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대신 정성 치고… 비료 대신 사랑 뿌려… 늘 향기로운 봄 가꾸죠”
“이거 벨가못. 이건…, 이건 버베나. 레몬 버베나”
자신이 직접 키웠는지 낯선 허브가 담긴 조그만 화분을 들어올려 보여주는 김성만(대철 베드로.40)씨는 신이 난 모습이다.
비닐하우스 4개동을 이어붙여 만들어놓은 허브 농장 안은 이미 오래 전에 봄이 와있는 듯 딴 세상이 연출되고 있었다. 눈발이 짙어지는 바깥 날씨는 안중에도 없이 한창 봄 세상 연출에 열중해 있는 이들은 모두 ‘소망이네’ 식구들이다. 충북 제천 배론성지 인근에 위치한 정신지체장애인 생활시설인 살레시오의 집(원장 이동훈 신부)의 정신지체 2급 장애인 5명이 꾸려가고 있는 영농그룹홈 ‘소망이네’의 맏형은 안연수(비오.44)씨다.
“안 죽고 (싱싱하게) 자라는 것…, 제일 좋아요.” 전정가위로 모종판에 놓인 허브의 뿌리털을 정리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농장 이곳저곳을 오가며 허브에 물을 주는 막내 박경석(돈보스코.30)씨의 얼굴에서는 잠시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소망이네 식구들이 장애인이라고 허투루 봐선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농약이나 비료 등을 일절 안 쓰고 일일이 손으로 가꾸는 친환경 유기농 허브여서 이미 입소문만으로 전국 곳곳에서 찾는 단골이 적지 않을 정도다. 한번 소망이네 식구들의 손길이 배인 차를 맛보곤 다시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소망이네’가 허브 재배에 나선 것은 지난 2001년 가을, 원주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직업훈련시설 ‘살림터’(원장 이계영 수녀)가 허브 농장을 열면서부터였다. 처음엔 낯선 일에 선뜻 나서려고 하는 이가 없었다. ‘살림터’의 직업재활팀장을 맡고 있는 이종수(알로이시오.44)씨가 이리저리 구슬려 모은 이들이 오늘의 소망이네 식구들이다.
처음 모종을 심을 때만 하더라도 34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는 한없이 넓어보였다. 누구 하나 경험이 없었던 탓에 1년 반은 꼬박 땅을 고르고 거름을 줘 토질을 바꾸는 일에 매달려야 했다. 그렇게 파낸 돌과 흙으로 땅이 1미터나 낮아지기도 했다. 농약을 안 치면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는 일이지만 오로지 인력으로 버텨낸다는 게 이들이 이뤄내는 기적이다. 해충이 번지기라도 하면 마늘액과 식초, 목초액 등 천연 약재를 개발해 퇴치하는 등 일반인들 보다 몇 곱절의 정성을 들인다. 휴가는 생각도 못하고 휴일도 반납하고 비닐하우스를 찾아 허브 돌보는 일에 매달리기 일쑤다.
그런 노력의 결실이었을까, 2003년 첫 수확으로 2천만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노하우가 쌓였음인지 이듬해부터는 허브 생산량이 급격히 늘어 지난 2005년 1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1억4천만원의 소득을 거둘 수 있었다.
일일이 자신들이 마련한 장작을 때 허브와 함께 겨울을 나고 있는 소망이네 식구들 얼굴에서는 봄기운이 물씬 풍겨온다. 그에 맞춰 소망이네의 사랑을 거름으로 40여종의 허브들이 겨루기라도 하듯 자라고 있는 허브 농장은 늘 봄이다.
※문의 043-651-3456, 653-7523
사진설명
▶영농그룹홈 ‘소망이네’를 꾸려가는 정신지체장애인 생활시설인 살레시오의 집 장애인들.
▶비닐하우스 4개동을 이어 만든 농장.
▶소망이네 허브는 농약이나 비료를 안쓰고 일일이 손으로 가꾸는 친환경 유기농 허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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