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수감생활 마치고 하느님 찬양의 길로
“회개의 기쁨 영원히 노래하리”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중죄인이 교도소 안에서 하느님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과 약속했습니다. 나의 죄를 뉘우치고 나를 봉헌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이 곧 희망이고 부활이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을 찬양하느라 목이 쉬어도 그는 멈추지 않습니다.
흔히 복권이 당첨되면 인생이 역전됐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인생역전은 그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사순 제3주일에 이오영(마르티노.45)씨를 만났습니다.
사형수가 말했다.
“난 교수대에 오를 날이 내일일지 모레일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지만 당신에게는 그래도 죽지 않는다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잖아요. 살 수 있는 것도 하느님의 축복이에요.”
살인죄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오영(마르티노)씨에게 사형수는 그것도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했다. 사형수가 던진 한 마디는 ‘이제 내가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삶을 포기했던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이씨는 2심 재판이 있기 전날 생애 처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이대로 교도소 안에서 생을 마칠 수는 없습니다. 사회에 나간다면 평생 하느님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이씨의 인생을 바꿔 놓은 사형수는 1989년 형장에서 숨을 거뒀다. 하지만 이씨는 사형수의 말처럼 하느님의 축복을 한 몸에 받았다. 하느님을 위해 기타를 치고 건반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신앙인으로 살고 있다.
◆ 고통의 길
고등학교 시절 한때 방황하기도 했지만 이씨는 남들보다 이른 스물 둘에 결혼해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사고는 1988년 터졌다. 이씨가 스물 여섯. 아들이 네 살 때였다.
직장을 잃었다. 내성적이었던 이씨에게는 충격이었다. 술을 입에 대는 날이 많아졌다. 급기야 아내마저 집을 나갔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다.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날도 사흘 동안 술을 마시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순간이었다. 사람을 죽였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이씨는 이미 삶을 포기한 상태였다. 나도 죽어야 한다며 재판장에서 모든 죄를 시인했다.
계획적 살인이라며 검사는 1심에서 사형을 구형했고 판사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형수 서지호씨를 만난 건 이때였다. 살고 싶었다. 새 삶을 주시면 오로지 그분께 맡기고 살아가고 싶었다. 열 살 때부터 나가지 않았던 성당이었지만 이씨는 기도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거짓말처럼 하느님은 기도를 들어주셨다. 2심 재판부는 이씨에게 징역 15년을 언도했다. 새 삶이 시작됐다.
◆ 희망-탈렌트 ‘음악’
“수감생활 내내 네 시간 이상 자 본적이 없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하느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깨달은 이씨는 교리공부를 시작했다. 유아세례를 받은 뒤로는 성당에 나가지 않아 예비신자나 마찬가지였다.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통신성서도 했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진리를 깨달으며 회개하고 또 회개했다.
새 삶을 준 하느님이 이씨에게 준 탈렌트는 음악이었다. 수감 당시 아는 성가가 네 곡뿐일 정도로 음악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이씨였다.
그런데 교도소 안에 들어온 뒤 음악에 눈을 떴다. 성가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독학으로 기타를 배우고 건반을 쳤다. 수감 3년만인 1991년 목이 트였다. 이씨는 아직도 그때 목소리만 생각하면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고 말한다.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 하나.
교도소 안에서는 건반연습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종교집회 때는 사용할 수 있지만 집회 후에는 가져가기 때문. 입으로 불며 연주하는 작은 멜로디언이 이씨가 갖고 있는 전부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종이건반이었다. 종이 박스를 구해와 건반을 그렸다. 다들 잠이 든 한밤중마다 악보를 보고 손가락으로 종이 건반을 짚어 가며 한 곡 한 곡 연습했다.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다.
◆ 부활-하느님의 뜻대로
2001년. 이씨는 부처님 오신 날 특사로 석방됐다. 12년 10개월 만이었다.
강산이 변하고 또 2년이 흘렀지만 이씨는 2심 재판 전 기도를 바치며 다짐했던 하느님과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한 달 만에 봉사에 나섰다. 교도소에 있을 때 인연을 맺은 한 은인의 주선으로 서울의 한 본당 성령기도회에서 음악봉사를 시작했다. 강의와 세미나가 있는 곳이면 마다하지 않고 찾아 하느님을 찬양했다. 자신의 경험을 재소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과 나누기 위해 강단에도 섰다. 서울 교정사목위원회 월례미사 때 미사곡도 연주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려 했지만 사회와 떨어진 채 살았던 12년이 큰 짐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 속된 말로 사회 돌아가는 걸 몰랐다. 친구도 없었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그저 기도하고 노래하는 것만이 이씨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솔직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강의 시간이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딘 지 모르게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수군덕거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때마다 이씨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 길은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씨는 “솔직히 출세한 거죠. 무기징역을 받았던 자신이 이렇게 신자들 앞에서 노래하고 강의까지 하잖아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모든 것이 하느님이 약속을 지켜주셨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씨는 인천교구 성령쇄신봉사회 음악부장을 맡고 있다. 철야기도회 때는 밤새 노래를 불러야 하고 몸도 마음도 지칠 때가 많지만 그때마다 하느님께 봉헌한 기도를 생각한다.
◆ 재소자들에게 관심을
“많은 신자 재소자들은 정말 기도를 열심히 하며 삽니다. 비록 한때의 잘못으로 담 안에 갇혀 지내지만 그들의 신앙 열정은 누구 못지않습니다.”
이씨는 교도소에 있는 신자들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회개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교리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이런 말 하면 혼난다면서도 이씨는 신자 재소자들을 ‘살아있는 연옥영혼’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살아있는 연옥영혼.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재소자들을 연옥영혼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기도해주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이씨의 생각이 오롯이 스며들어 있다.
“열심히 기도하며 살던 그들이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온갖 냉대 속에 한 번 더 버림을 받습니다. 사회가 받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자신처럼 죄를 깨닫고 또 하느님을 깨닫고 그분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이씨는 오늘도 소망하며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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