벽 페인트 벗기기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형, 여기에다 빨리 담아 주세요.” 국제청소년지원단 참가 청소년들이 현지 아이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말구유나눔회 회원들이 캄보디아 승려들을 진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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