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 잃고 모현호스피스센터서 봉사하며 제2의 삶
“이웃과 고통 나누며 아픔 걷어내죠”
두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김원검(54세)-임성남(49)씨 부부는 눈물을 글썽입니다. 부부의 얼굴에 드리워진 짙은 그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들을 잃은 부부의 아픔을 말해줍니다.
그래도 부부는 매주 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만납니다. 환자들의 몸을 씻기고 간병하는 중에 아들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기도 중에 찾은 제2의 삶. 부부는 오늘도 봉사의 길을 재촉합니다.
◆ 가슴이 녹아내립니다
“엄마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아.”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아픔을 호소했다. 다리가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지는 것 같다며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이유 없이 코피도 흘렸다. 서울의 큰 병원은 다 가봤지만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었다. 병명을 모르니 치료도 할 수 없었다. 다리부터 시작된 마비 증세는 전신으로 번져갔다. 아들을 업고 병원을 전전하다 못해 용하다는 무속인도 찾아갔다. 가족이 모두 개신교 신자였지만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게 허사였다. 큰 아들의 병은 점점 깊어갔다.
가족의 고통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작은 아들이었다. 눈에 띄게 야위어가는 작은 아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배가 아프다며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작은 아들의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 든 부부는 가슴이 녹아내렸다. 대장암이었다. 암세포는 폐와 복막에까지 퍼져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검사결과를 모른 채 “엄마, 암만 아니면 괜찮아. 고치면 되잖아”라며 애써 위로하는 작은 아들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부부는 하늘을 향해 외쳤다.
‘주님! 우리는 어찌하라고 이렇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는지요! 저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작은 아들은 곧 수술을 받았다. 소용없었다. 병원에서는 3개월밖에 못 산다는 ‘사형선고’를 이제 열 여덟 작은 아들에게 내렸다. 그렇게 작은 아들은 지난 2002년 하늘나라로 갔다. 그리고 이듬해 이름도 알지 못하는 병마와 힘겹게 싸우던 큰 아들도 결국 동생을 따라갔다.
야속했다. 부부는 두 아들에게 고통을 주는 하느님을 원망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들어주지 않느냐며 일 년 반 동안 교회도 나가지 않았다.
◆ 어느 곳에 사용하시렵니까
부부를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도록 만든 것은 작은 아들이었다. 병상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의 죄를 회개하는 작은 아들을 보며 하느님을 다시 찾았다.
죽음이 임박한 작은 아들과 함께 요양원에 있을 때 어머니 임씨는 매일 새벽기도를 바쳤다. ‘고난과 아픔이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하다’는 말씀을 새기며 주님의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겠다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주님 저를 어느 곳에 사용하시렵니까.’
어느 날 하느님께서 길을 보여주셨다.
“기도 중에 한권의 책이 보였어요. 흰 표지에 빨간 글씨로 ‘암환자를 위한 사역’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두 아들을 모두 데려가신 하느님은 부부에게 제2의 삶을 알려줬다.
작은 아들이 머물던 요양원 봉사자들의 모습에 깊이 감명 받았던 부부는 그 모습이 곧 자신들의 새 삶임을 깨달았다. 두 아들이 투병중일 때도 부부는 집 근처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 뇌성마비 환자들을 돌봤다. 결국 두 아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부부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잊지 않았다.
교회에 함께 다니던 교우가 소개한 곳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에서 운영하는 모현의료센터였다. 교우는 이곳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수도자들과 봉사자들이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을 돌보는 곳이라고 했다.
◆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이 보여주신 길을 마침내 찾았다. 2005년 9월. 부부는 센터를 처음 찾았다. 임씨는 환자들의 목욕을 도왔고 남편 김씨는 목욕이 끝난 환자를 옮기고 센터 마당 정원을 가꾸는 일을 맡았다.
사실 두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죽음 직전의 환자를 만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동병상련의 아픔이 진하게 밀려왔다.
임씨는 아직도 인규라는 아이를 잊지 못한다. 두 아들과 같은 또래여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봉사자의 목을 껴안고 ‘엄마, 엄마’ 하고 대성통곡을 하며 세상을 떠나간 아이.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두 아들이 생각나 힘겹기도 하다.
목욕봉사는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암세포가 온 몸에 퍼져 솟아나온데다 고름까지 흐르는 몸을 닦으며 꼬박 세 시간 가까이 여러 명의 환자와 씨름해야 한다.
그러나 임씨는 “아들의 아픔을 알기에 더더욱 정성껏 환자를 돌본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주님! 이들의 삶이 이 세상에서는 비록 고통 속에서 힘들었지만 그 영혼들만은 주님의 품 안에서 영생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병동에서 기도를 해도 방법이 좀 틀리니 조금은 어색합니다.”
개신교 신자가 천주교시설에서 수도자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처음에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부부는 센터에서 일하는 봉사자들 중 유일한 개신교 신자다.
그럼에도 부부는 이 일이 곧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 데 장소가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되묻는다.
부부는 이곳에서 봉사하며 천주교 신자들이 몸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가난한 사람들, 병으로 고통 받은 많은 이웃들을 함께 보살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퇴직 후에도 봉사를 계속하기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남편 김씨가 말한다.
“그늘 속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이 사회를 밝히고 싶습니다. 이제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우리 내외밖에 없으니까요.”
‘우리 내외밖에’라는 말 속에 숨겨진 부부의 아픔이 봉사의 기쁜 삶 속에서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설명
▶남편 김원검씨가 목욕을 준비하는 환자를 바라보고 있다. 동병상련. 두 아들을 잃은 부부에게 죽음 직전의 환자를 만나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다.
▶임성남씨가 환자 목욕을 마친 후 봉사자와 함께 욕조를 닦고 있다. 임씨는 매주 토요일 남편과 함께 센터에 와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를 마치고 모현호스피스센터 2층 야외쉼터에 선 김원검-임성남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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